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영화

by 천둥

나의 첫 번째 영화는 <펠리컨 브리프>다. 줄리아 로버츠 주연이고 거의 그녀를 따라가는 영화다.

어릴 때 극장에서 본 첫 번째 영화는 <사관과 신사>였다. 중2 때 학교에서 중간고사를 마치고 단체관람을 했다.(연식이 나오는군)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여주는 거니까 어떤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자, 는 의도로 무언가를 한 첫 번째 시도가 아니었나 싶다. 그전까지는 그런 개념 자체가 없었다고 기억한다. 아무튼 정숙한 여중생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집중도 안되고 파악도 안 되었다. 마치 학교에서 대놓고 하이틴 로맨스를 보여준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다는 것만 기억한다.

그전에 주말의 명화도 많이 봤다. 엄마 아빠가 주무시면 큰언니가 거실에 있는 티브이를 몰래 방으로 들고 들어왔다. 엄마는 그런 영화를 보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아마 엄마 심정이 내가 중2 때 사관과 신사를 볼 때 심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언니 덕에 영화를 보는 건 좋은데 착한 놈이 나쁜 놈을 죽이는 게 전부였다. 총 쏘는 문화가 이해가 안 되는 나는 영화에 몰입하기 어려웠다. 아니면 사랑 영화였다. 하지만 언니가 반은 눈을 가렸기 때문에 이것도 기억하는 게 별로 없다.


이후에도 영화는 계속 봤지만, 영화라는 매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본 것 같다. 어쩌면 영화만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라 책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소설이나 신화, 시 등 내가 이해한 게 도대체 뭐가 있을까. 아련하게 좋았던 느낌은 있지만 시대적 배경을 이해한다거나 주인공의 심리를 이해한다거나 그러지는 못했던 것 같다. <작은 아씨들>만 빼고. 몹시 조에게 감정이입을 했었다.


<펠리컨 브리프>는 줄거리와 영화의 의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느낀 첫 번째 영화다. 영화가 끝나고 혼자 흥분했다. 영화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였어? <펠리컨 브리프> 이후부터 영화가 하는 말을 이해했던 것 같다. 영상언어까지는 아니다. 그건 좀 더 뒤에, 아니 아직도 잘 모르는 게 틀림없다. 하지만 이제 느낌에서 한발 나아간 것이다.


사실 연애하는 동안 영화를 많이 봤다. 영화를 좋아하는 애인 덕분이기도 했지만 영화 말고는 딱히 할 것도 없지 않은가. 그동안 내가 본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애인과 나눈 이야기들 중에 내가 알고 떠든 것은 얼마나 되는 걸까. 아마도 씨네 21 같은 걸 미리 보고 대충 떠들었음에 틀림없다.

내가 영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전에는 몰랐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싶었던 것이 바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영화를 보고 난 후였다. 애인이 그것에 대해 마구 열변을 토하는데, 다른 세계 같았다. 이게 뭐지? 애인은 나처럼 씨네 21 같은 걸 본 게 아니다. 그는 글을 읽는 인간이 아니었으므로.

내게 결여된 것이 신경 쓰이기 시작되었다. 그리고 혼자 비디오를 보기 시작했다. 혼자 보면서, 반복해서 보면서, 조금씩 눈이 틔였을까.


갑자가 나의 첫 번째 영화가 생각난 이유는 오늘 <윤희에게>를 보았기 때문이다. 달과 눈과 사진, 기차 그리고 리폼 등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몇 개의 소재로 눈에 띄었다. 아직 영상을 보려면 멀었고, 윤희역의 김희애의 눈빛이 내 발목을 잡았다. 조금 아쉬운 것은 마지막에 윤희가 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너무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장면이었다. 그냥 두었어도 좋았을 것을 마구 설명하는 통에 윤희의 연기가 산통나버린 듯했다. 나처럼 영화를 못 읽는 사람들을 위한 것인가. 그래도 감출 것은 감춰야 맛인데...


며칠간 그동안 못 본 영화를 볼 작정이다. 여전히 좋은 영화인지 알아볼 혜안은 없지만 연기자들의 눈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영화에 대해 나는 아직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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