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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Oct 16. 2024

나는 부부 싸움을 하지 않는다

부부 싸움 (2017년 어느 날의 일기)


어제 늦은 밤, 치킨과 생맥주를 시켰다. 일주일 중 가장 마음 편한 금요일 밤을 그냥 보내기에는 아쉽지 않은가! 하하 호호 대화를 나누면서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과 이기적인 형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화제가 돌아갔다. 그러다 불현듯 어제 남편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받고 싶다고 했다. 몇 년 전에 아침마당에 나온 정신과 박사의 말을 듣고 나는 아주 가끔 분노가 치밀 때 남편에게 이 방법을 써먹는다. 그 박사는 이런 말을 했다.


'여자들이 부부 싸움을 할 때 보면, 아주 오래 전의 문제를 다시 꺼내 분노를 표출하곤 하는데, 그 상황에 대해 남편들은 짜증을 냅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여자는 또 같은 내용을 반복하며, 그 시간과 장소를 정확히 떠올리면서 공격을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경우도 많지요. 여기서 문제점은 아무리 시간이 지났어도 여자의 고통은 그 시점으로 돌아가 그 순간의 고통을 똑같이 느낀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건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인 거죠. 그 고통이 치유받기 위해서는 진심 어린 남자의 사과입니다. 그 진심이 느껴질 때 여자의 상처는 아물게 되지요. 그걸 많은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계속 고통이 반복이 되고 있는 겁니다."


나는 그 박사의 말대로 내 마음의 고통에 대해서 담담히 말하고, 남편의 사과를 받아 마음이 풀린 경험이 있다. 어제도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그 시점으로 돌아가 내 속 마음을 풀어냈다.


"여보, 내 말 잘 들어 봐. 난 결혼 전에 아주 건강하고 발랄했던 사람이었어. 그리고 이 세상을 사람답게 잘 살고 싶었던 사람이었어. 당신이 어머님을 모시고 살자고 했을 때, 난 그 자리에서 바로 오케이를 했지. 결혼 후 어머님도 그러셨어. 큰며느리가 나를 안 모신다고 했으니, 니가 나를 모시고 살아야 한다고. 나는 그러겠다고 어머님을 안심시켰고, 그때의 내 마음은 100% 진심이었어. 시간이 흐르면서 어머님을 왜 형님이 안 모시겠다고 했는지 알겠더라고. 한 번도 모시고 살지 않았던 사람이 그리 고통스럽다고 하는데, 모시고 살던 나는 어떠했겠어?  어머님이 나를 힘들게 할 때마다 당신은 그랬지. 당신이 참아야 한다고, 어머니는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거칠어지신 거라고, 넌 착한 사람이니까, 넌 선생님이니까, 넌 행복하게 잘 자란 사람이니까, 고통이 많으셨던 어머니를 이해하고 품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다 기억나지? 당신 말을 들어서가 아니라, 어머니 일생이 가여워서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어도, 거짓 험담을 들어도 많이 참고 또 참았지. 나 또한 가슴에 피멍이 들고 자주 한숨을 쉬는, 정신이 밝지 못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지. 결혼생활 6년이 지나면서, 학구인 동네 사람들에게 '어머니를 버리고 이사를 간다'라는 거짓말을 들었을 때, 이러다가는 내가 죽겠구나, 싶었어. 이러다가는 내가 정신 병동으로 가겠구나, 싶었어. 그래서 당신에게 말했지. 이제는 못 모시고 살겠다고, 내가 돌아버릴 것 같다고. 비쩍 마른 환자의 모습으로 겨우 학교만 다니던, 불쌍한 외모의 내 모습이 떠올라. 자주 아프고 자주 입원했던 나였는데, 당신은 내게 그랬었지. 이혼은 해도 어머니는 포기 못 한다고. 부부 사이도 좋았고, 아이가 둘이나 있는 아내에게 말이야. 그 말은 내 가슴에 대못이 되었지. 그리고 종종 나를 분노하게 만들고 당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어. 당신, 그 말을 들은 순간의 내 고통이 어땠을지 생각해 봤어? 만일 이해가 안 된다면 아버지 심정으로 당신 딸의 모습이라고 상상해 봐. 내 말 이해해? 진심으로 내게 미안하다고 사과해 줘, 진심으로."


남편은 내 말을 중간에 자르면서 사과를 하려고 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나는 순간 화가 났다. 내 고통을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충 빨리 사과하려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내 언성이 높아졌고 남편의 언성 또한 높아졌다. 우리는 그렇게 어제를 마무리했다. 남편은 지금 자고 있고, 나는 새벽에 깨어 한참을 뒤척이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하늘나라 어머님에 대한 상처는 다 녹아내리고 사랑만이 남아있는데, 내 살아온 삶이 넘치게 힘겹다 보니, 아직도 불쑥불쑥 분노하게 만드는 찌꺼기가 남아있다.




그랬던 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저희 부부는 싸우지 않고 삽니다. 제 마음속 울화도 많이 빠져나갔고요. 서로가 노력한 덕분이겠지요. 그래서 많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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