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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축구 Apr 12. 2016

나는 클러프가 좋다. 엄청 많이

댐드 유나이티드 (2009) | 코미디, 드라마 | 98분

장범준을 듣는다. 


장범준을 좋아한다. 노래가 좋다. 장범준이라는 사람 자체가 좋다. 물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그와 사적으로 술을 마셔본 적, 당연히 없다. 사실 대화조차 못 해봤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나는 장범준을 잘 모른다. 


그나마 내가 아는 장범준에 대해 짧게나마 써본다. 그는 대형 기획사에 들어가지 않았다. 자기 음악을 하고 싶어 그는 카페를 차렸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앞에서 소박하게나마 공연을 했다. 그는 '이주 공연'이라는 이름 아래 '2주'마다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줬다. 평소 주목 받지 못하는 인디 뮤지션과도 함께했다. 


요컨대 나는 장범준의 '목적'을 좋아한다. 신념이란 더 멋진 말도 있지만 '목적'이란 단어가 더 어울린다고, 나는 생각한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을 좋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유치하지만 나름 진지했다. 


'좋은 사람'이란 건 매우 힘들다. 누군가에게 좋은 행동일지라도 다른 사람에겐 엄청 나쁜 행동이 될 수도 있다. 가령 철수와 영희와 훈이가 있다고 치자. 영희는 훈이를 아주아주 싫어한다. 철수가 훈이를 때렸다. 영희에게 철수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훈이는 철수를 경멸할 거다. 이런 식이다. 좋은 사람이 되려면 몸이 세 개 정도는 필요할 거다. 



나는 '목적'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지금 이 생각도 언젠가는 유치해질 거다. 그런데도 지금은 그러고 싶다. 장범준이나, 브라이언 클러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아, 한 가지 일러두자면 클러프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이 글에선 설명하지 않겠다. 사실 설명을 한대도 영화를 보지 않으면 잘 이해되지 않을 거다.


그런 이유로, 일단 브라이언 클러프라는 사람을 요약해보자.



무하마드 알리: 영국 런던의 브라이언이요? 브라이언 클러프라고 수다스러운 사람이 있는데 미국에서도 유명해요. 영국의 무하마드 알리라고 한다나 뭐라나. 무하마드 알리는 나 하나 뿐입니다. 더는 못 참아요. 그만해요!

브라이언 무어(사회자): 그만둘 겁니까?

브라이언 클러프: 아니요, (무하마드 알리와) 싸울 겁니다. 



알리는 권투 황제다. 철수도 훈이는 때릴 수 있지만 알리를 만났을 땐 피부 솜털 하나 건드리지 못할 거다. 그러나 클러프는 위풍당당하게 말했다. 한판 싸우자고.


클러프는 항상 싸웠다. 질 때도 잦았다. 더비 카운티 감독 시절 리즈와의 경기에 집중하다가 인테르와의 유러피언컵을 망쳐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더비에서 경질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자신의 '목적'을 위해 싸웠다.





<댐드 유나이티드 (Damed United)>에 나오는 클러프는 절대 멋있지 않다. 그는 불합리하다. 


1974년, 잘나가던 리즈를 맡아 독재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다. 전임 감독 돈 레비에 대한 적개심은 클러프를 더더욱 외골수로 만들어 버렸고 스타병 걸린 선수들과의 불화는 커져갔다. 어찌보면 상당히 유치한 스토리다.



결국 클러프는 리즈 유나이티드에서도 경질 당한다. 이번엔 44일 만에. 그리고 그날 클러프와 돈 레비는 방송에서 '썰전'을 벌인다. 이 영화의 명장면이자 실제로도 있었던 일이다. 영화에서는 이 장면을 잘 재연했다.


말이 '썰전'이지 클러프의 '칭얼대기'다. 클러프는 돈 레비를 향해 왜 나를 무시했냐고 이야기한다. 엄마에게왜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고 묻는 아이가 연상된다. 보고 있으면 좀 귀엽다. 


주인공 브라이언 클러프를 연기한 마이클 쉰


나는 이 장면에서 클러프가 너무너무 사랑스러웠다. 물론 <슈퍼맨이 돌아왔다> 쯤에 등장하는 귀여운 아이를 보는 심정은 아니었다. 솔직히 '오구오구' 하기엔 클러프와 마이클 쉰 둘 다 너무 아저씨다. 당연한 말이지만 당장 달려가 고백하고 싶다는 마음도 아니었다. 그저, 그러니까, 그냥 '목적'이 있는 클러프가 너무 부러웠다.


<댐드 유나이티드>는 행복한 영화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클러프 인생에서 가장 우울했을 때를 다룬 영화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서 느껴지는 감정이 '비탄'은 아니었다. 오히려 클러프에 대한 애정이 가득 쌓였다.


요컨대 클러프는 아이처럼, 단순하게 축구만을 좋아했다. (1935-2004)



영화 공식 예고편



글 - 정재영 (축구전문 팀블로그 인스텝 운영자)

사진 - 영화 스틸컷, 포스터

교정 - 오늘의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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