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고기

by 천둥

얼마 전 처음으로 양꼬치를 먹었다. 왠지 냄새날 것 같은 비주얼이라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앞니로 쬐끔 뜯어 잘근잘근 씹었다. 음? 이거 괜찮은데? 그렇게 양고기에 입문을 했다.


엄마는 소고기 외에는 아무것도 드시지 못했다. 자랄 때 육개장과 불고기 외에는 먹어본 고기가 없다. 지금은 소갈비를 제일 잘 드신다. 없어서 못 드셨던 것 같다.

누군가의 생일에는 불고기를, 명절에는 육개장을 끓여주었다. 여섯 식구의 생일이 4월, 5월, 8월, 그리고 9월에 세명이 몰려있다. 심지어 작은언니는 엄마랑 생일이 같은 날이다. 언니를 얼마나 원망했는지. 12월쯤 되면 금단현상이 왔다. 고기를 씹고 싶어 이빨이 간질간질하다고 엄마를 졸랐다. 엄마는 당면을 잔뜩 넣은 불고기를 해주셨다. 면을 어느 정도 먹어야 아래 고기가 보이는.


우리 동네에 처갓집 양념통닭이 처음 생겼을 때를 기억한다. 시장 맨 끝 정면으로 보이는 집이었다. 신장개업이라고 만국기가 휘날리고(는 아니겠지만 마치 그런 정도의 요란함이 있었다.) 다들 비닐 안쪽으로 기름이 흐르는 봉다리를 하나씩 들고 다녔다. 생전 그런 일이 없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바로 그 봉다리를 들고 오신 것이다. 온 식구가 달려들었다. 치킨 영접의 날이었다. 우리가 어려서 그렇기도 했겠지만 그때는 닭이 컸다. 다섯 식구 맛보기에 괜찮았다. 뼈만 남은 잔해를 뒤로 하고 기름진 손가락을 빨았다. 엄마는 코를 막고 있었다. 닭 냄새난다고.


형부 될 사람이 왔다고 했다. 우리 동생들을 우르르 나가 구경(?)을 했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와서 엄마는 당황했다. 점심때였는데, 당황하는 엄마를 모시고(왜 아버지와 우리 자매는 딸려간 기분인 건지 모르겠지만) 형부는 횟집에 갔다. 처음으로 회를 먹었다.

형부, 라는 신기한 사람을 보는 자리임에도 나는 그 회라는 것에 정신이 팔려 뇸뇸거리고 먹는 데만 집중했다. 언니야 시집을 가든지 말든지.

남자 친구와 데이트 약속이 있었던 것 같다. 끝나고 부랴부랴 달려갔다. 왜 늦었냐는 질문에 형부라는 사람이 왔어, 보다 회를 먹었어, 를 먼저 답했다. 무슨 회? 음, 활어회!

메뉴판에 쓰여있는 회의 종류는 보지 못했고, 간판에 쓰여있는 활어횟집만 기억했던 것이다.


역시 형부는 좋은 사람이었다. 돼지갈비도 형부가 사주었다. 언니의 신혼집에 놀러 갔다. 상계동이었는데, 전철역 근처에 돼지갈빗집이 즐비했다. 가게 안이 아니고 가게 밖에 내놓은 둥근 탁자에 앉았다. 역시 배운 분. 벌겋게 달궈진 숯불이 먼저 등장했다. 숯불향을 입히면 뭐든지 맛있다. 거기에 양념을 더한 갈비라니. 어머니, 왜 그동안 제게 돼지고기를 안 주셨나요~~~~ 할렐루야! 그건 정말 내 생전 먹어보지 못한 환상의 맛이었다. 지금도 가장 충격적인 음식을 꼽으라면 돼지갈비다. 그때부터 내 돈으로 돼지고기를 사 먹기 시작했다.

형부는 쬐꼼한 여자아이 배를 못 채우랴, 우습게 봤다가 혼쭐이 났을 것이다. 실성한 듯 먹어댔다. 언니가 나를 꼬집은 기억이 없는 걸 보아 언니도 맛있게 먹는 나를 보며 뿌듯해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후에도 나는 언니 신혼집에 수시로 들락거렸다는.


삼겹살은 대학시절 함바집에서였다. 어떤 모임이었는지 누가 같이 있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철망 사이에 붙어 꼬실꼬실 타들어가던 기름내만 기억한다. 그 기름내는 처갓집 양념통닭과도 다르고 숯불 돼지갈비의 질겅한 부위와도 달랐다. 아무것도 없는 기름덩어리 같으면서도 질긴 것 같으면서도 고소하게 녹아버리는 그 식감.

함바집이 대학 내에 왜 있었는지 모르겠다. 무슨 공사가 있었던 것 같지도 않은데. 아무튼 우리는 식당보다 함바집을 더 자주 애용했고 그곳은 일용할 양식이었을 뿐 아니라 내 영혼을 살찌워주었다. 먹는다는 것은 자동차에 기름 넣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던 내게 산다는 것은 곧 입을 충족시키는 것이로구나, 를 깨닫게 해 주었으니. 아욱 된장국이 그토록 깊게 영혼을 달래어줄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식사시간이 아닌 밤 시간, 고된 노동을 끝낸 일꾼들이 모여 삼겹살로 시름을 달래주던 함바집의 정경. 더불어 노래들. 젓가락으로 부르는 노래가 함께 했었다. 덕분에 그때 그 노래들이 흘러나오면 삼겹살 냄새도 함께 떠오른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고기의 정점은 누가 뭐래도 소갈비지. 그렇다. 소갈비는 돼지갈비와는 또 다른 고급한 맛이 있지 않은가.

결혼 초, 어쩌다 남편 회사의 회식자리에 끼게 되었다. 특별한 날이었는지 부장님이 소갈비를 쏘셨다. 나는 몰랐다. 조금 늦게 갔고 고기가 맛있네,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어떻게 소와 돼지를 구분을 못해?라고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처음 먹어봤다니까?! 비싼 줄도 몰랐다니까! 그날 직원들은 이 신혼부부가 벌써 큰일을 해냈군, 다행히 입덧은 안 하네, 생각했단다. 시간이 지나도 출산 소식이 안 들려와서 이상했다고(신랑은 입이 무거운 편이라).

불판의 고기는 굽기가 바빴고 채 구워지기도 전에 내 젓가락이 쉬지 않고 고기를 낚아챘고 내 옆자리의 직원들은 옆 테이블의 고기를 얻어먹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 죄송합니다. 대신 신랑의 영업실적이 그 무렵 무지하게 좋았답니다. 부장이 쪼았는지 제 발이 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쓰고 보니 맛있는 거 앞에선 주변 사람 신경도 안 쓰고 자기밖에 모르는 후안무치한 먹보임을 고백하는 글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먹성은 내 인생에서 한 손으로 꼽을 정도이니 양해 바란다(이미 한 손 넘었... 세지 맙시다, 거!). 지금은 먹을 것이 쌓여있어도 소화를 시키지 못해서 그림의 떡일 뿐이다. 육식의 문제점을 잘 알지만 채식을 결심하지 못하는 이유는 소화시킬 수 있는 거라면 뭐든 잘 먹자, 하는 마음이다. 육식이 소화가 안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야채가 소화가 잘 안된다. 콩도 그렇고 양상추도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맛있게 먹었던 고기 이야기는 엄청난 활력을 준다. 츄릅~!


사진출처 https://pixabay.com/illustrations/bratwurst-fork-barbecue-meat-1410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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