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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축구 Jul 27. 2015

챔스 결승, 그러니까 살자

독일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Olympiastadion)


아빠, 아이 그리고 챔결


언젠가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가 커서 축구를 보게 되면, 

그래서 챔피언스 리그가 뭔지 알게 되면, 나는 말할 것이다. 


"아빠는 챔스 결승을 경기장에서 직접 봤어"


아이가 믿을까? 안 믿을 수도 있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경기장에서 본 사람을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하물며 그 사람이 너의 아빠라니.


이정도면 믿겠지?


지난 5월. 한 스포츠 브랜드가 기자 몇 명을 독일 베를린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경기에 초대했다.


"혼자만 알고 계세요. 독일에 가실 거예요"


브랜드 담당자는 모든 것이 비밀리에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숲에라도 들어가서 “나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보러 간다!”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친구들이나 일요일에 함께 공을 차는 축구팀 동생들한테는 말해도 될 것 같은데, 안 했다. 나는 얇은 종이 한 장을 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만 힘을 주거나 바람이 살짝 불어도 종이가 구겨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죄송해요. 여기저기 알려져서, 당초 계획이 취소됐어요"라는 전화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만날 휩싸여 있었다. 이 비밀을 간직하고 무려 한 달을 살았다.


몇 명의 기자들과 비행기를 탔다. 메시와 네이마르와 피를로와 포그바의 경기를 보러. 헐. 그렇다. 챔스 결승전이 별들의 잔치인 것은 당연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보니 마침 너무 밝은 별들이 떠 있었던 것이다. 메시... 말이 더 필요해? 게다가 가장 존경받는 선수 중 한 명인 피를로는 그 경기가 사실상 은퇴 경기였다.


결승 대진이 무려 유벤투스 vs 바르싸


그러니까 나는, 아빠가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보고 왔다는 걸 못 믿는 아이에게 "메시와 네이마르 그리고 피를로가 뛰는 걸 봤어"라고 말해야 하는데, 반대로 내가 만약 이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라면 "뻥치지마. 내가 어리다고 무시함?"이라고 반문했을 확률이 99%인 거다. 그리고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겠지. 


"야, 우리 아빠가 챔스 파이널 직관 했다는 데 믿어야 되냐? 메시랑 네이마르랑 피를로가 뛰는 걸 봤대. 어이 없지 않음?"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


위대한 시간이 찾아왔다. 챔스 결승전이 열리는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에 도착했다. 정확하게는 그 근처에 갔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경기장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음, 역시 7만 4천 명을 수용하는 경기장 답게 관중이 많구만... 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 사람들이 다 경기장에 들어가려면 두 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그럼 경기 끝나잖아. 나는 당황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들은 표가 없었다. 혼잡한 틈을 타서 혹시라도 경기장 쪽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기회를 보는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 밖에는 다른 이유가 없었다. 


인산인해. 고지가 눈앞이야!


나는 그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던 틈을 창조하며, 마치 메시와 네이마르가 그렇듯이, 헤집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덩치 큰 가드 아저씨가 보였다. 자랑스럽게 결승전 티켓을 내밀었다. 그는 나를 거칠게 입장 시켜주었다. 드디어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 외벽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내 뒤에는 나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5초 정도. 

곧 내 시선은 여자들에게로 옮겨갔다. 어쩜, 이 우월한 인종 같으니라고. 유난히 몸에 굴곡이 많은 여자 둘이 서로 끌어 안고 '셀카'를 찍었다. 기분이 좋아보였다. 은근슬쩍 같이 끌어안아도 될 것 같았다. 살에 약간 파묻히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하늘에서 "와아아아아아아아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함성이 경기장 안에서 바깥으로 쏟아진 것이다. 나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좌석이 1층이면 더 좋았을 텐데 그 큰 경기장의 2층이었다. 배부른소리. 그래도 누가 메시인지, 누가 피를로인지 분간할 정도는 됐다. 


구역은 바르셀로나 팬과 유벤투스 팬들이 섞여 있는 중립석이었다. 바로 옆 투명 칸막이 넘어엔 바르셀로나 서포터들이 엄청난 함성을 지르며 붉고 푸른 물결을 이뤘다. 유벤투스 져지를 입고 온 나로선 천만다행이었다.


