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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간호사 Jul 31. 2022

이유는 아무도, 알 지 못한 채로 -1

hanging(액사) 환자


때는, 어느 어두운 날의 겨울이었다.


나는 한창을 적응에 적응을 더하던 때였다.



출근을 하기 전, 병원 어플을 켜 우리 부서에 어떤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지 보았다. 내 담당환자들, 가장 막내라인이 보는 A룸 환자들은 모든 검사와 소견서, 협진의뢰서까지 보며 인계 준비를 해야한다.


혹여나 모를 응급환자가 올라오게 될 경우 받아야하는 자리 1-2베드를 비워두는 경우도 있었는데, 어플에는 'E(Emergency)룸'으로 표기되었었다. 그리고 그렇게 응급으로 들어오게 된 환자들은 입원수속 후 3일이 경과되면 침대의 위치에 따라, A룸, 혹은 B룸 등으로 배정되는 방식이다.




내가 오늘 무조건 막내 라인에 속하고, A룸에 배정된 환자가 4명이 정해져있다면 사실 내가 출근해서 담당하게 될 환자는 거의 빼박 그 A룸 4명이겠지만, 가끔 A룸3명, B룸 3명, E룸 2명 이런식으로 입원되어 있는 경우에는 그 E룸 두 명 중에 어떤 환자가 내 환자일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해서, 간호기록을 보고 간호기록을 넣은 간호사가 누가 더 막내일까를 보며 '이 환자 차팅을 현재 막내가 잡고 있으니 A룸 간호사가 보고 있다'라며 예상해보거나, 혹은 전 듀티에 둘 다 입원했을 경우엔 좀 더 일찍 입원한 환자가 내 환자겠구나 예상해볼 수 있었다.



그치만 언제든, 변수는 존재했다.


내가 일하는 중환자실 구조상 4명, 3명이 방이나 칸막이 등 어떠한 파티션으로하도 나뉘어 있는 느낌은 아니었기 때문에.. 갑자기 나보고 A룸 3명에 B룸 한명을 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인계준비는, 일단 이전 듀티 막내라인이 보는 환자 4명은 무조건 빡세게 준비하고 나머지 환자들은 적어도 대충이라도 알아가야했다.


뭐 그래서 대충은 지금 현재 우리 부서가 얼마나 바쁜지, 어떤 환자들이 입원해있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출근할 수 있었다.








그렇게 환자를 보려고 해보니,

나와 나이가 얼추 비슷한 환자가 입원해있었다.


사실 아픈 사람들, 특히나 내과로 갈 수록, 중환이 될 수록 환자의 연령대는 높아지기 마련이다. 젊을 수록 회복력이며 갖고 있는 다른 질병이며, 합병증이며,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


해서, 신규간호사로서 우리 나이 또래의 환자를 보는게 반가우면서도 안타깝고, 신기하고 그랬다. 순수하게. 그랬다.


근데, 병명이 'Hypoxia, 저산소증' 이었다.


숨을 안 쉬었나? 사실 저산소증이 '주'진단명으로 잡히는 경우를 흔하게 보지는 못했었다.




그 환자의 전산을 까보았다.

아찔했다. 찌푸려진 나의 미간이, 펴지지 못했다.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 뜯었다.



조급한 발걸음으로 출근 길을 향했다.'hanging..'

그래. 환자는 행잉, 목을 매달고 자살시도를 했다. 자신의 방에 있는 운동 기구에 목을 매달아 자살시도를 했다고 한다.


입원 동기, 당연히 환자가 아닌 보호자에 의해 100프로 쓰여지는 그 환자의 입원동기는.


'저녁 0시경 보호자에 의해 hanging된 채로 발견. 즉시 119 신고 후 ER통해 내원함. 앰뷸런스에서 CPR 1 cycle 후 ROSC 되었으나 , ER도착 하여 모니터상 asystole 보여 CPR 2 Cycle 시행 후 ROSC.' 라고 써있었다.


그리고 메모로

'유서는 발견된 것 없음. 가족들 말에 의하면 최근 연인 문제로 힘들어하거나 우울하다 이야기를 몇 차례 했다고 함.' 이라고 넘어왔다.


고로, 아무도 그의 결정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알 지 못했다.

오직 보호자나 주변 사람들이 당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정황만이 존재했다.



그치만, 가족들에겐 '연인', 그것만이 이유일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이브닝번으로 출근했다.

