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대 너머의 완벽한 타인
그 날은 평범한 주말이었다. 저녁 9시와 10시 사이, 대형마트가 항상 붐비는 시간대. 이렇게 사람들이 늦은 시간에 장을 보러 온다는 건 입사 후에 알았다. 계산대가 밀리니 들어가라는 무전을 받았다.
줄 선 고객들을 최대한 보지 않고 계산에 열중하던 나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조금 뒤에 줄을 선 모녀의 낭랑한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대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딸과 어머니였는데, 할인 혜택을 찾아보고 있는 것 같았다. 상품권, 카드할인, 모바일 상품권 등 다양하게 결제 수단을 읊는 둘의 대화를 들으며 계산이 복잡하겠네, 라고 생각했다. 흔히 젊은 자녀와 어머니가 왔을 때는 자녀 쪽이 면박을 주는 경우도 있는데, 살갑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느꼈다. 그들에 대한 감상은 딱 거기까지였다.
다음 차례는 할아버지였다. 이미 적지 않은 시간을 기다렸는지 심기가 불편한 표정이었다. 심지어 손에 든 물건도 적었다. 앞에 한참이나 카트 가득 물건을 채운 고객들이 지나갔으니 더할 테였다. 빠르게 계산을 한 나는 물었다.
"ㅇㅇ포인트 하세요?"
안 해, 그냥 빨리, 뒷말도 맺지 않는 모습을 보며 나는 조용히 현금을 받아들고 금액을 입력했다. 거스름돈을 내주면서 매뉴얼대로 물었다.
"현금영주증 하세요?"
그 순간, 할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찾아온 정적과 함께 고객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안 한다고! 계산이나 빨리 할 것이지 뭐 이렇게 말이 많아?"
하. 속으로 짧은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아주 예상 못한 것도 아니었고 익숙한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할아버지의 짜증은 나 때문이라기보단 이 상황 자체였을 테였다. 고객센터에 있다 보면 짜증과 악의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상품에 대한 불만은 그저 기폭제일 뿐이고,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하게 쏟아지는 악의는 받아내는 사람에게도 타격이 컸다.
그런 악의에 익숙한 내게 이 정도 짜증은 가벼운 수준이었다. 어쨌든 쌍욕도 아니었고. 나는 할아버지의 짜증에 답하지 않은 채 잠자코 거스름돈과 영수증을 내밀었다. 마스크로 얼굴은 가려졌지만 가려지지 않은 표정을 더욱 단단히 굳히려 노력하면서.
내 눈에 다시 들어온 것은 아까의 모녀였다. 할아버지가 언성을 높이는 순간 살갑게 이어지던 모녀의 대화도 중단됐다. 대신 둘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할아버지와 나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저 시선이 좀 더 무안하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다음 고객의 물건을 계산했다. 모녀의 차례가 돌아왔고, 한참이나 말이 없던 엄마 쪽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세상에 진짜 이상한 사람 많아. 그렇지?"
여전히 나를 보던 딸이 얼른 말을 받았다.
"그러니까 말이야. 저러다 안 물어봐서 안 해 주면 난리 칠 거 아냐?"
내게 카드를 내밀던 엄마 쪽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전히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이었지만 안쓰러운 눈빛이었다.
"당연히 물어봐야 할 걸 물어본 건데."
카드를 받아들고 계산하는데 알 수 없는 감정이 일렁였다. 이윽고 그 감정은 목까지 올라왔다. 카드와 영수증을 돌려주며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데 목이 멘 걸 느꼈다. 아마 내 목소리는 소음에 파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할인수단을 이것저것 되짚어 보던 모녀가 결국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는 건 그들을 보내며 깨달았다.
다행히 그 모녀를 끝으로 나는 계산대에서 나올 수 있었다. 터벅터벅 창고로 복귀하는데, 자리에 앉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1년간 사용한 이불을 환불해주지 않는다고 목에 핏대가 서도록 소리를 지르던 중년 남성 앞에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나였다. 바로 앞까지 얼굴을 들이대면서 락앤락을 밟아 부수던 고객도 무섭지 않았다. 그런 내가 왜 할아버지의 짜증 한 마디 들었다고 눈물을 쏟고 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윽고 나는 깨달았다. 내 눈물을 부른 건 상처가 아닌 위로였다는 걸. 모녀의 연민으로부터 나는 위로받았다. 계산대 너머의 완벽한 타인, 평생 다시 만날 일이 없는 사람임에도 그들은 나를 연민했다. 딸과 비슷한 또래가 (그들의 입장에서는 진상이었을) 할아버지의 짜증을 받아내는 게 안쓰러웠을지도 모른다. 아마 마트를 나서면서 한두 마디 정도 더 주고받았을지도.
야간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엄마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는 속상했는지 일을 그만두라고 했다. 내가 할아버지의 짜증에 상처받았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친구한테도 카톡으로 이 얘기를 했는데 친구가 말했다.
“그 순간만큼은 그 사람들이 네 편이었던 거니까.”
내 편, 그 말은 오랫동안 나를 현장에서 버티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제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고객이 내게 윽박지를 때 자리를 뜨지 않고 그대로 지켜보던 시선들. 거 조용히 좀 합시다, 나지막한 면박들. 그 모든 행위가 무엇을 의미했는지 깨달았다. 날것의 악의로부터 나를 지키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음을.
그간 남몰래 내 편이 되어 주셨을 수많은 고객 분들, 그리고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열심히 내 편이라는 걸 알려 주셨던 모녀분께 감사드린다.
"타인이란 아직 만나지 못한 가족일 뿐이라네."
- 미치 앨봄,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