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에 형님 댁에 차를 세워두고 전화를 드리자마자 바로 내려오시는 시어머님을 뵐 때마다 내가 느끼는 건, 어머님이 엄마를 기다리던 아기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거다. 그 눈빛에 난 활짝 웃으며 어머니 손을 잡지만, 가슴 한 켠이 늘 저려왔다.
"어머니, 드시고 싶으신 게 떠오르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제가 만들어 드리거나, 못 만들겠으면 구해 올게요."
먹고 싶은 게 뭐 특별히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어머니는 며칠 전에 만두가 먹고 싶다고 해서 아주버님이 만두를 사 왔는데, 그것도 수원의 유명한 집까지 가서 사 왔다고 하는데, 맛이 별로였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어머니께 만두를 급하게 사다가 드렸다. 어머니는 맛이 좋다고 하시며 세 개를 꼭꼭 씹어서 드셨다.
'주말에는 뭘 만들어갈까'를 고민하는 평일, 그리고 음식을 싸가지고 가서 어머님과 함께 먹고, 같이 드라마를 보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주말! 어머니는 아기의 하루와 비슷하여 '주무시다 깨어있다'를 계속 반복하신다. 밤이나 낮이다 상관없이 계속 그 리듬으로 어머님의 하루가 지나간다.
어머니는 요즘 화를 내시는 일이 없다. 늘 '맛있다, 고맙다, 참 곱다',라는 긍정의 말들만 하시고, 얼굴엔 늘 미소가 잔잔하시다. 눈빛은 늘 따스하고 은은하다. 화장실에 들어가셔서 30분 후에 기운을 다 빼고 나오시면서도, '나 한숨 자고 올게. 놀고 있어."라고 다정히 말씀하시고 안방으로 들어가신다.
어머니는 마치 천사 같으시다. 몸만 아픈 아주 마른 천사! 저분이 며느리 둘을 울리고 괴롭히던 분이었다고 누가 상상이나 하랴! 나뿐만 아니라, 따로 살면서도 어머님에 대해 노이로제 증세가 있던 형님은 나보다 더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았던 분이라 굉장히 고통스러웠다고 내게 고백했다. 그 고통이 너무 커서 감당이 안 될 때, 동네 할머니가 형님을 교회로 인도했다고 한다. 형님은 그 안에서 큰 자유함을 얻었고, 인간관계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닫고 실천하셨다. 형님은 직장 생활하던 나보다 더 바쁘게 교회 활동에 전념하셨고, 우리 시댁의 주말 행사들은 형님의 교회 활동 시간을 피해서 정하게 되었다. 권사님에, 수석 구역장에, 성가대 부단장에, 해외 선교 팀원이기도 했다. 내 주변의 교회 신도 중에 가장 열심히 활동하는 분이셨다.
형님은 이성적으로 거리감을 유지하며 맏며느리 역할을 했고, 나는 이성과는 거리가 먼 상태로 몸으로 마음으로 부대끼며 많이 힘들어하며 살았다. 형님은 늘 건강하셨고, 난 늘 몸이 아팠다. 형님은 결혼 이후 병원에 한 번도 입원한 적이 없었지만, 난 열다섯 번인가, 열여섯 번인가를 입원을 했다. 형님의 갱년기는 증세 없이 수월하게 지나갔지만, 난 아주 심하게 지나갔다. 땀이 줄줄 흘러 잠을 자주 설치고, 갑자기 가슴에 불이 확 올라 얼굴이 벌게지는 증세도 심했다. 아주 심한 경우에는 화장을 할 수도 없었고, 더 심한 경우는 사람을 만날 수도 없었다. 비 오듯 땀이 흐르니 말이다. 내 힘들었던 삶의 성적표가 마치 갱년기 증세인 듯 보였다. 갱년기 증세가 하나도 없이 살았다고 자랑하던 형님 앞에서 난 땀을 닦으며, 살짝 부러워했던 것 같고, 살짝 억울해했던 것도 같다.
어머님의 직장암 말기 판정 이후 난 또 심하게 몸이 안 좋아졌다. 충격을 크게 받았고 너무나 마음이 아파 견디기가 어려웠다. 10년 단골인 한의원에 계속 다니며 치료를 받고 한약을 네 재나 먹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보통 한두 달이면 회복되던 몸이 이번에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주말에 겨우 어머님과 시간을 보내는 게 그나마 '내 역할'을 하는 정도였다. 남편은 어머님 걱정에 내 걱정까지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렇게 네 달이 지났다. 어머님의 컨디션은 조금씩 나아지고 계셨고, 나는 어느새 회복이 되어 맑은 정신으로 새벽에 일어나 매일 글을 쓰고 있다. 네 달 전 내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원장님, 우리 형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이 힘든 시댁에 시집을 왔어도 아프지 않고 잘 살았잖아요.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역할을 하며 이성적으로 생활해 나가는 게 정말 대단해요. 이번에도 전 바보같이 몸이 망가지는데, 우리 형님은 말짱하잖아요. 어머니 모시고 사는 요즘 평일에도 여전히 교회 활동으로 바쁘게, 건강하게 사시잖아요. 그런 모습이 가끔은 부러워요."
한의원 원장님이 신발을 신고 나오려는 내게 미소를 보내며 말씀하셨다.
"선생님이 더 대단한 거예요. 부러워하지 말아요. 시어머님의 삶에 대해 위대하다는 표현을 쓰신 적 있죠? 선생님이야말로 위대해요. 어머님을 뼛속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시잖아요. 요즘 제가 많이 배우고 있어요. 힘내세요. 좀 있으면 몸이 회복되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자신을 보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