보통 간호사는 출근을 하고 전 듀티의 간호사의 차팅을 거르기 전에 환자들의 상태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확인하게 된다. 피부상태(발적유무, 욕창, 상처 등),

펜라이트(*Pen light)를 이용하여 환자의 동공에 빛을 비추어 보았다. 양쪽의 동공이 서서히,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듯 했다. 하지만 6mm정도로 큰 크기였다. 펜라이트의 밝은 빛을 동공에 비추었음에도 6mm정도라면 거의 열려있는 듯 보였으나, 어찌되었든 동공이 움직이는 듯 보였다.






동공에 빛을 비추었을 때, 왼쪽->오른쪽으로 동공의 크기가 작아져야한다.


(**동공의 정상 반응은 빛을 비추었을때 원 모양을 유지하면서 빠른 속도로 줄어들어야 한다. 환자의 동공반사를 확인할 때 사용한다. 뇌신 문제가 생길 경우, 동공에 빛을 비추면 동공이 축소하는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지거나, 아예 축소하지 않거나 모양이 원모양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인공호흡기를 보니 간간히 자가호흡도 들어간다. 하지만, 주기적이진 않다. 응급실에서 CPR을 치고 조금씩 Coma(*코마, 혼수상태)에서 Semi-coma(*세미코마, 반혼수상태) 로 조금은 호전된 상태로 올라온 듯 하다.




(*인공호흡기상에 자가호흡이 있을 경우 기계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표시된다. 위의 회사같은 경우 그래프에 빨간 화살표, 폐모양 아래에 핑크색의 둥근 원반같은 것이 나타남.)







그렇게 환자를 확인하고 데이번이었던 동기에게 인계를 받기 시작했다. 동기와 나는 이제 막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정도, 즉, 신규티를 슬슬 벗어내려고 애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여 사실 hypoxia 케이스를 많이 다뤄보지 못했다. 게다가 이 환자같은 경우는 나이도 젊고 응급실에서 Coma상태에서 Semi-coma로 조금이라도 호전되어 온 환자니까.. 조금은 가망이 있는게 아닐까? 하는 우리끼리의 희망을 걸었다.


"여기 환자 보호자가 굉장히 애틋해.. 엄마가 내내 울고, 물수건으로 계속 닦아주시면서 기도하고 진짜 눈물 참느라 혼났어. 내가 진짜 이 환자는 살려서 내보내고 싶다. 싶더라니까.. 우리가 잘 보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동기는 환자의 가래를 수시로 뽑아주었다고 덧붙였다.


(*인공호흡기 환자들은 스스로 가래를 뱉지 못해 폐렴이 잘 생겨 폐 상태가 악화되기 좋다. 하여 담당 의료진이 가래를 자주 뽑아주어야 한다.)



그래, 암묵적으로 우리의 목표는 이 환자가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

.


저녁 면회시간이 되었다.


낮에는 여자 형제와 어머니가 오셨다고 했는데, 저녁엔 어머니와 아버지가 오셨다. 어머니는 "왜, 왜 그랬어.."라며 내내 우셨다. 그리고 면회가 끝나기 3분 전부터는 환자의 몸을 닦아주고, 기도하는 일을 반복했다. 아버지는 어두운 낯 빛으로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셨다.






저체온요법


환자의 저체온요법 치료가 끝났다. 저체온요법을 처음 배울 때에는 내게 마치 어렸을 적, 드라마에서 상태가 안좋은 환자를 차갑게 만들었다가 수 십시간 후에 꺼내어 서서히 녹이고 살리는 특이한 드라마를 떠올리게 했었다. 저체온요법은 기본 3일이상의 치료시간이 걸린다. 체온을 서서히 낮추어 목표 온도(약 32-34도)까지 낮추고, 낮춘 채로 며칠을 보내고, 다시 천천히 정상체온까지 높이는 과정을 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저체온요법이 끝나면 환자의 멘탈(의식 상태)를 수시로 체크해주어야 한다.




어찌되었든 그렇게 상태에 큰 변화없는 채로 며칠을 보내었고, 저체온요법을 떼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직까지 애틋했다.


이제 면회시간마다 울기보다는 조금은 자신이 단단하게 마음을 먹어야겠다고 다짐하신 것 같았다.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있었지만 항상 큰 가방을 들고와 자녀의 몸을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환자의 머리 맡에는 희망을 노래하는 노래, 사랑을 들려주는 노래를 틀어놓은 휴대폰이 놓여진 채였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자녀의 온 몸을 늘 정성스레 쓰다듬고, 귀에 "이제 일어나야지..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 엄마는 널 믿어."라는 말을 수 십번, 수 백번씩 속삭였다.




.

.

.

조금은, 조금은 지쳐갔다.


