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원피스

by 천둥


딸딸딸을 낳은 엄마는 막내딸에게 아들 옷을 사다 입혔다. 머리를 스포츠형으로 짧게 깎고 국방색 티셔츠에 국방색 반바지를 입혔다. 그게 나다. 3년 후에 남동생이 태어났다. 나는 원 없이 머리를 길게 길렀다. 하지만 치마를 입어보지는 못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라고 기억한다. 엄마가 내 원피스를 사 왔다. 언제나 언니들 옷을 물려 입었는데, 딱 내 옷이라고 지정해서, 내 몸에 딱 맞는 사이즈로 사 온 것이다. 데님 원단이었고 목에서부터 치마 끝단까지 지퍼가 달려있었다. 안 입던 치마를 입으려니 쑥스럽기도 했고, 짓궂은 남자아이들이 지퍼를 아래로 내리는 장난을 쳐서 자주는 못 입었던 것 같다. 하지만 원피스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 축복으로 느껴졌다. 뭔가 여자아이로 다시 태어난 느낌이었달까. 그때는 내 옷이어서, 못 입어본 치마여서 좋은 건 줄 알았다. 내 마음도 몰라주고 속절없이 몸이 쑥쑥 자라 버렸고, 결국 원피스는 작아져서 누군가에게로 넘어갔다.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고 내가 옷을 사기 시작하고도 내 선택은 여전히 무난한 티셔츠에 바지였다. 한 번쯤 검은색 원피스, 마를린 먼로의 그 원피스를 입어보고 싶었다. 어느 날 친구와 쇼핑을 하러 갔는데, 딱 그 느낌의 옷이 있었다(가격대도 너무 높지 않았다.) 잔뜩 기대를 하고 들뜬 마음으로 탈의실로 들어갔다.

왜 그 탈의실에는 거울이 없었을까. 내 눈으로 봤다면 절대 그대로 나오지 않았을 텐데. 탈의실 문을 열고 걸어 나오는 순간 친구의 얼굴이 굳어져버렸다.

거울을 보고 바로 탈의실로 다시 들어갔다. 남자가 입어도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치 막대기에 치마를 입힌 느낌이랄까. 그 뒤로 한동안 원피스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27살쯤, 후배네 집에 얹혀살았다. 후배가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사 왔다. 민소매에 허리에는 고무줄이 들어가서 플레어로 퍼지는 디자인이었는데, 당시 그게 선풍적인 인기였다. 후배 것을 몇 번 입어보고는 조금 용기가 생겼다. 제법 어울리는 것도 같아서 자주 후배에게서 빌려 입었다.

마흔 넘어 회사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치마를 입었다. 그러면서 다시 원피스를 입게 되었다. 이제 원피스는 나를 돋보이게 하는 옷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집을 보러 갔는데, 부동산 중개인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냥 사모님처럼 호칭으로 부르는 건 줄 알았는데, 동업자가 옆에서 같이 선생님, 이라고 부르다 말고 선생님이시죠? 와 선생님이세요? 의 중간쯤 되는 소리를 새는 발음으로 물었다. 함께 간 동네언니들이 빵 하고 터졌다. 그제야 원피스를 입은 내 모습이 몹시 권위적으로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몽땅 걷어서 아름다운 가게로 기증해버렸다.

까맣게 잊었던 원피스의 기억을 떠올린 건, 다시 원피스를 입게 되면서이다. 좋은 기억이 되지 못했지만, 여전히 원피스를 좋아하고 편하게 입는다. 이제는 안다. 처음 원피스를 입을 때 느꼈던 그 감각이 무엇인지를. 그것은 평화적인 여성성이었던 것이다. 아마 원피스라기보다는 치마가 주는 상징성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편안해짐과 동시에 달라지는 앉음새로 내 안의 호전성이 가라앉는 것 같다. 나를 소중히 다루게 되는 느낌도 있다. 그건 내가 동물을 무서워하고 큰 사람을 멀리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또는 선단 공포증과도 비슷하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내게 공격해오는 듯해서 본능적인 방어 상태로 사는 것이다. 그러다 원피스를 입으면, 방어적 본능보다 고요함이 나를 감싼다. 여성이라는 유전자에 새겨진 온화함이 되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원피스,치마에 과한 의미부여라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그만큼 여성성에서 안전함을 느끼고 그런 느낌이 나이들수록 더 좋아지고 있다.

근데, 혹쉬 이거, 엄마들의 홈웨어 광고에 오랫동안 주입당한 탓은 아닐까, 의심도 해본다.

아무려나 내 첫 번째 원피스, 데님 원피스는 영원한 애정 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