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10주년작가의꿈
‘나는 글을 쓰면 안 되나 보다.’
작품완성 모임 첫 정모 날, 나만 아무것도 제출하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이번만큼은 기필코 성공하겠다며 구조 설계부터 지독하게 매달렸는데, 2주 동안 남긴 건 ‘죽음 예약 서비스’라는 제목 하나뿐이었다.
아무도 뭐라지 않았지만 포효하고 싶었다. 여기서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쏟은 사람은 없을 거라고, 엘리베이터 생김새까지 다 설계했지만 단편으로 담기엔 세계가 너무 컸다고. 그러나 작품을 내지 않은 내게 차례는 오지 않았다.
그 시간은 거짓이 아니었다. 첫 단편을 멋지게 완성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매일을 보냈다. 환경도 좋았고 방해도 없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됐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 내 길이 아닌 것이었다.
평소 나는 도전을 두려워하거나 쉽게 단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고 싶은 건 언젠가 하게 되어 있다고, 꾸준히 하면 뭐라도 나온다고 힘 있게 뱉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머릿속 장면을 문장으로 옮기기 시작하면 한 장을 넘기지 못하고, 되돌아가 고치고 또 고치다, 끝내 성에 차지 않으면 구조까지 뒤집어 흐름을 헤집는 사람도 나였다. 어린 시절 일기장에 적어 둔 수많은 이야기를 보며 떡잎부터 다르다고 자만했건만, 지금의 나는 부모 집에 얹혀 용돈벌이만 겨우 하는 서른이었다. 그러니 안 된다고 말할 수밖에.
2024년 12월, 브런치 작가가 된 뒤 내 일상은 나름 작가 같았다. 주 5일 이상 글을 썼고, 적지만 모르는 이들이 매주 내 글을 읽었다. 올해는 작품을 올려 보자고, 브런치의 기회가 언젠가 내게 닿을 거라 은근히 기대하며 세 계절을 보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소설에 손을 대자 밑천이 드러난 것이었다. 작은 목표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려 했지만, 내겐 완성조차 버거웠다. 그러다 작품완성 모임을 발견했고, 망설임 없이 합류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원동력 삼아 더 달려 보려 했지만, 다짐만큼 좌절만 배가되어 돌아왔다.
첫 정모 날 탈주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하루만 참기로 했다.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엎기로 결정한 작품의 소재만 적어 냈다. 정말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작품도 꼼꼼히 읽었다. 그다음엔 형식적인 칭찬 흐름을 끊고 아쉬운 지점만 차례로 짚었다. 심술이 아니라 습관이었다.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려면 냉철한 피드백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내 작품만 빠진 그 합평에서 피드백을 가장 많이 했다.
그런데 모임이 끝나자 그만두겠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완성도가 모자라고 구멍이 많지만, 그럼에도 흘러가는 각자의 사연이 내 마음을 자극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고 곧바로 문서창을 열었다. 그리고 그날의 마음을 첫 장면으로 옮겼다. 작품을 내지 못한 내가, 마감 직전 모임을 탈주하고 바다로 달려갔다.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저 나아갔다.
2주 뒤 두 번째 정모에서는 나를 포함해 절반만 글을 냈다. 그게 끝이다. 기적은 없다. 나는 여전히 막혔고, 되돌아갔으며, 탈주 본능이 다시 고개를 들 만큼 모임장의 피드백은 매웠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글을 썼지만, 망가져만 가는 문장들이 나에게 경고하는 듯했다. 지금이라도 엎드리지 않으면 다음은 나라고.
육중한 몸이 너덜너덜해질 즈음 인정했다. 어린 시절 쏟아낸 이야기는 재능의 증거가 아니라 흥미의 표식이었다는 것을. 화려한 서사보다 먼저, 내 마음을 온전히 담아내는 이야기를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다음 날 인생 첫 필사를 시작했고, ‘다섯 페이지 독서 인증방’에도 들어갔다. 고개를 낮추고 날마다 소설의 문장과 문장 사이를 들여다보니, 전에 스쳐 지나갔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장면의 덩어리, 넘어가는 지점, 멈출 때와 밀어야 할 때. 나는 그 리듬을 내 이야기로 옮기려 애썼다. 기한은 없다. 오늘의 한 단락이 내일의 한 페이지가 되고, 그 페이지들이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나는 매일 읽고, 베끼고, 쓸 것이다.
브런치에서, 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 그게 내가 이루고 싶은 작가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