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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유 Nov 03. 2022

달리면서 울어 _ 창작과 달리기

20221020 D-18 _ 창작과 달리기

첫 대회 때 달렸던 양재천. 마치 생각의 숲 같다.


LSD 때 무리를 심하게 한 것 같아서 적어도 3일간은 충분하게 푹 쉬어주기로 했다. 사실 이런 생각이 없어도 바닥에 다리를 튕길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다행히 막 달린 날보다는 무릎 상태가 훨씬 나아지긴 했지만 천천한 속도로 뛰기에도 무리인 상황이었다. 공연 이후 바로 영화제 일정이 바로 붙어서 빡빡한 일정이었는데 다행히 이날 하루 스케쥴이 비어있었다. 그래서 공연 때 만난 분이 부탁한 작은 교육영상하나를 편집하기로 했다. 지역센터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안무교육을 한 결과 영상이었는데 소스와 배경이 한정적이라 4분 이상의 러닝타입을 지루하지 않게 배치하는 게 고민이었다.      


‘이럴 땐 뛰면 딱 좋은데’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뭔가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걷거나 뛰는 것은 창작자들이 많이 선호하는 방법이다. 많이들 알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도 자신을 러너라고 소개할 정도로 말이다. 많은 창작자들의 창작 습관은 다양하고 다 다르겠지만 나같은 경우에도 무언가 떠올려야 할 때 공백지나 하얀 모니터를 가만히 보고 있는 것이 좋은 아이디어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 오히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생각들과 인터넷 서핑 같은 생각의 도주로로 향하게 할 뿐이다. 어느 정도의 고민 이후에도 좋은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거나 좋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다지 정답같지는 않을 때, 나는 과감히 작업을 접고 밖으로 향했다. 지금처럼 뛰지 않을 때에는 2시간 씩 3시간 씩 한참을 걸었었다. 그러면 놀랍게도 걷는 동안 막혀져 있던 퍼즐이 조금씩 맞춰지고 결여되어 있던 조각들이 하나 둘 씩 찾아와주곤 했었다. 아마도 여러 가지 과학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뇌 또한 신체의 움직임이 가라앉아 있을 때 간만에 움직임을 주는 것을 적당한 자극으로 즐기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집중에 감옥에서 벗어 났을 때 유연에 열매에서 주는 다양한 소재를 주는 것 같기도 하다. 달리기는 걷는 것보다 빠르고 충격적인 운동이기에 걷기보다는 막혔던 생각에 도움을 못줄 것 같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지 않다. 나에게 있어서 달리기는 명상과 같아서 어느 난제에 대한 고민에 묶여 있던 실마리들을 풀어준다. 내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굳은살이 생겨 막혀있는 생각의 통로를 뚫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만 같다. 뛰면서 찾아온 고요함은 여기저기 막혀있거나 어질러진 생각들을 차츰차츰 정리해준다. 이런 측면에서 걷기와 달리기의 차이점이라면 걷기는 나 스스로와 하는 대화라고 표현할 수 있겠고 달리기는 뛰면서 하는 나만의 명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듯 생각이 막혔을 때 달리면 아주 좋겠지만 이날 나는 여러모로 달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저 모니터 속에 있는 소스들을 틀었다 껐다 할 뿐. 다행히 자정이 좀 지나가고 편집요정이 도래한 듯 편집 소스들이 유연하게 맞춰지기 시작한다. 아득했던 4분여의 곡 안에 여러 참가자들의 안무와 사진들이 정답게 붙기 시작한다. 오래간만에 몇시간 동안 엉덩이를 누르고 작업한 보람이 느껴진다. 걷기와 뛰기만큼 창작에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하는 나이지만 그래도 때때로는 오래 버티고 앉아서 파고드는 집중도 필요하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날의 나는 나대로의 사정이 있었고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들에게 어떤 생각의 벽이 굳어져 여러분들을 괴롭히고 있을 때 과감히 벽과 떠나 밖을 걷거나 뛰어보길 추천한다. 그럼 점점 굳건했던 생각의 벽이 허물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럼에도 생각의 벽이 당신의 유연한 사고를 가로 막는다? 그때는 잠을 한숨 자보는 것도 좋다. 잠재의식이 여러분 대신 여러분의 숙제를 대신 해줄 것이다. 이날 나는 이 작업 외에도 여러 가지 신경 쓸 것이 많았지만 다음날 지방 영화제로의 일정이 있었기에 여러 고민은 잠재의식에 맡기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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