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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축구 Aug 16. 2017

2편: 축구를 입체적으로 보기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통찰력


마라톤 경주를 보고 있다 상상해 보자. 마라톤이라는 스포츠는 기본적으로 '더 빨리 들어오는 주자'를 가리는 종목이다. 따라서 관전자는 어떤 주자가 몇 등을 하고 있는지 외에는 별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있다. 다시 말해 현재 1등을 하고 있는 선수가 오버페이스를 하고 있는지, 뒤쳐져 있는 선수가 힘을 아꼈다가 언제 어느 구간에서 페이스를 끌어올릴지 등 당장 보이지 않는 내용에 대해서는 관심이 덜할 수 있다. 아니, 관심을 두려해도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축구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분석들은 주로 어떤 선수가 잘 했고, 어떤 플레이 끝에 득점이 터졌는지 등 결과와 직접 관련 있는 내용들이다. 물론 축구가 마라톤보다 복잡한 규칙과 경기 패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상황 자체를 넓게 보는 시야도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다채로운 시각을 통해 축구 분석의 재미를 더할 수 있다고 믿는다. 눈에 그대로 보이는 것들은 '나도 볼 수 있지만,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일 뿐이다. 마치 평면 TV로 전달되는 평면적인 중계 영상처럼.


이렇듯 그저 보이는 부분에 입각한 '평면적 분석'은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의문점을 남길 수밖에 없다. 관전자인 우리가 승리팀의 성과에 집중하고 있을 때, 패한 팀의 감독은 스스로의 패인을 어떤식으로 복기하고 있을까? 또 A선수를 빼고 B선수가 들어와서 득점을 올렸는데, 이것이 단지 '용병술 적중'에 불과할까? A선수를 계속 기용했다면, A선수를 다르게 활용했다면 득점을 올릴 수는 없었을까? 우리가 습관적으로 놓치고 지나치는 부분들에 대한 의문점 말이다.


이런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접근을 나는 '입체적 분석'이라 부르고 싶다. 입체적인 시각을 가지고 축구를 관전할 수 있다면, 결과론의 한계를 뛰어넘어 주도적으로 경기를 예측해볼 수 있다. 말하자면 물체의 앞면만 보는 단순한 시각에서, 그 물체의 뒷면, 옆면까지 동시에 보는 시야를 갖추는 셈이다. 빛과 그림자가 항상 함께 다니듯, 축구에 엄연히 존재하는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을 폭넓게 이해하면 경기 분석에 깊이를 더할 수 있다.


실제로 축구 분석을 잘한다고 평가 받는 전문가와 해설위원들은 앞서 말한 '입체적 시각'을 가진 경우가 많다. 결국 이것이 같은 장면을 보고도 일반인들은 쉽게 짚어 내지 못하는 부분들에 대해 명쾌한 해석이나 허를 찌르는 통찰로 이어지곤 한다. 축구 분석에 막 입문하는 우리로서는 평면적 시야를 넓히는 동시에 전문가들이 가진 입체적 시각을 이해하고 따라잡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쌓아가야할 인사이트는 축구를 관전하는 '태도'의 문제이기도 해서 더디더라도 처음부터 다져두지 않으면 나중에 어느 한 순간 반짝 깨달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분석은 결과론에 불과하다


16/17시즌 토트넘과 첼시의 잉글리시 FA컵 4강을 기억하는가? 이날 패장이 된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감독이 손흥민을 윙 백으로 기용한 것이 패착으로 이어지며 팬들의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토트넘이 승리했다면, '손흥민의 재발견'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지 모를 일이다. 윙어에서 윙 백으로 완벽하게 변신한 첼시의 모지스처럼 말이다. 이렇게 결과에 따라 동전 뒤집듯 평가가 바뀌는 건 우리가 이미 일어난 일만 보고 평하기 때문이다.


감독이 새로운 전술적 시도를 할 때, 결과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말 그대로 '묘수'의 상태에 머문다. 그러다 성공한다면 칭송을, 실패한다면 비난을 받게 되는 게 누구나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이며 뻔한 결론이다. 그렇지만 평면적이고 흔해도 1차적으로 축구를 소비하는 팬들과 기자, 분석가들의 평가는 모두 이런 결과론을 벗어날 수 없다.

16-17시즌 안토니오 콩테 감독은 자신이 선호하는 쓰리 백 기반의 전술을 첼시에 도입했다(좌측). 과연 첼시가 기존의 포 백 포메이션(우측)을 고수했어도 EPL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을까?


이 흥미로운 주제를 한번 분석해보자. 다시 말하지만 경기 분석은 1차적으로 결과론을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특정 상황들이 경기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파악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득점 장면, 실책 장면, 공격의 주된 방향, 특정 선수의 활약, 전술 변화 등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특정 상황'이란 가령 특정 팀의 왼쪽 윙어가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맹활약해 승리한 경기가 있었다고 치자. 승리팀의 승리 요인 중 하나로 그 선수가 활약할 수 있게끔 도와준 왼쪽 풀 백의 움직임을 꼽을 수 있다. 더 넓게 축구를 보는 사람은 아마 중앙 미드필더와 원 톱의 움직임까지 평가 범위에 넣을 것이다. 더 나아가면 수비 상황에서 그의 수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누가 어디까지 커버했는지 등을 지적할 수도 있다. 공 주변에서 공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선수까지 넓은 시야를 갖추는 것은 오직 선수들만이 아니라 축구를 분석하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능력이다.


