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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간호사 Aug 05. 2022

이유는 아무도, 알 지 못한 채로 -2

hanging(액사) 환자, 두번째


환자는 두 자녀의 어머니였다.


그리고 우리가 그녀가 병원에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것, 아니 믿을 수 있는 것은 딱히 없었다.


.

.

.


그저 이 환자는


Hanging (*목을 매고 자살 시도) 으로 내원했다는,

방에서 목을 매달고 있던 채로 발견되었다는 보호자들의 진술뿐이었다.







입사한지 1년이 채 안되었던 때였다.


여전히 A룸을 보고 있었다. 환자를 집에서 review해보니 hanging 환자가 또 입원했다. 나이는 40대, 여성환자였다.



입원기록지를 보았다.

내가 인계를 준비할때 가장 먼저 보는 기록지.



간호사로 일하고 인계로 죽어라 태움당했다. 그래도 6개월이 지난 지금은 인계가 조-금은 나아진 상태였다. 환자를 살필때 처음엔 나이, 성별, 진단명을 적은 후 갖고 있는 과거력(*이전에 받았던 질병, 진단명)을 파악한다. 그리고 이번에 병원에 왜 왔는지, 즉 주호소를 적는데 보통 입원기록지에 대부분 나와있다.


그리고 이후엔 경과기록지, 협진내용, 간호기록지를 보며 과정들을 살피고 중요한 것들을 파악한다. 나갔던 검사들을 정리하고, 검사에 따라 무엇을 했는지 이후엔 어떻게 달졌는지 정리하는데 검사결과를 쓰기 위한 칸들을 비워놓는다. 과정이 정리되면 검사결과들을 보며 비워둔 곳들에 채워놓으며 인계를 마무리한다.



어찌되었든 이 환자의 인계준비를 위해 입원기록지를 가장 먼저 까보았다.






상기 환자 2018년 6월... 집에서 hanging 상태인 것을 남동생이 발견. 최근 남편과의 갈등으로 우울해했다고 이야기하며 유서는 없었다고 함.




'......' 할 말을 또, 또 잃어가는 케이스인가.

남은 기록들을 차근차근 살펴나갔다.





의식 사정(LOC) , 총 5단계로 나뉜다. 출처: 해찬이의 간호일지







환자의 동공 사이즈는 이미, 7mm씩(*정상 2-4mm, 빛에 즉각 반응) 커져있는 상태에 빛에 반응하지 않았고, 그 어떤 자극에도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인공호흡기 상에서 보이는 자가호흡 또한 보이지 않았다.


즉, coma였다.






한 동안 나는 데이로 근무했다.

데이 근무때 보통 면회는 점심시간쯤이었는데, 그 때문인지 보호자는 남편만이 내원해오고 있었다.



남편은 한 동안은 우리에게 아무런 질문도 없이 멍하니 자신의 아내를 심각하게 쳐다만 보았다. 남편은 의료진에게 질문하는 것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자신의 아내에게 "얼른 일어나, 아이들이 당신을 기다려." 라는 어쩌면 기본적인- 그 어떤 바람조차도 없었다.



남편에게 그 어떠한 일로 말을 걸고자 했을때, 남편은 의료진이 해달라는 것을 군말없이 해주었다. 간호사들이 그에게 건낼 수 있는 말은, 환자 상태에 대한 내용을 함부로 이야기했다가는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끽해봐야 '기저귀가 다 떨어져가서 사다주셔야합니다.' 등의 부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주치의가 면회시간에 찾아와 상태설명을 한다 하더라도 남편은 아무 말도 없이 듣기만 했다.




"저 환자 보호자, 남편은 말야."

.

.

"환자 상태에 대해 agree가, 그니까 납득이 되는 건지.. 아님 믿을 수가 없어서 저런 반응인건지 모르겠어."


우린 환자와 보호자의 관계에 대해 함부로 예측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지만 hanging 환자에게 있어서 보호자의 표정은 모두에게 의문을 자아낼만큼 알 수 없는 반응이었다.






