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이 떨어져 사선으로 걸린 낡은 간판이 영 위태롭게 보였다. 드문드문 글자가 떨어져 ‘차 GO’라는 글자만 간신히 남아 붙어 있었다. 저 ‘차 GO’가 찾고 있던 ‘더 높은 차원으로 GO’라는 걸 알아차린 서연의 마음속에 긴장과 초조가 밀려들었다. 동시에 축 늘어졌던 텐션이 당겨지기 시작했다. 낡고 색이 바랜 검은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문을 찬찬히 살피던 서연은 문 한가운데에 그려진 손바닥 만한 크기의 물고기 무늬를 발견했다. 그 옆에는 납작한 버튼이 달려 있었다. 주변을 살피던 서연이 결심한 듯 버튼을 눌렀다.
“띵동~”
맑고 경쾌한 차임벨 소리가 을씨년스러운 차고의 분위기를 더 기괴하게 만들었다. 긴장을 풀기 위해 짝다리를 짚은 채 발을 까닥거리며 입 속의 껌을 우물거리던 서연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 씹던 껌을 삼켜버렸다.
“소개장 확인하겠습니다.”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남자의 미성이었다. 서연은 허둥지둥 주머니를 뒤져 며칠 전 소속사 크리에이터 모임에서 선배 원담에게 받은 검은색 명함을 꺼내 들었다.
“여, 여기요!”
“물고기 무늬가 그려진 곳에 대주시겠습니까?”
서연이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물고기 무늬 위에 명함을 갖다 댔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열린 문 안쪽은 어두웠다. 남자의 목소리가 한 번 더 속삭였다.
“확인되었습니다. 들어오세요.”
터질 것 같은 가슴을 부여잡고 서연이 안쪽으로 들어서자 스르르 문이 닫혔다. 코끝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었다. 어둠 속에 엉거주춤 서 있던 서연은 겁이 더럭 났다. 서연이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 순간, 한 아름 정도 되는 푸른빛 기둥이 차고 한가운데에 나타났다. 빛기둥은 점점 굵어지더니 이내 차고 안을 가득 채웠다. 빛에 익숙해지자 서연의 눈에 차고 안의 모습이 들어왔다. 겉과 완전 딴판이었다. 깔끔하고 넓은 차고 한가운데에는 6인용 고급 원목 탁자가 놓여 있었다. 탁자 위에는 가죽 장정된 A3 크기의 책 다섯 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창고 벽을 따라 거대한 수족관이 빙 둘러 설치되어 있었다. 수정 같이 맑은 물속에서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황홀한 풍경이었다. 수족관과 물고기에 넋을 잃고 다가서는 서연의 귀에 남자의 미성이 들려왔다. 놀라 돌아보니 언제 들어왔는지 목소리와 어울리는 외모의 남자가 원목 탁자 옆에 서 있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알고 계셨나요?”
저 아름다운 수족관 안에, 내 눈앞에 버젓이 있는데 존재하지 않는다고? 남자의 뜬금없는 질문에 서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개별 존재는 있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어류라는 분류학상의 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죠.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죠? 자기들끼리는 공통점이 없고, 엉뚱한 육지 동물들과 더 닮았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면 세상에 홀린 기분까지 들죠.”
서연은 뭐라고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눈만 껌벅이며 남자를 쳐다봤다.
‘없으면 없는 거지, 뭔 또라이 같은 소리야. 그래서 뭘 어쩌라고?’
서연의 속 마음을 읽기라고 한 듯 남자가 얼굴 한가득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무슨 생뚱맞은 소리인가 싶죠? 당연합니다. 저건 물고기라는 종이 아니라 플래닛 와인더(Planet Winder)니까요. 행성이 공전과 자전을 할 수 있도록 일종의 태엽을 감아주는 초자연적인 존재들. 저들 때문에 이 세상이 멈추지 않고 오늘까지 계속 돌고 있는 거죠.”
서연의 머리칼이 쭈뼛 곤두섰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머릿속의 비상벨이 세차게 울려댔다. 서연은 슬그머니 주변을 살피며 달아날 구멍을 찾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야. 이런 곳에 제 발로 오다니… 서연! 지금이라도 도망쳐!”