더이상 우리의 노력이 성과가 되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환자는 살고자하는 의지가 없다는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구나. 그걸 하루하루 느껴가고 있었다. 그리고 혈압은 점점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간간히 심박수도 50대회/분씩(*정상: 60-100회/분) 떨어지면서 모든 간호사가, 아니 모든 의료진이 잠시간마다 식겁하는 모먼트들이 찾아왔다. 노르아드레날린, 도파민, 도부타민.. 온갖 승압제와 강심제를 달았다. 아직은, 아직은 최대용량까지 쓰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여전히 보호자들은,

아니. 어머니만은 그대로이다.


환자의 여자형제는 점점 기운을 잃었는지, 말없이 환자의 침상 끝에서 훌쩍거리다 면회오는 횟수가 적어지기 시작했다.


환자의 아버지는 점점 말과 표정을 잃어갔다.






오늘 출근은, 나이트였다. 워낙에 밤에 출근한다는게, 일반적이지는 않다보니 중간 중간 깰 수 밖에 없어서-


그래서 나도 모르게 어플을 켠다. 환자의 바이탈(*V/S, Vital Sign, 생체징후: 혈압,맥박수,호흡수,체온,산소포화도)을 확인했다. 혈압은 간신히, 100/60mmHg(*정상 기준: 120/80mmHg)정도를 유지하고 산소포화도는 고작 86%(*정상 95%이상)정도였다. 고작, 86%.


.

.

출근을 했다. 산소포화도 86%의 환자는 83%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그래서 그런가, 환자의 사지 말초, 손끝과 발끝부터 몸 중앙을 향해 서서히 퍼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낌새가 좋지 않았다.


"보..보호자는 병원 근처에서 대기하고 계신가요?"


.

.

.

나이트를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시간은 새벽 1시를 막 넘겼다. 산소포화도는 이미 80-81%까지 떨어졌다. 나이트가 시작되고 3시간동안 서서히 떨어져가는 산소포화도, 주치의에게 알렸지만 이미 인공호흡기에서 환자에게 줄 수 있는 산소의 양을 최대치로 설정해놓았기 때문에, 그리고 나머지 셋팅값도 이미 너무 최적화 상태여서 산소포화도를 어떻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미 이브닝과 나이트동안 수십번이고 만져보고 산소포화도가 최대한 높게 찍히는 셋팅값을 유지하고 있는 듯 했다.


그래, 산소포화도가 고작 80%가 나온다는것.. 이미 가망이 없다. 보호자들은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환자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응급처치를 해야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기계적 치료는 어느정도 .. 했거나 이미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CPR만이 남은 것이었다.



어찌되었든 현재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간호행위는 다 했다. 이걸 유지하면 참, 아이러닉하게도 '스테이블 했다.'고 표현할 수 있는 걸까.


어찌되었든, 그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걸 해주었기 때문에 상태가 더 안좋아지는 게 아니길 바라야 할 뿐이다.



다른 환자들을 포함해 모두의 모니터가 조용한 것을 확인하고, 우리는 야식시간이 되어서 야식을 먹으러 갔다.


.

.

보통 야식을 먹다가도, 알람소리가 들리면 제 시간에 처리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교대로 야식시간을 갖거나 알람소리가 모두 들리는 환경을 조성하고 먹는다.


내가 있는 부서는 병상 수가 적기 때문에 듀티당 간호사 수도 많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심히 바쁘지 않다면 대부분 문을 활짝 열어 놓고 티테이블에서 야식시간을 가졌다. 막내들은 대부분 문 앞쪽에 자리를 잡고 모든 방의 알람소리에 반응해야했다. 뭐, 이에 대해 불만은 없었다. 그리고 오늘은 알람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할 환자는 사실 행잉(hanging) 환자 뿐이기도 했다.


그렇게 차근히 야식시간을 가졌다. 뭔가- 스테이블한 듯한, 불안감을 가진 채.


.

.

알람소리가 들렸다.


산소포화도가 계속 스물-스물 떨어지고 있다 현재 80-81%정도 나오던 지라 알람 설정을 정상수치보다 현저하게 낮춰놓은 상태였다.


"저 알람 좀 보고 오겠습니다."


그래- 짧은 답변을 듣고 곧장 나가보았다. 역시나, 내 행잉환자이다.


혈압이 80대로 간간히 떨어졌고 산소포화도도 순식간에 76%를 보였다. 산소포화도 알람 리미트는 80%까지밖에 설정을 못하는 지라.. 이 밑으로 떨어지는 걸 내비두려면 그냥 알람을 꺼야하는 수준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환자의 전반적인 색깔이 보라빛과 회색빛, 그 어딘가로 변해있다. 처음이다.


