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니콜라 맥더못의 리추얼
무심코 본 높이뛰기 결승전이었다.
딱히 응원하는 선수도 없었기에 나는 내가 이번 생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을 해내는 선수들을 초능력자를 보는 것 마냥 보고 있었다.
때마침 호주의 니콜라 맥더못의 순서.
몇 마디 중얼거리고 활짝 웃으며 이내 머리 위로 박수를 치자,
객석에 있던 호주 선수(들로 추정되는) 관객들이 힘을 한 층 더 보태기 시작했다.
통, 통, 통 경쾌하게 몇 발자국 뛰어올랐고, 이내 그녀는 2.02M의 호주 국가 신기록을 세웠다.
환호하는 그녀의 모습에 뒤이어 다시 재생되는 그녀의 높이뛰기.
그리고 다시 카메라에 잡힌 그녀는 벤치에 앉아 노트에 정신없이 펜을 놀리고 있었다.
뭐 하는 거지????
방금 국가 신기록을 갈아치웠는데, 올림픽인데, 결승전인데, 아직 시합 중인데!!!
어떻게 그 순간에 무언가를 기록할 수 있는 거지???
나는 그 모습이 너무나 생소하고 신기하고 충격적이어서
그녀의 시합을 계속 보았다.
시합 중 그녀는 뛰기 전 쉬는 시간에 자신의 메모를 보았고
뛰고 나서는 새롭게 기록을 하는 모습을 어김없이 보여줬다.
이 시합에서 니콜라 선수는 은메달을 차지했다.
시합 후, 그녀의 이러한 행위(?)가 너무 궁금하여 알아보니
워낙 머리가 좋고 생각이 많은 니콜라 선수를 위해
그녀의 오랜 감독과 니콜라 선수가 함께 생각해 낸 리추얼이라고 한다.
머리가 좋은(?) 선수들은 다른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고 머릿속으로 지나치게 분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녀 또한 그랬기에 다른 선수들의 플레이는 보지 않고, 그사이 스스로가 기록을 하거나 했던 것을 봄으로써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을 하고, 본인의 플레이에 대한 영감을 얻고, 그것을 코치와 공유함으로써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다.
물론 이건 리추얼의 효과적인 면이고
니콜라 선수가 이러한 리추얼을 하게 된 경위는, 기사로 추측하건대
어느 날 그녀가 코치가 없는 사이 기록을 경신했지만 그녀가 그 순간 집중하고 있던지라, 자신이 얼마나 뛰었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전혀 기억하고 있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마도 앞으로를 위해 (순간에 집중하기 위해) 기록이라는 리추얼을 시작하지 않았을까?
나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주변의 시선에 신경 쓰느라 스스로가 어떤 감정을 지니고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등 많은 것을 놓치고 산다.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집중하기 위해 니콜라 선수처럼 과감하게 순간을 기록한다면
나의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매번 글을 잘 쓰고 싶어서 '좋은 타이밍'을 노리지만, 사실 알고 있다. 그런 타이밍 따위는 없다는 것.
결국 이러한 잘하고자 하는 스스로의 욕심이 즐기고 싶은 마음을, 잘해야만 하는 의무감으로 변질시키고,
그 의무감은 이내 부담감으로, 이윽고 포기로 날 이끈다.
아무리 흥분되는 순간에도 침착하게
수많은 카메라가 앞에 다가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이 기록을 하는 니콜라 선수의 모습이
한 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