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결혼기념일이다. 남편은 어젯밤에 내게 말했다. 나를 위해 목걸이와 반지를 준비했다고, 기대해도 좋을 거라고. 어머님은 우리와 함께 오래 사셨기 때문에, 내 결혼기념일이면 집으로 오는 꽃다발과 선물을 알고 계셨다. 꽃다발을 한 번도 받지 못하고 사는 큰며느리가 안쓰러워 한 번은 당신이 직접 꽃다발을 사다 주고 왔노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며느리 두 사람에게는 참 힘든 면이 많았던 시어머님이셨지만, 어머님은 속정이 꽤 깊은 분이셨다. 매해 보름날이면 오곡밥과 나물을 정성껏 만들어서 꼭 큰며느리 집에 갖다주고 오셨다. 더군다나 들기름 냄새를 싫어하는 형님을 위해 꼭 참기름으로 나물을 무치셨다. 그런 어머님 성향이 있으셨기 때문에 당신은 스스로 "나 같은 시어머니가 세상에 어딨냐?"라고 자주 말씀하신 것이다. 어머님은 장점이 많은 분이셨으면서도 말로 그 '공'을 다 깨는 분이셨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머님의 사납고 가시 돋친 말투만 아니었으면, 어머님은 정말 좋은 시어머님이셨을 거라는 안타까움이 있다.
어머님은 열여덟 살에 결혼을 하셨다. 이웃 동네에 사는 두 살 많은 남자라는 것만 알았지,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한 채 말이다. 결혼이란 걸 하고 나서야, 남편이라는 사람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아셨다. 어눌한 말투와 어두운 귀, 하지만 정도가 아주 심한 상태는 아니었다고 한다. 아버님은 결혼 후에 군대를 세 번이나 다녀오시며 청각을 완전히 잃으셨고 수전증을 달고 사셨다. 나는 태어나서 '화상'이라는 단어를 어머니 입을 통해 처음 들었다. 어머니께 아버님은 평생 자기를 고생시킨 '화상'이었다. 오래전 시골 큰 아버님 댁 근처 작은 집에 아버님을 홀로 남겨 두고, 어머님은 삼 남매를 공부시키기 위해 수원행을 택했다. 내 남편이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부터 두 집 살림을 하며 힘겹게 네 사람을 지키고 사셨다. 어머님은 점점 강해지고 독해지셨다. 어머님 입에서는 쉽게 독설이 흘러나왔고, 그 독설은 듣는 사람들을 매우 아프게 했다. 어머님과 살았던 17년 동안 들었던 독설 중에 내 가슴을 가장 아프게 했던 말은, "너한테 배우는 학생들이 정말 불쌍하다."였다. 그 말은 두고두고 내게 깊은 상처로 남았다.
살면서 아버님의 존재는 '시골에 홀로 두고 온 아이' 같았다. 어머님에게 아버님은 '의무'이지 '사랑'이 아니었다. 오로지 자식에 대한 집착으로 모든 걸 다 바치고 사셨던 어머니와 시골에서 논과 밭을 지키고, 하늘과 들판을 바라보며 사셨던 아버님은 '부부'의 모습이 아니라, 버릴 수 없는 그 무엇으로 보였다. 어머님 기에 눌려 내 몸 하나 지키기에도 버거운 시간 속에서, 늘 숙제처럼 내 맘속에 살아있던 아버님의 존재! 난 용기를 냈다. 더는 미루지 말자는 내면의 소리가 들렸다. 남편과 함께 아주버님 댁에 찾아가서 아버님도 함께 모시고 살겠다고 말씀드렸다. 한 공간에서 살 수 없어 보이는 두 분이지만, 각방을 써야 하는 두 분이지만, 한 지붕 아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싶었다. 어머님은 우리가 살던 그 집으로는 아버님을 모시고 오지 못하게 하셨다. 알고 보니 동네 친구들에게 남편의 존재를 알리지 않으신 거였다. 시어머님은 넓은 전세로 이사 가자는 내 제안에도 내켜하지 않으셨다. 평생 전세로 살았는데, 이제 처음 내 집을 가졌는데, 또 전세로 가기는 싫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 융자를 더 받아 큰 집을 분양받는 거였다. 나는 아버님을 모시고 사는 모습을 자주 상상했다. 퇴근을 하고 아버님과 손을 잡고 동네를 한 바퀴 도는 모습, 아이들이 아버님 방에서 재롱떠는 모습... 그 좋은 모습들 속에 아버님을 보고 웃지 않는 어머님 얼굴이 보였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어머님 몫이 아닌가!
큰 아파트로 우리 가족은 22년 전에 입주했다. 아버님 방이 이미 정해져 있는, 아버님 덕분에 마련하게 된 그 집! 하지만 아버님은 그 집으로 들어오시지 못했다. 입주하기 4개월 전에 저 먼 하늘나라로 급하게 떠나셨기 때문이다. 내가 받아들이기엔 너무 큰 슬픔이었다. 난 그 당시 육아휴직 중이었는데, 셋째 아이를 업고 매일 미사를 다녔다. 그리고 매일 울었다. 한 달을 울었다. 우는 나를 보시고 그만 울음을 멈추라고, 아버님이 편히 떠나지 못하신다고 신부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그즈음 아버님이 내 꿈속에 나타나 활짝 웃으셨다. 나 괜찮으니 그만 울라는 메시지로 느껴졌다. 그래서 난 아버님을 내 가슴에서 놓아드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