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2편> 너와의 관계를 지속하려면
"근데 혹시 너는 외국에 갈 생각이 있어?"
"글쎄, 왜?"
"그야, 커리어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
너는 얼버부리는 말투로 꽤나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 내가 가니까..”
아, 너와 함께 하려면.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나도 준비해야 하는 거구나.
사실 나, 여기 이렇게 아무 특별한 일 없이 사는 게 너무 좋은 걸. 근데, 생각을 달리 해볼게. 그래, 너 말 대로 조금만 발전해도 달라지겠지.
"응. 나도 준비해 볼게. 내가 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볼게. “ 너는 활짝 웃었다.
네가 바랐던 답변이었구나. 다행이다. 너도 나랑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거구나. 근데, 솔직히 조금은 막막하네. 술이나 마시고 누워서 게임이나 하고, 혼자 심심할 때면 피시방이나 가던 내가, 너를 사랑하게 되어서-. 너를 평생 내 사람으로 만들려면 나는 이곳을 버려야 한다. 아니, 엄청난 발전이긴 한데, 그게 나한테도 엄청난 커리어라는 거 아는데.
.. 사실 나는 여태껏 자기 발전 없이도 불편함 없이 살아왔는걸. 그런 내가 외국에 가겠다 결정하는 것은,
나 진짜 너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로, 엄청난 결정을 하는 거야.
생각해 보면 너를 만나고 거의 처음으로 말을 걸어 보았을 때에도 넌 어학 공부를 하고 있었다. 지금 다니는 직장이 맘에 들지 않아 이직을 하기 위한 어학 준비인가, 라기엔 다급해 보이거나 절실해 보이지 않았다.
보통 이직을 준비해야 한다면 커트라인을 넘기기 보다 최선의 점수를 바랄 텐데, 그렇지 않아 보였다.
“아, 제가 해외에 가고 싶어서요.”
의아한 듯 흘깃 본 그 짧은 찰나의 눈 빛을 네가 읽었는지 질문에 답하듯 설명했다.
나는 ”아-. “ 끄덕이며 마저 열심히 하시라고 손짓했다.
그래, 모르고 너를 좋아하기 시작한 건 절대 아니다.
우리의 관계가 점점 깊어질수록, 너는 조급해져만 갔다.
"근데, 왜 요즘은 게임만 하는 거야?"
사실, 난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내가 늘 보내오던 일상은 너에게 한심하게 느껴지나 보다.
나는 이 나태로움이 내겐 너무 소중해서, 잃기가 두렵다. 갈 준비만 끝내기만 한다면, 그렇게 된다면 나는 다시 이 나태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사실 나는 할 줄 아는 외국어도 없는데-..
“내가 미래를 함께 하고 싶지 않다면, 뭣하러 너를 이렇게 보채겠어. 같이 나가고 싶어. “
“근데 나도 엄청 큰 걸 포기하고 준비하려는 거야. 보채면 나 조금 서운해.”
“일과 병행하는 거, 힘든 거 알아. 나도 그랬으니까. 근데 너랑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래. 근데 네가 하겠다고 해놓고 막상 이렇게나 길게 하기 귀찮아하면 나도 서운한 거야.”
“.. 미안해. 이번주까지는 놀다가 하면 안 돼?”
“고마워, 뭔가.. 너의 그 말이 듣고 싶었던 것 같아. “
나는 대답 없이 조용히 너의 손을 꼭 잡았다. 네가 나를 깊게 생각할수록, 고맙고 기쁜 일이지만.. 나는 공부를 정말 싫어하는 사람인데, 생각하며 입술을 삐죽였다. 한편으론 내가 너의 가치관에 따라갈 수 있을까, 아직 나는 젊은데, 친구들과 노는 게 좋은데 너의 삶을 내가 따라가려다 나는 한탕 놀 수 있는 이 청춘을 허비하는 건 아닐까.
이 결정을 입 밖으로 내민다는 것만으로도 나, 정말 너를 사랑하는구나.
너는 내가 너를 따라가겠단 결심을 했다 이야기를 듣고 내게 전적으로 보태주려 노력했다.
돈으로 받고 팔 수 있을 정도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네가 정리한 공부 자료, 실제로 네가 돈을 주고 산 정리 자료들 모두 내게 공유해 주었다.
너는 뭐든 간에 내 환경이 나아짐에 있어 같이 기뻐했다. 내가 똑똑해질수록 너는 은은하게 칭찬해 줬고, 내 덕에 함께 알게 되는 지식들이 있어 기쁘다며 또 알게 되는 것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
너는 내게 일주일 내내 하려고 하지 말고 3-4일만 적당히 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스트레스 때문에 하기 싫어질 거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몹쓸 오기와 자존심 때문에 빨리 끝내버릴 거다,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답했지만, 사실 하루 이틀 쉬다 보면 계속 쉬고 싶어져 버리는 나를 알기 때문에 그렇게 답했다.
내가 나태해지려고 하면 며칠은 지켜보다 “혹시, 포기했어? 가고 싶지 않아 졌어? 그럼 알려줘. 보채지 않을게.”라고 이야기했다.
너의 질문의 의도는 뭘까. 분명 네가 원하는 답은 그럴 리가, 며칠간만 쉬고 할게, 할 거야 등의 답변이란 거 알지만,
너의 그 말이 은근스럽게 서운하다. 마치 내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나를 버릴 것 같다. 너는 나랑 끝까지 함께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혹은 보채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상 따뜻한 말투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 같은 기분-. 모든 게 나에게 달린 것만 같아서 부담스럽다.
그래서 내가 이걸 하는 이유는 정말 너랑 함께하는 걸 꿈꾸기 때문, 그것뿐이라서-. 절대 자발적으로 하고 싶다는 대답이 나오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나의 대답은, 늘
“.. 아니야. 네가 옆에서 계속 보채줘.”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너의 옆에 있을 순 없을까.
솔직히 귀찮고 힘든 것도 맞지만, 사실 지금 당장 네가 가까운 듯 멀어서 외롭기도 한데 내가 놀고 싶은 만큼 못 놀고 못 쉬어서 서럽기도 하다.
어린 마음이지만,
나는 지금 이대로도 좋은데 네가 내게 조금만 더 맞춰줄 수는 없을까. 나 조금만 더 놀다가 같이 가면 안 될까.
철없이 들릴까 마음속으로만 되뇌고
너에게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티가 나면 네가 날 혐오스럽게 쳐다보다 정 뗄까 두렵다.
우리가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사회생활 경력 차이가 덜 났더라면 달라졌을까.
네가 이미 준비해 놓은 커리어를 생각하면 네가 멋있다가도, 네가 포기했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