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없는 사람들

관계에서의 기대

by 발견씨

내가 소속된 루틴 인증 모임에서 최근 ‘진정성’이란 키워드가 화두에 올랐다.

참가자 A가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진정성이 있는가”를 놓고 열변을 토했기 때문이었다.

좋은 주제였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생각과 표현은 덜 다듬어져 있었다.

결국 모임 내 저격성 표현은 삼가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는 반성의 글을 남긴 뒤 다음 날 조용히 떠났다.


그 일은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불꽃이 피어난 그날부터 그 이야기는 내 안의 작은 숙제로 남아있었다.


참가자 A에게 ‘진정성’이란 모임을 넘어

삶의 수많은 질문과 맞서는 문제라고 느꼈다.

그래서 내 생각을 가다듬으며 그것을 어떻게 전할지, 전할 수나 있을지 고민했었다.


비록 그는 떠났지만,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기에

그에게 인사 한마디 건네지 못한 아쉬움을 이 글로 털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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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1일 오전 9시,

독서 모임을 가장한 대화 모임이 열렸다.

오랜만에 혹은 처음 얼굴을 마주한 자리라

모임 활동의 뒤풀이처럼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성의를 보이지 않아 강퇴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성의’라는 단어를 계기로 참가자 A는 평소 품어 온 진정성에 대한 생각을 쏟아냈다.


참가자 B는 댓글 하나 쓰는 데도 자기 검열이 심했다며 적절히 맞장구를 쳤지만,

나는 눈치 없이 이런 소리를 뱉었다.


“진정성 없어도 돼요.”


그건 정말 소리였다.

아무에게도 닿지 않았으므로.


화제를 돌리는 데는 실패했지만, 실없는 말은 아니었다.


스물다섯 즈음의 여성(참가자 A)에게 진정성이란,

'관계'에 대한 깊은 고민, 즉 앞으로 살아갈 날이 걸린 인생 필수 관문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관점을 제안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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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진정성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뱉은 말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밥 한번 먹자"는 인사를 몇 달 동안 지키지 않는 사람을

나를 쉽게 잊는 사람, 곧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그때는 나를 기억하는 것이 진정성의 기준이었고,

그 기준을 통과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마음껏 기대하고 실망하기를 거듭한 후에

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서 ‘패턴’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 말에 숨은 의미를 부여했다.


산만하고 장난기 많은 짱구의 “밥 먹자”는 그저 인사였고,

말수가 적고 진지한 맹구의 “밥 먹자”는 용기가 담긴 진심이었다.

같은 말도 다르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신념을 바꾸자 실망의 횟수는 줄었다.

대신, 강도는 더 세졌다.

그리고 그 신념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빠였다.


늘 좋은 말과 행동으로 곁을 지켜주던 아빠가

가장 필요한 순간에 등을 돌렸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아빠의 모든 것을 부정해 버렸다.


그때부터 아빠의 행동은 모두 가식이었고,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위선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한참을 몰랐다.

내가 힘들었던 그 시기가, 아빠에게도 최악의 시기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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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행동 패턴을 파악하고,

다음을 예측하며 사는 건 일종의 자기 방어였다.


어느 순간 그마저도 부족하다고 느끼자

나는 또 하나의 방어막을 만들었다.

‘이해 가능한 가설 세우기’였다.


상대가 해명하지 않아도

스스로 그 상황을 납득할 수 있도록 나만의 시나리오를 만든 것이었다.

그렇게 해야 누군가 나와의 약속을 깨거나 늦거나 답이 없어도

덜 실망하고 마음을 덜 닫을 수 있었다.


그러나 상처받은 뒤 마음을 닫지 않고 버티는 건

가파른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것과 같았다.

모든 기대를 거두고 마음을 닫는 쪽이 훨씬 수월했다.


그래도 나는 나를 포함해

누구에게도 그 길을 권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문을 닫아버렸을 때,

나는 내 좁은 세계가 점점 더 좁아져

사라질 것만 같은 감각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독’이 아니라 ‘고립’이었다.

그리고 고립은 삶의 의미를 아주 쉽게 지워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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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과정을 지나기 전까지

내 세계에 ‘진정성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내 기대를 완벽히 충족할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기대와 타인의 행동을 분리해 보니,

진정성이라는 기준 자체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진정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내 안에서

'당신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기대하며,

그 기대를 충족할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에게 이 질문으로 답을 대신하고 싶다.

그리고 모임장이 모임원에게 품은 기대를

성의나 진정성 대신 '예의'라고 표현하고 싶다.


모임장이 말한 성의는 횟수나 분량의 문제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시간과 에너지를 받았다면 그 마음을 다시 흘려보내는 것,

최소한의 순환을 만들어달라는 그 말은,

인간 대 인간으로서 예의를 지켜달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결국 좋은 사람들과 좋은 흐름을 만들고 싶다는 이 모임의 취지와 맞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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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모임이 참 좋다.

거기에서 얻은 에너지로 하루하루 더 힘차게 걷고 있다.

그 힘은

내 글을 읽었다는 표시인 '좋아요' 하나,

내 이야기에 반응한 짧은 한 줄,

무엇보다 글을 올리지 않으면 내쫓는다는 단 하나의 규칙,

이 모든 것에서 생겨났다.


그래서 나는 그 작은 공간 속에서

나의 불완전한 목표와 계획을 드러내며

고립이 아닌 연결을 택했다.


그리고 그 연결을 위해,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느끼는 아쉬움을

혼자 삼키지 않고 털어놓으려 한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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