아..아니, 지금 내 눈이 어떻게 된건가. 나이트라, 어두워서 그런건가..?


차지선생님을 불렀다.

차지선생님의 얼굴이 굳었다. "당직 노티하자. 얼른." 난 손에 들고 있던 무선전화기로 얼른 전화를 걸었다. 당직의는 일단 승압제를 올렸다. 지금 빨리 가겠다고 했다.


.

.

주치의가 도착했다. 승압제를 최대치로 올릴 수 있는 만큼 올려봤지만,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 주치의는 말이 없었다.

결국 인공호흡기 화면을 쳐다보다가 보호자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하였다.


"네. 보호자분이시죠. 병원 근처에 와 계시다고 했는데, 환자분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지셔서요.. 지금 면회를 한 번 해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흥분한 듯한 음성이 얼핏 들려왔다.



"보호자 내원 안내했으니까, 면회 한 번 해드리세요." 환자 자리정리를 했다.


.

.

머지않아 보호자가 내원했다. 보호자는 여자 형제와 어머니, 아버지가 내원했다. 어머니는 큰 소리를 내며 울었다. 사실의식이 명료한 환자들이 중환자실에 입원한다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들도 많은데, 이는 수많은 알람소리와 기계소리, 응급상황들, 자신이 중환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해서, '부서 내에 의식이 명료한 환자가 한 분도 계시지 않아 다행이다..'라고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녀의 울음소리에 많은 환자들이 동요될 것일게 뻔했으니.










어머니가 큰 소리로 울며 환자의 이름을 몇 번이고 불렀다. "엄마를 두고 어디를 가려고 하니.." 라며 우는 엄마를 앞에 두고 환자는 오래 버틸 의지가 없었나보다. 보호자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싶었던 듯, 빠르게 환자의 심박수가 후두둑, 말 그대로 후두둑 떨어졌다. 순식간에 늘어지는 심박수에 CPR 태세를 취했다. 환자의 침대 CPR버튼을 꾸-욱 눌러 침대 높이를 최대한 낮추고, 편평하게 만들었다. 당직의가 가슴 쪽 남는 침상에 올라 타 가슴압박을 시작했다. 차지선생님께서 초기 전산을 잡아주셨고 B룸 선생님께서 앰부를 짜기 시작했다. "에피네프린 3분마다 1A씩 IV(*정맥주사)해주세요." 나는 에피네프린을 투약하고 CPR 보조를 위해 다른 의료진들을 콜(*call)했다. 그리고 담당 환자 전산을 잡기 시작했다. 또 다른 당직의가 보호자에게 밖에 나가 대기할 것을 이야기하며 DNR(*Do Not Resuscitate: 연명소생술을 하지 말아달라는 의미) 동의 의사를 묻기 위해 따라나갔다. 그리고 이내 들어와 "보호자는 심폐소생술을 적극적으로 해달라고 하십니다. 일단 30분간 시행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

.

CPR을 하게 되면 3분마다 환자 모니터 상 심장이 다시 뛰는지, 동맥혈이 순환하며 맥이 뛰는 지를 확인해야 한다.


하여 30분동안, 10번의 리듬확인을 하게 되는데, 현재 5번의 cycle이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당직의는 이 CPR이 더이상의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마지막 cycle의 CPR을 칠 때 보호자에게 들어와 CPR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DNR에 관해 다시 한 번 설명해야할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

.

마지막 cycle의 CPR을 끝냈다. 역시나, 의미가 없었다. 환자의 몸이 보여주는 보라빛은 점점 심해지는 듯 했다.


당직의는 다시 보호자가 있는 밖으로 나가, 30분이상의 CPR은 살아 돌아온다 하더라도 보호자가 원하는 모습이 아닐 것이라고, 이미 현재 뇌에 산소가 충분치 않아 가망이 현저하게 낮다고 설명하였다. 보호자의 아버지가 부서 내로 들어왔다. 아버지는 들어와 환자의 CPR 현장을 보자마자 "그만 해주세요." 라고 이야기 했다. 당직의는 두번의 확인을 더 거친 후에 우리에게 CPR을 멈추라고 이야기했다. 인턴 두 명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CPR을 시작한지 32분째 였다. 환자의 오늘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여자 형제와 함께 부서내로 들어왔다. 어머니는 옥구슬같은 눈물을 흘리며 "뭐야, 뭐에요..? 왜. 왜, 그만 하는 거에요?" 라며 목소리가 높아져만 갔다. 아버지는 "여보, 그만해. 의미 없어. 이제 그만 좋은 곳으로 보내주어야지.."라고 하였다.