이처럼 분석이라는 것이 거창해 보일 지 모르지만, 결국 한 팀의 '잘한 점'이나 '못한 점'. 즉, 결과의 원인을 역추적하는 행위다. 일반인과 전문가를 나누는 것 역시 '얼마나 많은 일리 있는 분석 포인트를 짚어낼 수 있는가'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에 더해 '입체적 시각'을 갖춘다면 평범한 분석과는 차별화된 분석과 예측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페널티 킥은 시도한 사람만이 실축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난 차지 않았기 때문에 실축하지 않았을 뿐이다"

– 주제 무리뉴, 12-13 챔피언스리그 4강전 바이에른 뮌헨과의 승부차기에서 패한 뒤 인터뷰 (*각주1)

그럼 이제 '입체적 분석'을 가능케 하는 요소들을 세 가지 키워드로 살펴보자.




상대성(Relativity)

: 진 팀 선수가 MOM 받는 거 본 적 있나요?


경기가 끝나고 나면 다양한 매체에서 최우수 선수(맨 오브 더 매치, MOM)를 선정한다. 선수 개인에 대한 평점과 함께 그 경기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를 뽑는 것이다. 항상 일관되게도, 진 팀의 선수가 맨 오브 더 매치로 선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정해보자. 1-0으로 종료된 경기에서 승리팀은 별다른 공격 기회 없이 페널티 킥으로 결승골을 넣었고, 패배한 팀은 점유율 70%와 압도적으로 많은 유효 슈팅을 기록했지만 패했다. 경기의 맨 오브 더 매치는 패배한 팀에서 종횡무진한 공격수가 아니라, 승리팀의 골키퍼와 수비수, 또는 페널티 킥 기회를 얻어낸 선수나 그것을 득점한 선수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축구는 상대적인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한 팀의 공격이 잘 풀린다는 것은, 반대로 상대팀의 수비가 공략하기 쉽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대로 한 팀의 수비가 견고하다는 것은, 동시에 상대 팀의 공격이 짜임새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라는 속담처럼 축구는 두 팀의 공격과 수비가 맞물리며 전개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축구를 관전하는 우리는 항상 같은 상황을 볼 때 최소 두가지 상황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성을 거시적인 '공격 vs 수비'에서 찾을 수도 있고, 미시적으로 '선수 vs 선수'에서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염두에 두면 훨씬 다양한 각도에서 장면을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팀의 공격이 잘 되는 이유를 훌륭한 공격력에서 찾을 것인가, 상대 수비의 부족함에서 찾을 것인가? 공격과 수비 중 어느 쪽의 활약이 더 부각되고, 분석의 주안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는 경기를 분석하는 여러분의 선택이다.




다의성(Ambiguity)

: 이영표와 안정환의 해설이 차이나는 이유


"일단 전반전 15분 동안 메시 선수를 봤을 때는 '정말 많이 안 뛴다'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지금 많이 안 뛰어요. 메시 선수는 수비적인 공헌도보다는 특화된, 그러니까 어떻게든 계속해서 기회를 만들고 골만 넣으려는 그런 움직임을 가져가고 있다. 또 그런 기회를 계속해서 찾고 있다. 그래서 어슬렁거린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겠네요.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렇게 경기를 하는데, 포워드, 그러니까 앞쪽에서 나와주는 선수가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고 저렇게 걸어 다닌다면, 상당히 수비수로서는 불만이 많거든요"

– 2014 브라질월드컵 16강전 아르헨티나 vs 스위스 중계 中 이영표 해설



"메시가 볼을 저렇게 안 잡고 중원에서 어슬렁거려서 많이 안 뛴다고 하지만 자기가 저렇게 쉬면서 다음 갈 공간, 자기가 만들 위치를 머릿속에 지금 그리면서 뛰고 있는 것이거든요. 메시 선수가 굉장히 영리한 것입니다. (메시가) 지금 걷고 있으니까 상대 마크 선수가 걷고 있으면 수비도 걷고 있거든요. 그렇게 해서 같이 출발하게 되면 메시가 빠르기 때문에 이길 수가 없습니다. 메시는 걸어도 마크하는 선수는 걸으면 안 되는 거죠"

– 2014 브라질월드컵 8강 벨기에 vs 아르헨티나 중계 中 안정환 해설



2014년 브라질월드컵 당시 메시의 낮은 활동량에 대해 남긴 두 해설위원의 코멘트다. 각기 상반된 평가를 내린 이 내용이 다수의 축구 커뮤니티에서 공유되며 '수비수 출신 해설과 공격수 출신 해설의 시각 차이'를 보여주는 예로 지금까지도 종종 언급되고 있다. 이처럼 같은 선수의 플레이 하나를 볼 때도, 우리는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다각도로 해석할 수 있다.