그때였다. 수족관이 설치되었던 벽면 한쪽에 영상이 떠올랐다. 바다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영상이었다. 낚시꾼 한 사람이 팽팽하게 당겨진 낚싯줄을 감아올리며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낚싯줄에 걸린 물고기가 수면으로 올라오자 옆에 있던 사람이 뜰채로 물고기를 건져냈다. 낚시꾼이 잡아 올린 물고기를 들어 올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함께 환호했다. 영상이 돌아가는 동안 남자가 테이블의 상석에 조용히 앉았다.
“끊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지던 낚싯줄을 보셨죠? 저렇게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믿을 수 없는 힘으로 제 입에 걸린 줄을 끌어당기는 장면을요. 물 안에 잡고 버틸 기둥도, 바위도 없고, 그걸 잡아끌 손이나 발 같은 도구도 없는데 말이에요. 신기하지 않나요?”
말을 잠시 멈춘 남자가 세상 다정한 미소를 서연에게 지어 보였다.
“세상의 태엽을 감는 존재라서 그런 힘을 낼 수 있는 거예요. 플래닛 와인더는 감당할 능력이 되는 선택받은 존재들에게만 주어지는 특별 임무지요. 임무 수행에 최적화된 형태로 겉모습만 바꿔놓았기 때문에 비슷해 보이지만 그 속은 전혀 다른 거죠.”
남자가 마지막 문장인 ‘그 속은 전혀 다른 거죠’를 한 어절씩 끊어 천천히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그 덕분에 남자의 다정한 미소가 더 이상하고 괴상해 보였다. 들어왔던 문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이런 미친놈에게 걸려들다니. 엉망이 된 텐션을 끌어올려 인기를 되찾고 제2의 전성기를 만들겠다는 욕심이 결국 이런 참사를 불러온 거라고 서연은 자책했다. 남자가 또 한 번 서연을 향해 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해가 안되시죠? 당연합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조금만, 조금만 더 집중해 주세요. 그럼 왜 플래닛 와인더는 물고기 모양이냐? 여기를 보시겠어요.”
낚시꾼 동영상이 재생되던 화면에 이번에는 지구가 나타났다.
“지구 표면의 3분의 2가 바다예요. 그러니 바다를 출렁출렁 움직이면 어떻게 되죠?”
남자의 질문에 서연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서연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잠시 말을 멈췄던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구도 출렁출렁 움직이게 되는 거죠. 게다가 깊은 바다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어서 뭔가를 숨기기에도 안성맞춤이죠. 그 바닷속에 지구를 회전시키는 일종의 고무줄 태엽 장치가 들어 있고 바닷속에서 움직이기에 적당한 물고기 모양으로 변신한 플래닛 와인더가 그 끝자락을 물거나 몸에 묶고 헤엄치며 지구가 돌아가도록 유지하고 있는 거죠. 우와~ 정말 멋지고 대단하지 않나요?”
숨도 쉬지 않고 말을 마친 남자는 제 말에 감격한 듯 제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마주쳐 박수를 쳤다. 남자의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어쩔 수 없이 듣고 있던 서연이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는 말투로 물었다.
“그거 하고 제 텐션을 올려주는 거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 거죠?”
남자가 드디어 본론에 접어들어 신이 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플래닛 와인더의 능력을 사람들에게 직접 서비스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 에너지 레벨 태엽의 고무줄을 플래닛 와인더가 당겨주면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서연은 미친 소리라고 생각했던 남자의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그래서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남자의 목소리가 한 톤 더 높이 올라갔다.
“물론, 기대 이상이었어요. 영화, TV, 인터넷, 스마트폰을 통해서 에너지 태엽이 당겨진 사람들이 맹활약을 했죠. 아, 당신한테 소개장을 준 원담도 제 고객이에요.”
서연이 테이블 쪽으로 몇 발 다가서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 그럼 원담 선배 다시 재기한 것도 다 그것 때문이에요? 그 태엽인가 뭔가, 아니 와인더인가 뭔가 덕분에? 늘어진 텐션 에너지를 팽팽하게 당겼기 때문에?”
남자가 미소를 한껏 머금고 천천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저도, 저도 그렇게 해주세요. 부탁드려요. 저도 해주세요. 여기로 소속사 옮기라면 옮길게요. 수익배분율 낮춰도 받아들일게요. 저도 텐션 이빠이 땡겨서 구독자 백만, 아니 천만명 찍고 싶어요. 1등 한번 하고 싶다고요. 제발 부탁드려요. 제발!”