그렇게 며칠간은 더 데이로 근무했다.

데이때, 보통 오전 8-11시 사이에는 과별로 전문의들과 해당 과의 레지던트들(주치의)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회진을 하며 환자들 상태를 살피고, 의식이 있는 환자에게는 상태 설명을 한다.



그리고 간략하게 앞으로 어떤식으로 치료방향을 잡을지, 이야기를 나누고 오더를 바꾸기도 한다.

해서, 담당 간호사와 부서장(수간호사)이 회진을 따라다니며 치료방향에 대해 함께 논의해보기도 하고, 그들의 대화를 통해 이 환자의 치료와 예후에 대해 예측해보기도 한다.



간호사가 환자를 파악할 때 어쩌면 가장 중요한게 이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치료방향을 잡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 점들을 알게 되었을 때 서로가 인계를 하며 환자를 케어해야하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담당 간호사가 회진을 따라다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찌되었든 환자가 동공 반사도 없고, 온갖 자극에도 전혀 움직임도 없었던 것은 물론, 인공호흡기 상 자가호흡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뇌사라고 볼 수 있는 상태였다.


가끔 이렇게 뇌사로 추정되는 환자들 중에 젊고 건강한 경우, 장기 기증에 적합한 환자라 보여지기 때문에


보통 일반 외과(*상,하복부-간,담도,췌장,식도,위,소대장,직장 등 온갖 장기를 수술하는 과라고 생각하면 된다.) 담당 의료진들(전공의, 주치의, 전담 간호사 등)과 장기기증 코디네이터가 상태를 보러 오기도 한다.



하여, 일반 외과 의료진들이 이 환자를 보러 우리 부서에 찾아 왔었다.


5명 정도 되는 의료진들 무리였다. 전공의와 레지던트 2명, 전담 간호사 한 명과 장기기증 코디네이터 한 명이 방문했다.


사실 당시만해도 나는 신규간호사였기 때문에 병원에서 장기기증을 어떤 절차를 밟아가며 진행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환자 나이가 어떻게 된다고?" 전공의가 자신의 무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46세 여성분이십니다." 코디네이터가 답변했다.

"history(*과거력, 과거에 앓고 있던 병명)는?"

"없습니다."

"아주 적합하네? 보호자분들 면회하실 때 한 번 설명드려보고 뇌사판정 절차 진행하는 걸로."

"네. 알겠습니다."



일반외과에서 이 환자의 장기기증에 대한 이야기는 간결했다.

일반외과에서 환자를 보고 가는데에는 5분도, 아니 3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일반외과 무리는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부서를 떠나려는 듯했다.


아주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근데,"

전공의가 갑자기 의구심을 갖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일반 외과 무리의 다른 일원들이 그의 말을 기다렸다.



"..이 환자는 hanging으로 왔는데, 삭흔(*)이 없네."


*삭흔: 끈이 목 부위를 압박하여 피부에 형성된 압박흔 또는 압박성 피부 까짐. 목맴에서 가장 중요한 소견,

출처: 네이버 사전






환자의 기록들을 매일이 멀다하고 살펴봤다. 내용은 늘, 알고 있었다. 외울정도로 하루에 몇 번이고 환자의 기록을 까보게 되었다.


이러면 안되지만, 이렇게까지 간호사인 내가 그들의 속사정을 생각할 이유는 없었지만,


그냥 무의식 중에 내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고 있었다.




목을 매달고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은, 적어도 이정도의 컨디션이 될 정도였다면 목에 깊은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고로, 이 환자에게서 목에 삭흔이 없다는 것은 결국 환자가 coma(*무의식 상태) 상태가 된 것은 '목을 매달고 자살시도를 했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상기 환자 집에서 hanging 상태인 것을 남동생이 발견. 최근 남편과의 갈등으로 우울해했다고 이야기하며 유서는 없었다고 함.'


입원 기록지에 나와있던 유일한 단서, 였다.



