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부부로 살 때, 주말만 기다린다는 남편이, 어느 금요일에 집으로 올라오면서 바로 후배를 만났다. 막내아들인 남편이 친동생처럼 아끼는 후배이다. 20여 년 전에 직장동료로 만났지만, 비슷한 성향인 사람이었는지 아주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그는 시아버님과 친정아버지와 시어머님 장례식장에 거의 가족처럼 우리와 함께했었고, 장지까지 달려와 우리를 위로해 준 사람이었다. 나 또한 사랑하는 시동생 같은 느낌이어서 남편이 그 후배를 만난다고 하면, 늘 맛있는 거 많이 사주라는 말을 빼놓지 않곤 했다. 그의 생일 만남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아빠가 그 삼촌을 만난다고 하니 집에 있던 막내딸이, 밤 9시면 가게 문 닫을 텐데 아쉽겠다고 말했다. 역시나 남편은 9시에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맥주 한 캔을 마셨고, 이어서 또 한 캔을 마셨다. 다른 때 같으면 내가 조금이라도 같이 마셔주겠지만, 목에 염증이 심한 상태라 나는 꾹 참았다.
그다음 날 아침, 남편이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토했다. 그리고 자다가 또 토하기를 반복하며 계속 잠을 잤다. 내가 오전에 이비인후과에 다녀오면서 사 온 숙취해소 약도 아무 소용이 없는 듯했다. 겨우 주말 이틀을 푹 쉬는 건데, 남편 모습을 보니 정말 안쓰러웠다. 오후 네 시쯤에 죽을 좀 먹어보겠다는 남편은 일어났지만 또 화장실로 달려갔다. 결혼 후에 가끔 술병이 난 적이 있었지만 그래도 잘 회복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과하다 싶어 병원에 가서 링거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아야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지만,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내 말을 들었다. 술병으로 병원에 간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남편이 심하게 술병이 난 건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스트레스가 심했던 업무가 몇 개 있었고, 코로나로 일찍 문을 닫는다고 하니 식사 후 한 시간 동안 소주 두 병을 급하게 마셨고, 집에 돌아와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 맥주 두 캔을 마시던 습관, 그리고 오랜만에 마신 술이었다는 것, 모두 복합적일 것이다.
링거주사를 맞고 돌아와 약을 먹은 후에 쉬다가, 남편 몫으로 조금 남겨놓았던 백김치 국물을 마셨다. 그리고 조금 후에 "귤 주스를 마시고 싶은데, 밤에는 녹즙기가 시끄럽겠지?"라고 말해, 나는 난생처음 보에다 귤 다섯 개를 꼭 짜서 남편에게 주었다. 너무 맛있다고 감탄을 하던 남편은 좀 쉬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대기업에 다니던 젊은 시절, 주중에 반 이상 술을 마시던 때가 많았다.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던 워킹맘이었던 나는, 아내에 대한 배려심이 없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자기만 그런 게 아니라고,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반복했던 남편이었다. 공기업으로 직장을 옮기며 퇴근이 훨씬 빨라졌고, 술 먹는 날도 비교가 안될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 사람은 어느새 정년퇴임을 했고, 이어서 새 직장에서 새로운 일을 하고 있다. 염색을 하지 않는 남편의 머리카락은 잘 어울리게 흰머리가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어젯밤 남편의 자는 모습을 보니 결혼생활 34년이 사진처럼 스쳐 지나갔다.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사랑한 시간이 더 많은 남편이었다.
사진 : 네이버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