서연은 연신 허리를 굽혀 절하며 남자에게 애원하듯 소리쳤다. 남자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서연 쪽으로 다가왔다. 남자는 서연의 합장한 두 손을 살포시 잡았다. 허리 굽혀 절하고 있던 서연이 살며시 고개를 들고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남자의 얼굴은 황홀할 만큼 아름답고 인자했다.
“그런 것 하나도 필요 없습니다. 서연님의 할 수 있다는, 해내겠다는 의지와 아주 작은 약속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아주 사소한 거죠. 그것뿐입니다. 서연님은 원하는 만큼 높이 날아오를 거예요. 틀림없어요. 어쩌면 원담님 보다도 더 높이요.”
서연은 남자의 손안에 살포시 잡혀있던 제 손을 빼냈다. 그리고 남자의 양손을 있는 힘껏 움켜쥐고 흔들었다.
“그 약속, 약속이란 게, 그게 뭐죠?”
“물고기 한 마리 돌보기. 건강하게 잘 보살피는 거죠. 본인이 직접.”
서연도 어린 시절 집에서 금붕어나 구피 정도는 키워봤다. 까다로운 어종만 아니라면 물만 잘 갈아주고 먹이만 제 때 주면 물고기 돌보는 일은 크게 어려울 것이 없었다. 서연은 남자의 손을 움켜잡은 채 고개를 끄덕여 제안을 수락했다. 남자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가죽 장정의 책들 중 가장 오른쪽에 있던 것을 펼쳤다. 그곳에는 서연의 얼굴 사진이 들어 있었다.
‘상기 본인 서연은 차고 운영자에게 플래닛 와인더를 이용한 개인 에너지 텐션 조절 서비스를 위한 일체의 장비와 3일간의 체험 기회 제공을 요청합니다. 3일간의 체험 서비스 후 서면 또는 문자, 유/무선 통신 등의 방법으로 차고 운영자에게 해지 의사를 직접 표시하지 않을 경우 종신 계약 체결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또한 차고의 모든 운영 정책과 원칙에 예외 없이 동의하고 준수할 것을 약속합니다.’
서연은 남자가 내민 펜으로 자신의 이름 옆에 사인을 했다. 그것 만으로도 흥분되어 조회수 1억짜리 콘텐츠를 당장이라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연이 서명한 페이지를 살펴보던 남자가 책을 덮어 제자리에 놓으며 말했다.
“내일 아침이면 모든 준비가 끝날 거예요. 서비스 이용 안내서를 꼼꼼하게 읽어보세요. 꼭, 꼼꼼하게. 그리고 비밀을 지키라는 따위의 식상한 말은… 하지 않을게요. 해봐야 지키지도 않을 거고, 서연 씨도 굳이 남들한테 이런 귀한 정보를 가르쳐 주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그렇죠?”
남자가 웃자 서연도 따라 웃었다. 서연은 제 웃음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앞에 선 남자의 얼굴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 이 차고 안에 들어왔던 것처럼 눈앞이 캄캄해졌다.
서연이 눈을 뜬 곳은 제 방 침대였다. 생생한 기억. 차고 안의 수상하고 신비로웠던 공기. 그리고 아름다웠던 남자의 목소리와 미소.
‘텐션을 땡겨주는 신비한 물고기라고? 그런 게 진짜 있을 리가 없지.’
실망한 서연이 기지개를 켜며 거실로 나왔다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TV가 있던 자리에 크고 고급스러운 커다란 어항이 놓여 있었다. 환수장치와 공기방울 방치, 내부 장식까지 완벽한 어항 안에 손바닥 만한 푸른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다. 어항 앞에는 ‘서비스 이용 안내서’라는 제목의 책자도 한 권 놓여 있었다. 꿈이 아니었다. 서연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안내서에 쓰여 있는 대로 물고기를 돌본 지 1주일 만에 서연의 채널은 말 그대로 떡상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없을만한 하이 텐션 덕분에 찍는 아이템마다 대박이 났다. 1달이 지나자 서연의 텐션은 죽은 콘텐츠도 살리는 마이더스의 손이 됐다. 식상한 아이템도 서연이 다루면 빵빵 터졌다. 반년이 채 지나기 전 서연이 언급하는 모든 것들이 대박을 치며, 콘텐츠뿐만 아니라 광고와 굿즈 시장까지 평정했다. 서연의 24시간 하이 텐션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곧게 뻗은 성공의 고속도로를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었지만 서연은 여전히 성공이 고팠고 인기가 고팠다. 텐션이 고팠다.