이 환자가 목을 매달아 자살을 한 게 아니라면, 입원기록지 당시의 가족의 진술이 거짓이라는 것이 되기 때문에 누군가 그녀를 해하고 목매달아 죽은 것처럼 위장한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의심이 가는 사람은 두 사람으로 좁혀질 수도 있겠는데,


첫번쨰, 입원기록지 작성 시 진술한 '남동생'이 그녀를 해치고 위장 후 거짓 진술을 했거나,

두번째, 입원기록지에서 이야기하듯 '갈등이 많았던 남편'이 가장 유력하다.

.

사실, 모든게 우리의 상상이고 추측일 뿐이었다.

.

간호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일반외과에서는 보호자에게 장기기증을 말씀드리기 위해 우리 부서를 두 세차례 더 들려 환자 상태를 보고 설득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보호자가 장기기증에 끝내 동의하지 않았고, 결국 이후엔 일반외과에서 환자를 보러 오지 않았다.


나는 이후에 사실 장기기증이 동의된 경우, 뇌사 판정을 위한 정확한 검사들이 진행되고, 그 절차들을 모두 밟아 장기기증이 적합하다고 된 경우


장기적출 수술에 들어가기 이전까진 환자 vital sign(*활력징후, 혈압/맥박/체온/호흡수/산소포화도)을 어느정도 유지해야한다. 환자가 사망하면 장기기증이 말짱 도루묵이 되기 때문.


환자의 상태는 날이 갈 수록 안 좋아졌다. 사실상 코마(*coma, 무의식 상태)였기 때문에 여기서 더 안좋아 진다는 건,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혈압이나 맥박, 산소포화도 등 Vital sign(*활력징후)이 조금씩 조금씩 정상범위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주치의는 남편에게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것 같다고, warning(*경고)을 했다.



두 딸이 면회를 위해 내원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듯 병원이 위치한 지역의 한 중학교 마크가 새겨진 교복을 입고 온 체구가 마르고 작은 여자아이 한 명과, 그 동생인 사복을 입은 더 작은 여자아이였다. 아무래도 여동생은 초등학생 같았다.


사실 초등학생이하는 면회가 불가했다. 하지만 환자 상태가 좋지 않으니, 면회를 하시는게 좋을 것 같다는 말에 두 딸이 내원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아무래도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어떻게 병원에 온건지, 예후가 어떤지에 대해 인식이 전혀 안 된 것 같았다. 아이들은 애써 밝은듯,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듯 슬퍼해야하는 건지 뭔지 모르는 듯한 표정으로 멀뚱멀뚱 서있었다.


남편은 두 딸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남편이 병원에서 뱉어 본 목소리 중 가장 긴 목소리.

"..엄마에게 인사해."



두 딸 아이 중 큰 아이는 주뼛대며 엄마에게서 멀치감치 떨어져 말을 건넸다.

"엄마~ 나 이제 중학교 1학년1학기 끝났는데 얼른 일어나야지.."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는 보호자는 아이에게

"좀 더 가까이 가서 이야기하렴." 이라고 하였다.






아이는 담당간호사인 나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엄마의 곁으로 반 뼘씩, 조심스레 다가갔다.


둘째 아이도 머쓱해하며, 어머니에게 말을 건넸다.


무슨 말을 하는게 맞는지 모르는 듯, 아니 자신의 가족들에게 어떤 상황들이 벌어진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환자의 양안이 부을대로 부어 눈이 감기지 않았다. 저 어린 아이들에겐 꽤나 끔찍하게 보일 법도 해서, 환자의 눈 위에 생리식염수로 촉촉하게 적신 거즈를 올려 놓았다. 아무래도 어머니의 눈을 보지 못하니, 자신의 어머니가 이렇게 무의식으로 누워있는 것이 실감이 나진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어머니라는게 믿긴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해서 그런지, 아니. 해서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아이는 마치 학교에서 선생님이 발표를 시켜서 즉흥적으로 이 말이든, 저 말이든 혼나지 않기 위해, 가장 좋은 답안을 생각해내려 애써 꺼내서 말하는 것처럼 뻘쭘해하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내 얼굴에서 의아해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황급하게, 그들에게 더이상 관여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등을 돌려 전산 앞으로 자리잡아 차팅을 잡기 시작했다.


