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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유 Jan 25. 2024

달달하게 달리기.

<다시 달리는 글을 씁니다>

 2년 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비틀거리고 있을 때 저를 구한 건 달리기였습니다. 

1km이상의 거리를 뛴다는 것이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용기를 주었던 친구들의 도움으로 달리기와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5km, 10km를 도전했고 10km와 하프(20.195km) 대회를 나가기도 했습니다. 

이맘때부터는 점점 달리기가 구원의 목적에서 성취의 목적으로 변해갔던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던 것 같아요. 문제는 집착이 될 때부터가 문제였죠.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던 것을 이루고 나면 

자신이 이룬 것 보다 더 값어치 있는 것을 이루려고 합니다. 

제게 있어서 달리기가 그랬던 것 같아요. 

더 빠른 속도 더 먼 거리로 욕심을 내게 됐죠. 

이때는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을 때였습니다. 

일이던 개인으로건 뭐 하나 제대로 내세울 게 없다고 생각했었고 

이런 저에게 달리기의 기록과 도전은 꽤나 안정적인 자존감 치료제가 되었습니다.

이때의 제 수준은 조금 오랫동안 달린다는 것 뿐이었지만 

남들은 하지 않는 일이었기에 그건 제가 특별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위로가 되었나봅니다. 

그래서 저는 10k, 하프로 거리를 늘려가며 대회에 참가했고 결국엔 풀코스를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면서 어디든 통증은 있었습니다. 

처음엔 정강이가 있었고 이후에는 아래 무릎, 허리, 어깨 다양하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쉬면 나아질 정도였고 치명적인 부상은 아니었습니다. 

마치 안 하던 웨이트를 하면 근육이 생기면서 오는 통증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달리기를 하면 다리에 근육이 생길 테고 똑같이 아프면서 근육이 생기는 원리라고요. 

이렇게 잔부상을 거치며 저는 달리기에 익숙해졌고 

다리는 언제 아픈 적이 있었냐는 듯이 멀쩡했습니다.

 자신감이 붙어서 한강에서 산을 타고 하남시까지 달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뛰는 것도 아니었고 계속 이렇게 뛰다보면 

20km, 50km, 100km 그 이상도 달릴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러다가 만난겁니다. 장경인대.      


 풀코스 대회 전에 긴거리를 천천히 뛰는 훈련을 LSD라고 한답니다. 

Long slow distance의 약자라고 하는데 대회 두 달 전에는 

30km 이상을 몇 번 해줘야 한다고 해서 풀코스 대회 적응차 달려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 전까지 25km까지는 달려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대충 달리다 끝내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한강을 나갔고 

긴 발톱에 딱 맞는 신발이었지만 천천히 뛰니까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왼쪽 엄지발톱이 묘하게 신경쓰였고 그건 미세하게 왼쪽 무릎에 텐션을 주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5km, 10km, 20km가 되었고 그때 쯤 이거 뭔가 문제가 있다 느꼈죠. 

왼쪽 무릎 바깥쪽에 묵직하게 땡기는 통증이었는데 

그게 현재 저에 러닝메이트가 된 장씨 (장경인대 통증)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때 달리는 걸 바로 멈췄다면 다시 장씨와 만나는 일이 없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미련하게 5km를 더 달렸고 달리기를 마친 후 긴장이 풀린 무릎엔 더 큰 통증이 다가왔습니다. 

걷기가 힘들 정도에 통증이었고 이런 통증은 처음이었죠. 

당연히 병원에 가야될 정도라고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풀코스 대회 50일이 채 안 남은 시점이었습니다.      


장씨는 그 이후로 계속해서 저를 찾아왔습니다. 

하루 쉬면 괜찮겠지 생각했지만 안 괜찮았고, 이틀, 삼일, 일주일 다 안 괜찮았습니다. 

그나마 열흘 정도 지났을 때 살짝이나마 뛸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조심스럽게 남은 풀코스 대회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이나 무모한 것이 

하프의 거리도 뛰지 못하게 된 다리로 무슨 풀코스 준비를 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항상 느끼는 거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정신’은 

그 어떻게가 천당일지 지옥일지 모르는 것임에도 베팅한다는 데에 큰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제 안 좋은 버릇이었죠.     

 

풀코스를 달리고 있는 나를 상상하면 어떤 모습일까요? 

각자마다 다양한 모습들이 있겠지만 

저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광야를 달리는 소떼들처럼 

힘차고 자유롭게 달리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첫 풀코스 대회에 제 모습은 

무리들과 한참 거리가 벌어져 배번호를 붙이고 절뚝이며 가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달리기가 나를 패배자로 만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결국엔 달리기가 내가 패자임을 증명하는 것 같았어요. 

비참하고 괴로웠습니다.      

브런치에 대회 전까지 달리기 일기와 동화를 썼었는데 

결국 대회 결과는 쓰지 못했습니다. 

달리기가 너무 미워져서 생각하기도 싫어졌었거든요. 

내가 해왔던 달리기와 달리면서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 

그리고 그것을 재료로 만들었던 이야기들. 

모두 의미가 없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애초부터 달리기라는 것이 나와 맞는 것이 아니었던 거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렇게 한동안 안 달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오래간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네요. 

2022년 11월 6일이 대회날이었는데 그 이후에 d-17일 글 이후로 없는 걸 보니 

어떻게는 후기를 쓰려고 했지만 도저히 내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현재. 저는 다시 달리고 있습니다. 

1년이 넘는 공백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이 이야기는 앞으로 제가 달리는 이야기를 하며 차근히 해보려 합니다. 

무언가를 원하고 열심히 준비해서 이뤄내는 이야기도 좋지만 

그것보다는 대차게 넘어지거나 다친 후에 

털어내고 다시 뛰는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달리기가 주가 되겠지만 달리기 아닌 것들도요. 


그럼 자주 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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