서연이 떨리는 손으로 투명한 어항 안에 끊어진 고무줄을 한 움큼을 떨궜다. 어항 속의 푸른 물고기가 달려들어 순식간에 고무줄을 먹어치웠다. 고무줄을 먹어치운 푸른 물고기는 어항 한가운데 자리 잡고 힘차게 꼬리지느러미를 휘저으며 오른쪽을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마치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고 있는 서연은 온몸에 세포 하나하나가 힘껏 긴장하며 당겨지는 기분이었다. 짜릿한 에너지가 온몸에 가득 차 넘쳐흐르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든,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고 해낼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한 시간쯤 지나자 푸른 물고기는 보통의 물고기처럼 어항 안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서연도 한껏 에너지가 차오른 몸뚱이를 침대 위에 내던졌다. 잠시 누워 있던 서연이 벌떡 일어나 화장대 앞으로 갔다. 서연은 웃옷을 들춰 거울에 비친 제 배를 살폈다. 온통 멍 투성이었다. 푸른 물고기에게 먹이로 주는 고무줄을 만들기 위해 생긴 상처였다. 푸른 물고기의 먹이는 고무줄이었다. 하지만 아무 고무줄이나 먹지 않았다. 서연의 몸에 대고 잡아당겼다가 놓기를 반복해 끊어진 것들만 먹었다. 얼마나 많이, 얼마나 길게 늘어나서 끊어진 고무줄이냐에 따라 플래닛 와인더가 잡아당기는 에너지 텐션의 강도가 달라졌다. 처음에는 1주일에 한 번씩 먹이를 줬다. 하지만 하이 텐션의 강력한 만족감에 중독되어 일주일에 두 번, 세 번으로 횟수를 늘렸다. 반년이 지난 지금은 하루에 세 번씩 고무줄을 먹이로 주고 있었다. 그래도 아쉽고 부족하기만 했다. 더 높이 더 멀리 날고 싶었다. 고통스러웠지만 멈출 수 없었다. 서연은 화장대 위에 놓인 보석 상자를 열었다. 몇 가닥의 고무줄이 뒹굴고 있었다. 틈날 때마다 먹이를 만들어야 했다. 서연은 새 고무줄 한 봉지를 서랍에서 꺼냈다. 그리고 한 가닥을 꺼내 제 몸에 대고 최대한 길게 잡아 늘였다가 놨다. 번개에 맞은 것 같은 통증이 배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텐션을 위해서라면 참을 수 있었다. 아니 참아야 했다. 다음 주부터는 하루에 네 번으로 먹이 주는 횟수를 늘릴 생각이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구독자들도 슬슬 지금 수준의 텐션에 익숙해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익숙해진다는 건 곧 도태된다는 뜻이다. 서연의 손이 또 한 번 고무줄을 길에 잡아당겼다. 또 한 번 번개가 서연의 몸을 강타하는 것 같았다.
푸른 물고기에게 하루에 네 번씩 고무줄 먹이를 준지 3일째. 하루에 네 번씩 먹이 주는 일은 생각보다 힘겨웠다. 통증 때문에 말 그대로 죽을 것만 같았다.
“씨발, 헉, 헉, 더, 더는 못하겠어, 더는 못하겠어….”