다른 예로 누군가 '인 스텝으로 드리블을 하면 볼을 소유하는 데 불리하다'라는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치자. 실제 네이마르와 같이 드리블이 좋은 선수들은 인사이드 터치를 자주 가져가면서 볼을 자신의 몸 가까이에 두며 소유한다. 그럼 반대로 인 스텝으로 드리블을 즐겨 하는 선수, 호날두는 단점을 가진 공격수인가?


호날두는 볼이 자신의 몸에서 멀어져도 그것을 따라잡을 수 있는 신체조건과 스피드를 지니고 있다. 즉, 커버할 수 있는 반경 자체가 다른 선수들보다 넓기 때문에, 인 스텝 드리블을 즐겨 사용해도 볼을 빼앗기지 않을 능력이 있으며, 오히려 인 스텝 드리블만의 장점들을 가져올 수 있다. 다의성을 읽어 내는 시각이 늘면 늘수록, 축구를 분석할 때 창의적인 선수들의 플레이와 여러 변수를 분석하는 힘이 생긴다.




기회 비용(Opportunity Cost)

: 기회 비용은 축구에도 있다


경제학 용어인 기회 비용은 '어떠한 선택을 함으로써 사라지는 가장 큰 이익'을 뜻한다. 다의성이 "한 가지 행위를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의미한다면, 기회 비용은 '어떤 행위를 선택함으로써 사라지는 다른 가능성'을 의미하므로 서로 다르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자서전 <나는 즐라탄이다>에서 즐라탄은 아약스 시절을 회상한다. 그리고 그때 수비 가담 문제에 있어서 판 할 단장과 갈등을 겪는 일화를 소개한다.



"판 바스텐 코치는 코치는 공격하고 득점을 올리려면 9번은 힘을 아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솔직히 이제는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전설적인 선수였던 판 바스텐 코치 말을 들어야 할까요, 아니면 판 할 단장님 말을 들어야 할까요?" (*각주2)



즐라탄에게 수비 가담을 요구하는 판 할 단장과, 그것을 득점 찬스에서의 더 좋은 움직임에 방해가 되는 체력 낭비라고 생각하는 판 바스텐 코치의 의견이 대립하는 장면이다. 사실 두 사람의 주장 모두 틀린 게 아니다. 하지만 상황과 대상을 고려해 선택해야 했을 뿐이다. 만약 즐라탄이 판 할의 말대로 열심히 수비를 가담했다면 다른 선수들이 경기를 풀어나가기 더 수월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의 결정력을 가진 즐라탄과는 조금 다른 유형의 선수로 성장했을 지 모른다.


90분 내내 경기 시작 직후와 같은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는 선수는 많지 않다. 체력, 테크닉, 정신력, 스피드와 같은 한정적인 자원을 소모하는 선수의 입장에서 기회 비용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감독의 교체 카드, 그리고 90분의 경기 시간 역시 한정된 자원이다. 이렇듯 축구에 존재하는 다양한 제약 속 '선택과 집중'을 관찰하면 경기를 보는 또 다른 시야가 트인다. 

길게 풀었지만 사실 이 모든 내용은 하나의 결론으로 다시 귀결된다. 1편에서도 강조했듯 '한 가지 정답이 존재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축구 분석에서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축구는 좋고 이런 축구는 나쁘다'와 같은 생각은 여러분을 선입견에 가둬 축구를 다양한 시각으로 보지 못하게 방해하고, 입체적 시각을 쌓을 기회와 자신만의 인사이트를 도출할 기회를 박탈한다.


지금보다 입체적 시각으로 축구를 보는 팬들이 많아진다면 '다수가 공감하는 내용이 곧 맞는 정보다'라는 식의 축구에 대한 획일적인 시선보다는, 서로의 독창적인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생산적인 토론 문화가 활성화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그리고 그런 문화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전술, 전략 그리고 그것을 실전에서 보여주는 실제 선수와 감독들이 탄생하는 날도 올 거라 감히 믿어본다.




[요약]

눈에 보이는 축구에 대한 분석은 '평면적 분석',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분석은 '입체적 분석'

'평면적 분석'은 대체로 결과와 직결된 상황을 역추적하며, 보이는 상황을 넓게 볼수록 더 전문적인 분석이 가능하다.

'입체적 분석'은 상대성, 다의성, 기회 비용의 세 가지 시각으로 세분화할 수 있는데, 이 같은 접근 태도를 연마하는 것은 분석가로서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된다.



글 - 우지원

사진 - 오늘의 축구 / 커버 - Jon Candy (CC BY-SA 2.0)

교정 - 오늘의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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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준의 축구환상곡] '위대한 패장' 무리뉴, "초인은 영화에만 존재한다" 한준 기자, 스포탈코리아 (2012. 4. 26)

2) <나는 즐라탄이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 2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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