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결혼식, 이라니.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내가 결혼한 첫 번째가 아니라 내가 참석한 첫 번째 결혼식 이야기를 하려는 거니까.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결혼식은 바로 이모의 결혼식이었다.
아직 학교를 안 다니던 어느 날, 엄마가 결혼식에 데리고 갔다. 언니들은 학교에 갔고 어린 동생은 옆집 찬이네 집에 맡기고 나만 데리고 갔다. 내 어린 시절을 통틀어 시장에 짐 들어줄 사람이 없을 때 말고는 엄마랑 나랑 단 둘이 어딘가에 간 적이 없었다. 엄마는 며칠 동안 뜨개질을 해서 내게 입힐 망토를 짰다. 엄마가 짜주는 뜨개옷은 몇 번이나 입던 것을 풀어 다시 짠 것으로, 여러 가지 색깔의 실이 합쳐져서 너무 촌스러워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새로 산 실로, 그것도 남색이나 고동색 같은 칙칙한 색이 아니라, 주황색으로 만들어진 옷이다. 게다가 망토라니, 너무 기대가 되었다. 엄마는 아침에 나를 불러 망토를 입혀보더니 가자,라고 하셨다. 어디 가? 이모 결혼식.
이모가 결혼을 하다니! 우리에게 이모는 착한 언니 같기도 하고 둘도 없는 친구 같기도 한, 언제나 청순한 아가씨인데, 결혼이라니. 너무 낯설고 이상했다. 결혼을 하면 우리 엄마처럼 억세지고 투박 해지는 건 아닐까. 힐끗거리며 엄마를 보면서 도리질을 해보았지만 이미 현관문을 나서는 엄마를 쫓아가기에 바쁜 것이 내 현실이었다. 도대체 예쁜 우리 이모를 데려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만약에라도 우리 이모를 데려가는 남자가 못생기고 나쁘게 생겼으면 이모부라고 부르지 않고 아저씨라고 큰 소리로 불러버려야지, 속으로 작정했다.
결혼식장은 티브이에 나오는 멋진 궁전 같았다. 그렇게 유리가 많고 천장이 높고 반짝이는 게 많은 곳은 처음이었다. 그렇지, 우리 이모처럼 예쁜 사람은 이런 곳에서 결혼식을 해야 해. 조금 마음이 놓였다. 엄마가 나를 데리고 결혼식 맨 앞자리로 갔다. 나는 이제나저제나 이모를 데려갈 사람이 누군지를 기다렸다. 빨리 내 눈으로 확인하고 아니면 소리를 질러야 하는데, 하면서 속으로 벼르다가 그만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앞에 멋진 신랑 신부가 서있었다. 드레스를 입은 우리 이모는 너무 예뻐서 눈이 부셨고, 옆에 선 신랑도 이모처럼 착하게 생겼다. 아, 됐다. 안심이 되었다. 입을 헤벌리고 웃었다. 그때 엄마가 내 손을 잡고 이모 곁으로 갔다. 나는 냉큼 엄마 손을 놓고 이모 뒤로 가 드레스를 움켜쥐고 숨었다. 이모는 내 거야, 라는 영역표시 같은 거였다. 가족사진을 찍었는데,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천사같이 예쁘게 한 이모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게 좋아서 여전히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었다. 이 사람이 내 이모다,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이모는 나를 내려다보며 자꾸 웃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곤란하다는 표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내가 와서 좋다는 뜻인 줄 알고 자꾸만 이모의 드레스를 꽉 움켜쥐었다.
우리는 이모가 한 명뿐이어서 원래 이모는 한 명만 있는 건 줄 알았다. 이모가 두 명 세명이라니, 한 명이어서 더 귀하고 소중한 건데, 그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이모는 내게 대명사가 아니라 하나의 고유명사였다. 이모는 아이를 넷이나 낳았지만, 우리 이모가 살이 좀 쪘네, 싶은 정도만 배가 나와서 임신을 한 줄도 몰랐다. 그런 것도 좋았다. 이모는 결혼을 해도 곱고 다정할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되어 주었다. 이모집과 우리 집은 너무 멀어서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가끔 이모집에 가면 맛있는 반찬을 맛보곤 했다. 무말랭이도 그중에 하나인데, 우리 집과 달리 오징어채를 넣어서 고소했다(요즘에야 다 그렇게 하지만). 이제 일흔이 가까운 우리 이모는 여전히 참 곱고 내 눈에는 하나도 안 늙은 것 같다. 아직도 이모야, 하고 부르며 친근한 반말을 하는, 유일한 상대다.
이모 결혼식 사진을 보면 나는 아주 작게 나온다. 이모 바로 옆이지만 드레스에 가려지고 내가 뒤로 숨어있어서 자세히 봐야 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만큼 작다. 하지만 나는 그날 이모 곁에 선 내 모습이 가장 크고 선명하게 기억된다. 마치 사진을 확대해서 본 것처럼. 세상에 이모와 나밖에 없는 것처럼.
그 뒤로 외삼촌과 삼촌의 결혼식, 그 외 친척들의 결혼식이 숱하게 있었지만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도 없다. 내가 어른이 되어 친구들의 결혼식에 가기 시작하면서 다시 결혼식에 대한 추억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이미 뻔한 결혼식이었다. 나의 첫 번째, 결혼식, 인 이모의 결혼식이야말로 내게는 결혼식의 의미가 제대로 담겨있는 결혼식이다. 내가 아는 사람이 누군가와 인생의 전환점에 선 자리이며 나에게도 보는 것만으로 의미 있는 의식 말이다. 그리고 결혼식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라는 어떤 환상에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누군가의 행복을 기원한다는 것을 처음 해본, 온 마음을 다한 날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