먹이로 줄 고무줄을 만들던 서연이 진땀을 흘리며 바닥에 늘어졌다. 고통은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커지기만 했다. 그깟 한 봉지 더 늘어나는 것쯤이야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판이었다. 세 봉지와 네 봉지는 질적으로 달랐다. 3일을 버티자 텐션은 전보다 확실히 더 오른 것 같았지만 고통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4일째 되던 날, 밤을 새워 다음 회차 콘텐츠 녹화를 마친 서연은 기절하듯 안방에 돌아와 쓰러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이었다. 짧은 꿀잠을 잤다고 생각한 서연이 오후에 있을 콘텐츠 촬영 일정을 떠올리고 텐션을 올리기 위해 먹이로 줄 고무줄을 챙겨 거실로 나왔다. 무음으로 해놓은 스마트폰에는 부재중 전화가 100통이 넘게 찍혀 있었다. 메시지도 200건이 넘게 들어와 있었다. 화들짝 놀랐다. 기절하듯 잠들고 나서 몇 시간이 지난 게 아니었다. 꼬박 하루가 지나 있었다. 하루 종일 연락도 없이 잠적해 버린 셈이니 난리가 날 만도 했다. 서연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기획사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순간 서연의 눈에 어항 꼭대기에 배를 뒤집고 누워 있는 푸른 물고기가 보였다. 스마트폰을 내던진 서연이 어항으로 다가가 뚜껑을 열고 조심스럽게 푸른 물고기를 건드렸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계약의 유일하고도 사소한 조건. 물고기를 돌보는 것. 하지만 물고기는 이미 죽어 있었다. 이건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서연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퍼뜩 정신을 차린 서연이 장식장 서랍을 급하게 뒤지기 시작했다.
‘안내서, 안내서를 찾아야 해!’
장식장 구석에 처박혀 있던 안내서를 찾아냈다. 200쪽이 넘는 안내서에는 물고기가 죽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한다는 내용은 단 한 줄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때 서연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발신자가 제한된 번호였다. 우물쭈물하던 서연이 조심스럽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 여보세요….”
“오랜만이죠? 불행한 일로 연락드리게 돼서 유감이네요.”
“저, 저 이게 어떻게 된….”
“안내서를 꼼꼼하게 읽어보시라고 말씀드렸었는데. 기억나시죠?”
“다, 당연하죠.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이나 읽었는데요. 전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마지막 장에 있는 주의사항도 읽으셨나요?”
“주의사항요? 그런 건 없었어요.”
“역시 그것 때문이었네요. 다시 살펴보세요. 거기 분명히 적혀 있어요. 플래닛 와인더에게 먹이 주는 횟수나 양은 늘릴 수만 있지 줄일 수는 없다고요. 어제 먹이를 안 주셨죠? 그렇죠?”
남자의 말투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친절하고 상냥했다. 서연은 사정을 잘 설명하고 매달리면 물고기가 죽은 문제를 한 번쯤 봐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서연은 남자가 말한 내용을 안내서에서 읽은 기억이 전혀 없었다. 스마트폰을 스피커 모드로 바꾼 서연이 안내서를 다시 한번 꼼꼼하게 들여다봤다. 맨 마지막 장이 이질적으로 두꺼웠다. 자세히 보니 두 장이 붙어 있었다. 억지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뜯어보니 남자가 말한 내용이 거기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서연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붙어 있어서 못 봤다고 우겨 볼 수 있겠어!’
서연의 생각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남자의 목소리가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왔다.
“그건 면책 사유가 못되요. 꼼꼼히 읽었으면 붙어 있다는 걸 알았을 테니까요. 주의사항을 무시한 전형적인 이용자의 귀책사유죠. 동정의 여지가 전혀 없죠.”
“그, 그래도 일,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요… 실수, 실수잖아요!”
“다들 그렇게 이야기해요. 그 실수 누가 한 거죠? 서연님이 아니라 제가 했나요? 실수도 당연히 본인 책임이에요. 명백하게 벌어진 일이니까.”
“저는, 저는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원담 씨처럼 되는 거예요. 아쉽게도.”
원담이라는 이름에 서연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원담 선배. 경찰에 실종신고까지 냈지만 끝내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구독자 백만 크리에이터의 갑작스러운 실종에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 뇌리에서 잊히고 말았다. 그를 대체할 사람은 많았다. 특히 서연이 그 자리를 메꾼 일등 공신이었다. 푸른 그라데이션 무늬 옷을 즐겨 입었던 원담 선배. 하이 텐션의 쾌감에 빠져 서연은 그동안 원담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이미 원담 선배를 까마득히 앞섰는데. 이제 와서 원담 선배처럼 된다고?’
서연은 남자의 이야기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곧 현장 처리반이 도착할 겁니다. 차고에서 다시 뵙지요. 그럼 이만.”