"당신이, 그만하라고 한거야? 왜? 살인자가 되고 싶은거야? 미쳤어? 당신이 그러고도 아빠야?"

"... ..."

"이러지마, 아들. 제발 이러지마. 눈을 떠. 엄마 두고 가면 안돼."

어머니는 울며 아들을 보며 울부짖다가, 무서운 눈으로 아버지를 노려보며 소리를 지르는 것을 반복했다.

여자형제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큰소리로 울었다. 중환자실 밖 복도까지 울음소리가 울려퍼질 정도로 큰 소리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도대체 걔가 너한테 뭐라고 한거야.. 뭘 한거야!!" 라며 울부짖었다.


환자와 연인관계였던 사람의 이름이 부서내에 크게 울려퍼졌다.


"내가 걔 쫓아갈거야. 반드시 내 새끼 돌려달라고 할 거야.." 라며 크게 울었다. 아버지와 여자 형제는 어머니를 말리고 진정시켰다. 그들도 지치고 힘들어보이고, 충분하게 그리고 과하게 슬퍼보였다. 하지만 자신의 아내이자 어머니를 위해 참는 듯 했다.


차지선생님과 당직의는 아버지에게 어머니와 함께 밖에서 잠시 진정해주시는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는 질질 끌려가듯 대기실로 향했다. 밖에서 아버지를 원망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눈물이 차오르고 가슴이 미어지게 아팠다. 하지만 침착과 냉정을 바탕으로 따뜻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발발 떨리는 손으로 전산을 마무리 지었다. 보호자에게 장례식장과 수납안내를 위해 퇴원 간호기록지를 가지고 나갔다. 어머니는 힘이 없는 듯 축 쳐진채로 의자에 앉아 환자의 연인으로 추정되는 이름을 입으로 읊조리고 있었다.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낯빛이 어두어진 아버지에게 안내를 했다.


환자의 사후처치를 시행했다. 가지고 있는 모든 카테터(*catheter, 관)을 빼고 젖은 수건으로 온 몸을 닦아 주었다. 매일 하루에 두 번씩 어머니가 면회시간마다 깨끗하게 닦은 덕에 사실상 우리가 닦아낼 자국이라던지, 묻어있는 오염물이라던지 할 것은 없었다. 환자를 하얀 순백색의 시트로 곱게 싸고 수납 종료 후 장례식장의 S-car(*stratcher car, 이동식 침대) 위로 옮겼다. 담당 간호사인 나는 환자의 짐을 싸서 S-car와 함께 보호자들이 대기하는 곳, 부서 밖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보고 엉엉 울었다. 그땐 여자 형제도 소리를 내며 울었다. 아버지만이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듯 했다. 이미 너무나도 지친듯한 표정이었다. 힘없이 나에게 안내를 받았다.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아버지와 전 연인을 탓하는 듯한 말들을 내뱉었다. 내 새끼는 니들이 죽인거라고, 그렇게 울부짖다가 아들에게 이러지 말라고 또 울고. 그 일들을 반복했다.






새벽 2시 반, 환자의 나이는 고작 23살이었다. 갖고 있는 질병은 없었고,

죽음을 선택한 이유는 아직까지도 모르겠지만.


어머니에게 자신의 자녀는 꽃다운 나이 사랑에 미쳐, 연인에게 상처받아, 연인이 죽인 것이었다.






hypoxia, 저산소증 환자.


이후에 경력울 쌓으며 대부분 그렇게 뇌에 산소가 부족한 경우가 hanging에 의한 자살시도를 한 환자들이 많다는 걸 알게되서, 이 진단명의 환자들을 보면 괜스레 차트를 보기 전부터 마음이 미어지기도 했다.


내 나이 또래의 환자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눈물이 날 정도로 보호자의 애틋함을 봤고 그래서 가망이 없어도 일어났으면 하는 희망을 많이 갖게 된 환자이기도 했다.


하늘에서는 행복했으면 좋겠다. 대부분의 자살환자들은 사전에 죽고자함을 주변에 티내게 된다던데, 아무도 알지 못했고 결국 남는 것은 연인때문이었다. 속사정은 아무도 알지 못해서, 보호자는 그저 '연인 때문'이라고 믿는게 오히려 맘이 편할지도 모르겠다.


그 환자에게 복합적인 문제가 있었을 지라도, 아니면 그냥 멘탈이 약해서 홧김에 저지른 것일지라도

보호자에게 큰 짐을 안겨주었으니, 하늘에서만큼은 굳건하고 단단하게 행복을 유지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 누군가의 꿈 속에서라도 나타나 "나는 여기서 행복하게 살고 있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해당 글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각색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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