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화실 회원전 Our Universe Part.1, 파편 한조각
2024년 5월 17일.
아침 출근길에 사이렌오더로 주문한 커피는 70번째 주문으로 접수되어 한참이나 기다려야 했고, 팀 점심회식이 있는 날이었지만 오전 일찍 상무님 집무실에 불려가신 팀장님과 부장님의 회의가 점심시간이 다되도록 끝나지 않아 무한대기를 하던- 평소보다 뭔가 잘 안풀린다 싶던 날이었다.
오후에 휴대폰 액정에 '송정 장명선 선생님'의 이름이 뜬 그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오늘님, 제 얘기 먼저 잘 듣고 대답하세요. 내년 10월에 인사동과 이탈리아에서 회원전을 열 예정입니다. 참여하실 의향이 있으세요?"
순간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혹시 신종 보이스피싱이 아닐까? 나한테 이런 기회가 오다니 이게 현실일까 꿈일까 사실일까 아닐까 헷갈리고 서있던 와중(개인적으로 현존하는 최고의 플러팅 곡이라고 생각하는, 남진의 '둥지'의 가사 인용) 생각이 많아 항상 선택에 신중한 나 치고는 굉장히 빠른 대답이 나도 모르게 툭, 나왔다.
'네! 할래요.'
지금 읽어봐도 그날의 일기에 설레는 기분이 그대로 담겨있다. 글씨가 날아갈 듯 경쾌하다.
2023년은 마음이 많이 힘든 때였다. 사실 특별히 잘 못된 것은 없었는데, 허무하고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은 기분에 빠져들었다. 회사일은 늘 그렇듯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지만 손에 쥐어지지 않았다. 이런 허무하고 막막한 날들이 앞으로도 계속 될까 무서웠을까, 나는 꿈에서도 밤새 엑셀을 돌리고 전략 보고서를 작성하다가 잠에서 깨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소리가 아득하니 멀어지고 내 심장이 귀에서 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코끝이 징-울리고 눈 앞이 깜깜해졌다. 마치 샤워한 것처럼 순식간에 온몸이 땀에 젖었다. 세상과 단절되어서 어딘가 갇힌 것 같은 이 기분보다 무서운 것은, 이 와중에도 지금 내리면 다음 차도 만원이라 못 타서 지각할까봐 손잡이를 부여잡고 버티고 서있는 나였다.
그런 일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간헐적으로 몇 번 반복되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게 맞는걸까. 내 하루에서 회사를 빼면 남는 게 있을까?
그러던 와중 지나가는 차창 너머로 '송정화실'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나한테 미안한 마음을 풀어야했다. 어릴 때부터 혼자 그림그리는 걸 좋아했다. 굳이 누구에게 내 마음이나 생각을 설명하지 않아도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서 내 눈에 보이게 늘어놓으면 마음이 편하고 행복했다. 그래, 그림을 그리자. 막막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나름의 처방이었다.
화실에 등록하고 받는 첫 숙제는 호 지어오기. 스스로 지은 내 호는 단연(斷然).
단연코 나를 향한 확신을 가지고 나답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그림에 담고자 하는 나름의 다짐이었다. 이제까지 그렇게 하지 못해서 스스로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그렇게 시작한 문인화로, 비록 회원전이긴 하지만 그래도 전시라니!
성취중독자에게 이만한 보상이 또 있을까.
실력은 아직 부족했지만, 달려야 할 목표가 생겼으니 매일 붓을 들 맛이 났다.
그렇게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주 송정 선생님이 내 주시는 질문들에 답을 하고, 나름의 작품 구상을 하며 작가노트 한 권을 꽉 채워냈다. 그리고 그 작가노트는 다른 34명의 작가노트들 사이에서 우주의 한 파편처럼 자리를 채웠다.
그렇게 결국,
이 기록은 2025년 9월 17일 부터 9월 22일까지.
인사동에서 가장 큰 갤러리인 인사아트센터의 1층에 걸렸던 내 작품,
<만개(滿開):찬란한 인고의 흔적>을 작업하면서 길을 찾고 시간을 쌓아온 기록이다.
전시는 6일이라는 짧은 기간 진행되었지만, 그 6일을 가득 채우기 위해 송정 장명선 선생님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쌓아온 나의 작가노트의 내용을 발췌해 남겨본다.
송정화실의 첫 번째 회원전,
<Our Universe Part.1>에 참여한 더 많은 작가와 작품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국내 대형 서점에서 판매 중인,
작품 에세이와 송정 장명선 선생님의 수묵 에세이/시·서·화 이론이 담긴 도록
<Our Universe>를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