남자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양 서연의 온몸에서 한껏 높아졌던 텐션들이 설탕처럼 흐물흐물 녹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서연은 몸을 일으켜 도망가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헛일이었다. 녹아내린 텐션들이 점액질이 되어 온몸을 감싸 미끄덩거리기 시작했다. 서 있는 건 고사하고 앉아 있을 수도, 도움을 청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집을 수도 없었다. 바닥에 미끄러져 드러누운 서연의 눈에 어항에 배를 뒤집고 누워 죽어 있는 물고기가 들어왔다. 거꾸로 보는 물고기의 등은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생생한 파란색이었다. 문득 서연의 머리 위에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저, 저 파란색!, 저 파란색!’
점액질이 서연의 온몸을 덮어버렸다. 서연은 숨도 쉴 수가 없었다. 서연은 제 몸이 쪼그라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점액질 너머 어른거리는 세상으로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이 뭘 하는지는 잘 알아볼 수 없었다. 그들 중 하나가 다가와 서연의 미끄덩거리는 몸을 조심스럽게 큰 가방에 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창고 안으로 반야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서연이 한창 잘 나갈 때 기획사에 들어온 신참 크리에이터였다. 반야는 항상 의욕과 열정이 넘쳤다. 하지만 구독자와 조회수는 안타깝게도 제자리걸음이었다. 기획사 회식이 있던 날 서연은 반야에게 검정색 명함을 건넸다. 성공의 비밀을 공유하고 싶지 않았던 평소와 달리 반야에게만은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이런 마음을 서연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반년 전 원담도 그랬으리라.
서연이 필사적으로 반야에게 소리쳤다. 그만두라고, 그만두고 당장 이 차고에서 나가라고. 그 소리를 듣지 못한 듯 반야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남자가 내민 가죽 장정 책의 마지막 장에 사인을 했다. 반년 전에 서연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정신을 잃고 자리에 쓰러졌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짓던 남자가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서연 앞으로 몇 걸음 다가왔다. 남자의 길쭉하고 하얀 손가락이 서연이 헤엄치고 있는 수조 벽을 톡톡 두드렸다. 온몸에 푸른 반점 무늬가 찍힌 서연이 반갑다는 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너는 반년, 얘는 얼마나 걸리려나?”
수족관에서 물러난 남자가 테이블 아래서 새 가죽장정 책을 한 권 꺼냈다. 테이블 위에 책은 이제 여섯 권으로 늘어나 있었다.
“책 늘어나는 속도가 점점 빨라져. 이러다가 죄다 플래닛 와인더가 되어 버리면 어쩐다지. 이렇게 많이는 필요 없는데 말이야. 어쩔 수 없지. 또 다른 놀이 거리를 생각해 내야지 뭐.”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책 표지를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반야가 들어왔던 문 쪽을 향해 과장된 말투로 너스레를 떨어댔다.
“여러분 잘 보고 계시죠? 플래닛 와인더 확보와 함께 즐기는 욕망의 리얼리티 쇼! 끊어질 때까지 당길 것인가, 지쳐 쓰러져 못 당기게 될 것인가! 아쉽게도 지난번에는 반년 만에 지쳐 쓰러져 못 당기는 결말을 맞게 됐죠.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떻게 될까? 어떤 결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당신의 스토리에 지금 바로 배팅하세요!”
아무것도 없던 검은 공간에 서서히 화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기 방 침대에 누워 있는 반야, 작은 어항에 담겨 반야의 집 거실에 놓인 파란 점박이 물고기가 된 서연. 차고의 쓰레기통에 처박힌 파란 물고기 원담. 화면 아래 붙은 채팅창에는 기대와 응원으로 범벅된 메시지들이 숨 가쁘게 올라오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이 서서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차고의 텅 빈 어둠 속에서 채팅 창만이 홀로 빛나고 있었다.
* 특별히 한 줄 요약 해드림
: 당기고 또 당기면 결국
풀어지거나 끊어지는 법.
하이텐션에 올인해 끝도 없이 당겼던
그 여자와 그녀의 물고기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풀어진 걸까?
끊어진 걸까?
* '오늘비'의 뱀발 한뼘
: 물고기는 없다. 하지만 있다.
있지만 없다. 없지만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아씨, 뭐라는 거야!
그래서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아, 기 빨리고 텐션 떨어져….
(제목 이미지는 '뤼튼 AI이미지'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