영화 '코코' 해골들이 반기는 마을

지구 반대편 흙 이야기#7 멕시코, 도자기 마을 까뿔라(Capula)

by 로하

멕시코 미초아칸 주는 전통공예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이곳의 몇 마을들이 작년에 개봉한 영화 '코코'의 배경이 되면서 더 유명해지기도 했다. 멕시코 전역 중 '죽은 자들의 날(Día de muertos)' 전통이 가장 잘 보존되고 화려하게 진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영화 '코코'에 등장하는 해골들은 다양한 옷을 입고 있다. 그중 우리에게 익숙한 캐릭터 프리다 칼로를 기억할 것이다. 이처럼 여자 해골에 화려한 의상을 입힌 형상이 멕시코 죽은 자들의 날의 상징이 되어있는 '라 까뜨리나'(la catrina, 이하 까뜨리나)다.

미초아칸 주의 주도 모렐리아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마을 까뿔라(Capula)는 '흙으로 만든 까뜨리나'로 유명하다. 이전에는 주로 판화나 회화, 조각 등으로 형상화되었던 까뜨리나가 흙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오래된 것이 아니라 멕시코 한 예술가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그래서 첫 멕시코의 흙 여정은 그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정해졌다. 지난 1월 28일 까뿔라를 방문했다.

마을은 들어서자마자 작은 가게들에는 형형색색 다른 옷을 입은 까뜨리나들이 즐비했다. 벽 곳곳에도 이를 형상화한 그림들이 있어 이곳이 까뜨리나의 마을임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멋스러운 넓은 주택 겸 작업실에서 처음으로 흙으로 까뜨리나를 만든 예술가 후안 또레스(Juan Torres)를 만날 수 있었다.


"처음 흙으로 까뜨리나를 만든 건 40년 전 정도 되었죠. 개인 작업으로 까뜨리나뿐 아니라 해골 형상의 캐릭터를 몇 점 흙으로 만들어 전시를 한 것이 그 시작이었죠."

라 까뜨리나를 흙으로 처음 만든 후안 또레스

회화, 조각, 조형 등 다분야에서 활동하던 그는 흙으로 조형을 시작하면서 까뜨리나도 그의 작업의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거처를 모렐리아 시내에서 까뿔라로 옮기면서 그때까지 전통적인 식기 위주의 작업을 하던 마을 도예가들에게 까뜨리나 제작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식기류만으로는 생활이 힘들었죠. 뭔가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처음에는 내 작업을 쉽게 수용하지 않았죠. 작업실에 와서 배우게 하기 위해 오히려 내가 돈을 지불하며 가르쳐야 했죠."


처음 그에게 까뜨리나를 배우러 온 사람은 5명이었다. 그들을 시작으로 점점 그 제작법은 그들의 가족들에게, 그리고 이웃들에게 전해졌다. 점점 흙으로 만든 까뜨리나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지금은 이 작은 마을에서 200여 공방이 까뜨리나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7년 전부터는 매년 까뜨리나 축제도 열린다. 그야말로 '흙으로 만든 까뜨리나'는 이 마을의 수식어를 새롭게 만들어 주었다.

"지금 나는 더 이상 까뜨리나를 만들지 않아요. 당시 그것은 개인적으로는 진행한 공공 프로젝트 같은 것이었죠.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까뜨리나가 만들어지면서 제 개인 도예 공방도 닫으려고 했지만 지금은 아내가 흙 작업을 배워 대신 운영하고 있어요. 이렇게 성공을 거두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죠. 요즘은 회화 중심의 개인 작업에 더 집중하고 있어요."

마을의 한 공방에서 만난 프란시스코는 까뜨리나를 작업한 지 6년 되었다는 그는 자신의 작업을 소개해주었다. 주로 석고틀을 이용해 다양한 크기의 기본 몸체를 만들고 이후 옷과 모자 형상은 도예가의 상상으로 만든다. 색 작업까지 도예가가 하기도 하지만 색만 따로 입히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다소 투박해 보이는 그의 손이 만들어낸 까뜨리나는 굉장히 섬세했다.

"까뜨리나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이전 전통적인 것을 반복하던 때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보게 되었죠. 주문이 많을 때는 반복하여 만들기도 하지만 문득 어떤 캐릭터가 생각날 때면 그걸 해보기도 해요."


까뿔라에는 3년 전부터 후안 또레스가 운영하는 예술학교가 세워졌다. 정부 도움 없이 개인이 운영하는 학교로 주로 그의 회화 수업이 진행되고 수업료는 무료이다. 어찌 보면 그의 두 번째 공공 프로젝트 같은 것이다. 하지만 마을에서 오는 학생이 단 한 명뿐인 것이 그는 안타깝다.


"이웃들에게 와서 배우라고 독려하지만 당장의 일들이 바쁘다며 오지 않아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배워서 새로운 세대를 만들어 낸다면 좋겠지만 그게 처음 까뜨리나를 만들 때만큼이나 힘들죠. 그저 생산만 하는 예술은 미래가 없어요. 지속적으로 개개인이 자신의 창조물을 가져야 하죠."


한 마을을 대표하는 무언가를 가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다. 매해 많은 사람들이 국내외에서 까뿔라의 까뜨리나를 찾게 됐고 마을은 그것으로 이전보다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후안 또레스는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발전시키지 않는다면 새로움도 곧 낡은 것이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사십 대의 패기 넘친 한 예술가의 작업 공유는 한 마을을 바꾸었다. 이제 그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그는 이제 마을 사람들의 손으로 변화가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의 바람처럼, 까뜨리나 캐릭터가 죽음과 생명을 넘는 끊임없는 연결고리를 상징하듯이 이 마을 역시 까뜨리나와 함께 오랫동안 그 시간을 이어가길 바라본다.

흙으로 만든 라 까뜨리나
영화'코코'로 우리에게 익숙한 라 까뜨리나는 1910년 '이집트 콩을 파는 해골 여자'라는 이름으로 신문 칼럼에 처음 등장했다. 인디오임에도 스스로 유럽인 인척 허영 떠는 모습을 풍자한 프랑스 귀족 모자를 쓴 해골 얼굴이었다. 이후 멕시코의 유명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 '주말 오후 알라메다 공원에서의 꿈'에 완성된 캐릭터로 등장했고, '라 까뜨리나'라는 이름도 붙여졌다. 오늘날 멕시코의 죽음과 삶 사이를 오가는 '죽은 자들의 날' 대표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멕시코와 흙>시리즈로 연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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