옆에 멀뚱히 서있던 주치의는 아이들이 엄마에게 이야기하는 동안 남편을 조용히 불렀다. 그리고 DNR(*Do Not Resusciate,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겠다는 동의서) 동의서를 받았다. 남편은 군말없이, 아무런 의문도 없이 무표정으로 동의서에 싸인했다.




면회가 끝나고 부서장부터 다른 선생님들의 수군거림이 더해지고 있었다.

"진짜 뭐지, 뭐... 어디서 나와서 봐야되는거 아냐?"


부서 선생님들은 경찰을 불러야하네, 주변에 경찰 없냐, 우스갯소리로 주변 친구 중에 있으면 좀 불러봐라 하다 법쪽에 넘겨야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선생님들에게 왜 우리는 이런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냐고 물었다.


우리는 간호사이기 때문에, 사실 이런 문제를 직접 삼기는 어렵다고 했다.


환자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40대, 여성. 두 아이의 엄마.


만약 타살이라면, 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어갈까, 엄마가 자살을 했던 타살을 당했던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 받아들일 수 있는 진실일까.






결국 며칠 지나지 않아 환자는 조용히 사망했다. DNR 동의서를 받은지 나흘째였다.


데이 출근을 해서 환자를 보니, 환자 수축기 혈압(*정상 100-120mmHg)이 70대였다. '오늘은 아니겠지..?'의 불안은 역시나 현실이 되었다. 데이 근무가 시작한지 2시간만에 환자의 혈압이 0/0으로 보였다. 동맥관 상에서 보이는 혈압(*A-line, 동맥관을 꽂아 놓으면 환자의 혈압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이 순식간에 -1/-1로 보여서 기계상의 오류인 줄 알았으나 역시나 사실이었다.


환자 보호자에게 병원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이미 warning을 했기 때문이었디.



그 때가 되서야 아이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 누구보다 조용한 유가족이었다.


남편은 끝까지 심각한듯, 아무생각도 없는 듯 알 수 없는 무표정이었다. 그래도 전에 봤던 것에 비해 약간은 찡그리는 것 같이 보여졌다.


환자가 보호자와 함께 영안실로 내려갔다.

어안이 벙벙했다. 자살환자의 사망은 늘, 아니. 환자의 사망은 신규간호사인 나에겐 아직까지는 당연하게도. 100프로 아무렇지도 않을 수 없었다.




"저 환자는 그럼 왜 죽었는지는 알 수 없는 건가요?" 내가 부서장님에게 물었다.

"그렇지 뭐. 우린 병원에서 할 수 있는게 없으니까. 최근에 넘긴다 만다 했는데, 그러기도 전에 환자가 죽었으니... 밝혀낼 수 있는 건 없는 거야."


그렇게 환자는 우리만의 의문 속에서,

찝찝함과 찜찜함을 해소할 수 없는 상태에서 세상을 떠났다.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일이었다.


의료진이기에 우리는 현재 할 수 있는 치료에만 집중해야하는 현실이 다행스럽기도, 밉기도 했다.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남편과 그녀의 남동생은 그녀대신 어떤 삶을 살아내고 있을까?





*해당 글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각색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환자의 Vital sign(*활력징후)과 의식사정에 대해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 링크를 첨부합니다.

(해찬이의 간호일지)


<활력징후 : 이론편>

https://m.blog.naver.com/lhc930102/221148386100

<의식수준 사정, LOC에 대해서>

https://m.blog.naver.com/lhc930102/222158401289

<환자 의식 사정, GCS, motor grade, pupil reflex>

https://m.blog.naver.com/lhc930102/221144026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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