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계산대 투입
“얼마나 부모님이 자랑스러울까. 이렇게 좋은 회사를 들어가서.”
14박 15일 신입사원 그룹 연수의 마지막 날이었다. 각 잡힌 정장 자켓에 달린 그룹 뱃지가 반짝였다. 연수원 내 편의점 주인 분이 계산을 해 주시며 칭찬처럼 말을 붙였다. 이니에요, 라고 쑥스럽게 말하면서도 가슴 속에서 차오르는 뿌듯함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취업 준비를 2년간 했다. 첫 직장 입사 전 기간까지 포함하면 3년은 될 것이다. 그간 맛보았던 좌절과 탈락의 고배는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한 줄에 빠르게 사라졌다. 영원히 끝나지 않던 터널이 드디어 끝났다. 매주 시험을 보고 밤도 새야 하는 과제가 있는 연수 기간이었으나 시종일관 내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연수 마지막 날에는 대왕만한 기업 로고 앞에서 동기들과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며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시종일관 인스타에 업로드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꼭 빠지지 않는 태그는 #동기사랑나라사랑.
그 즈음 채용공고 아래에 작게 적혔던 한 줄은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해당 직무는 현장으로 발령받아 1년 이상 근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소위 “신입 뽕“에 차 있다가, 현장으로의 첫 출근날 잠이 오질 않았다. 머릿속으로 미리 공유받은 직원 통로길을 외웠다. 항상 고객으로만, 붐비던 대형마트의 정문으로 들어가다 직원용 통로를 이용하는 내 모습이 낯설었다. 다행히 부점장님께서 마트 앞까지 마중을 나와 주셨다.
와중에 첫날이라고 정장을 입은 내 모습을 보는 부점장님의 얼굴이 묘했다. 이윽고 나타나신 점장님은 한 마디 던지셨다. 얘는 왜 이렇게 입고 왔어? 인사를 맡고 있다는 선배가 나에게 잠자코 마트 조끼를 건냈다. 그렇게 나는 정장 자켓을 벗고 블라우스 위에 조끼를 입었다. 치마가 아닌 바지 정장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선배가 물었다. 포스(계산대) 쳐 본 적 있으세요? 나는 대답했다. 아니요. 대학 생활 동안 아르바이트 한 번 해본 적 없었다. 계산대에 대기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무전이 왔고, 선배가 나를 이끌었다. 치면서 배우면 돼요.
그렇게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트 계산대 앞에 섰다. 계속 버튼 대신 계산대 화면만 눌러대는 나를 보며 선배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거 터치 안 되는데. 한 눈에 봐도 초보인 게 티가 나는 나를 고객들은 얌전히 기다려 주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인내심이 많은 줄 처음 알았다. 죄송합니다, 처음이라서요.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는 한 마디에 눈처럼 녹는 얼굴들이 고마웠다.
계산대가 너무 어렵다는 내 말을 들은 엄마가 한 마디 했다. 그거 유튜브 보면서 배우면 안 되니?
포스 치는 법 영상을 찾아봤지만 없었다. 결국 나는 계산대 사진을 찍어왔고 집에서 열심히 사진을 두드려 가며 시뮬레이션을 했다. 대체 챙길 할인 쿠폰이며 포인트, 택스 리펀까지 왜 이리 복잡한지. 업무 내용을 적으리라 들떴던 다이어리에는 계산대 사용법만 빼곡하게 적혔다. 연수에서 받은, 기업 로고가 박힌 멋진 가죽 다이어리는 거추장스럽기만 했다. 조끼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작은 수첩을 새로 받았다.
그제야 신입사원 교육 중, 들뜬 우리들을 바라보던 인사팀장님의 한 마디가 생각났다. 어딘지 모르게 지친 듯한 얼굴이었다.
"너희들, 현장에서 못 버텨서 나갈 거면 지금 나가라."
현장 발령 3개월 째, 세 명의 동기가 그렇게 퇴사했다.
이제는 완연한 과거의 일이 되었지만 대형마트를 가면 당시의 긴장됐던 첫 출근일이 생각난다. 하지만 당혹스러운 순간들 앞에서도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건 당시의 따스했던 사람들이다.
행여 통로를 못 찾을까 봐 마중나와 주신 부점장님의 다정한 웃음, 제 조끼엔 왜 마트 뱃지가 없나요? 라는 신입사원의 물음에 어딘가에서 뱃지를 구해다 주신 분, 젊은 분이 새로 왔다며 간식을 챙겨주신 시식 코너 직원분들과 계산대 여사님들. 그리고 처음이라서 죄송하다는 말 앞에 천천히 하라며 기다려 주신 계산대 앞의 고객님들.
한때 사회생활 맛보기로 유명했던 드라마 <미생>에서처럼 냉정한 현실은 없었고, 그건 내가 오래도록 현장에서 웃음을 잃지 않은 원동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