결승전이라 그런지 경기 시작 전에 하는 게 많았다. 우선 간단한 공연이 열렸다... 라고 적는 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색색 옷을 입고 운동장으로 몰려 나와서 챔피언스 리그 별을 완성시켰다. 준비를 많이 한, 장엄한 의식 같았지만, 빨리 메시와 네이마르와 피를로가 보고 싶었던 나로서는 그저 지루했다. 


그 와중에도 인상적이었던 건 유벤투스 팬들의 카드 섹션이었다. 스타디움 한 쪽에 거대한 빅이어 트로피 형상이 있었는데, 그 형상을 잡으려고 다가가는 두 손을 카드 섹션으로 표현했다. 심장이 뛰었다. 나는 유벤투스 팬이다.


빅이어를 향해 뻗은 두 손. 결국 닿진 못했다



그러니까 살자


경기가 시작되었다. 선수들이 달려가는 곳을 보면 어렴풋이 공이 있었다. 네이마르의 헤딩슛이 왜 무효가 됐는지, 내가 실제 그 장소에 있는데도 부랴부랴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고 나서야 알았다. 


하지만 그래도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나는 역사적인 선수들과 같은 시간 같은 곳에 있었다. 선수들처럼 나도 가슴이 뛰었다. 그러면서 나는 쉬지 않고 생각했다. 뜬금없는, 존재론적인 고민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여기 와 있는가, 나는 다시 이곳에 올 수 있는가? 


90분은 80분이 되었고 곧 45분이 되었다. 아쉽지는 않았다. 


경기가 끝났을 때 대형 화면에 메시의 얼굴과 피를로의 얼굴이 번갈아 등장했다. 메시는 웃었고, 피를로는 울었다. 아, 우리 를로 형. 내려가서 안아주고 싶었다. “형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줬는지 알아요?”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울지마요 를로형


피를로가 시상대에 올라서 준우승 메달을 받는 순간, 바르셀로나 팬들도 기립해서 박수쳤다. 피를로를 연호했다. 나도 피를로를 불렀다. 떠나는 피를로를 내 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나도 미련 없이 경기장을 빠져 나왔다. 


커다란 종이를 높이 치켜든 사람들이 있었다. 딴나라 말로 뭐라 뭐라 적혀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방금 끝난 결승전 티켓을 팔라는 뜻이었다. 티켓을 모으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내 결승전 티켓은 지금도 책상에 놓여 있다. 지금 막 경기를 보고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거기 뒀다. 죽을 때까지 안 버릴 거다.


가끔 친구들에게 말한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두 번 가는 사람이 지구에 몇이나 될까? 내가 그 중 한 명이 된다는 게 말이 돼? 그렇다면 이제 죽어도 되는 거 아니야? 


친구들은 대체로 고개를 끄덕인다. 살면서 이렇게 감격적인 순간이 얼마나 더 있을까? 아이가 태어날 때... 그래, 그 때도 엄청 감격스럽겠지. 이 역사적인 경험을 들어줄 아이가 태어나는 거니까. 


결승전을 보고 와서 나는 한동안 우울했다. 겨우 36세에 삶의 의미를 다 알아버린 사람처럼. 


그러나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살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챔스 결승을 두 번 직관한 사람이 되자. 아이 손을 꼭 잡고 경기장으로 들어가면서 "이봐,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은 처음이지?"라고 말하는 아빠가 되자. 아이도 평생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아이는 아이의 아이가 태어나기를 고대할 것이다. 아이의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감격적이지 않은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은 없다. 20년이 지나고 50년이 지나도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은 별 중의 별을 위한 단 한 경기가 될 테니까. 새로운 전설의 반열에 오르고 있는 선수 이름을 말하며 걔랑 메시 중에 누가 더 '낳'냐, 고 아빠와 아이는 즐거운 대화를 나눌 것이다. 


그러니까 살자, 나라가 이 모양이어도.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에 들어서던 순간


글·사진 - 이우성 (아레나 옴므+ 피쳐 에디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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