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처음 산 차는 티코였다. 영업을 하는 남편이 필요해서 산 차였다. 그때 우리는 옥탑방에서 살고 있었으니 차를 살 형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남편을 믿고 차를 샀다. 다행히 티코를 산 이후로 실적이 쭉쭉 올라서 할부금을 잘 갚을 수 있었다.
티코를 살 때까지만 해도 나만 운전면허가 있었고(10년째 장롱면허였지만) 남편은 면허가 없었다. 어이없게도 남편은 운전면허도 따지 않은 채 차부터 샀다. 남편이 면허를 따는 시간 동안 내가 운전을 해야 했다. 벌벌 떨면서 운전을 시작했기 때문에 차에 대한 애정이라고는 1도 생기지 않았다. 다만 너무 더운 여름날에는 남편보다 티코를 더 반겼다. 옥탑방은 저녁이 되면 지열로 지글지글 끓었다. 샤워를 해도 몸이 식지 않아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티코를 타고 한 바퀴 돌면서 몸을 식혔다. 마음 같아서는 아예 차에서 자고 싶었지만 티코는 배터리가 약해서 차를 세워놓고 에어컨을 켤 수가 없어서 아쉽지만 다시 옥탑방으로 올라오곤 했다.
생활의 여유가 조금 생기고 나니 티코가 너무 불안하다고 느껴졌다. 여태 잘 탔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산 차가 레조. 레조와는 조금 더 친해졌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면서 낮시간을 이용해 친구와 모임을 시작했다. 그림책 모임이었는데 너무 멀어서 남편에게 양해를 구했다. 한 달에 하루만 차를 내게 내어달라고. 레조를 타고 내부간선도로를 지나다녔는데 길이 좁아서 너무 무서웠다. 역시 운전을 즐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조금만 참고 가면 친구들과 좋아하는 그림책 이야기로 수다를 떨 수 있다는 생각에 꾹 참고 운전대를 잡았다. 그날을 기다리며 독박 육아를 버텼던 것 같다.
그러다 내 차, 내 소유의 첫 번째 차인 소렌토를 가지게 되었다. 차가 없이는 몹시 불편한 시골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할 수 없이 따로 내 차를 샀다. 그동안 티코나 레조가 내 차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아니다. 그건 내 차가 아니었다는 것을 진짜 내 소유의 차를 가지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그것이 소유의 문제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소유가 되자, 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었다. 내 차는 나만의 공간이 되어주었다. 어릴 때부터 내 방이라고는 갖지 못했기 때문에 내 공간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그런데 차를 가지면서 인간에게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이었다. 내 차는 자기만의 방 그 자체였다.
또한, 그것은 일종의 ‘home’이 되어주었다. ‘house’가 아니라 ‘home’.
나만의 공간은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언제든 나만의 공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편안함, 나만의 공간 속에서 사유에 빠질 자유를 느꼈다. 내가 그동안 그렇게 자유롭지 못했나 싶을 만큼 큰 안정감을 느꼈다.
흔히 사람들이 집을 소유하게 되면서 느낄만한 것을 나는 차를 통해 느낀 것이다. 사실 요즘은 집은 없어도 차는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그들이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는지는 모르겠다.
house만이 아니라 home도 더 크게 확장하고 싶은 욕망이 커진다.
차에서 느낀 공간과 자유는 나를 더 능동적으로 행동하게 만들었다. 더 넓은 공간과 자유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를 하게 했다. 이번에는 나만의 공간과 자유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 속에서도 편안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그런 공간, 나의 범주, 영역을 만들어내고 싶어진 것이다(누군가는 나의 왕국을 만들어가는 시도라고 표현하더라).
시골 동네이다 보니 서로의 차를 다 기억한다. 그냥 흰색 소렌토가 아니라 내가 아는 '누구'가 탄 흰색 소렌토다. 당연히 차번호까지 다 외운다. 멀리서 오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거나 아는 척을 하고 어디 가는지도 짐작한다. 행여 신호를 안 지키거나 과속을 하면 하루 만에 소문이 다 나서 만나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했다. 예전 같으면 불편한 참견으로 들렸을 텐데 애정이 담긴 걱정과 연결감으로 이해되었다.
대부분 차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차 한 대에 같이 타고 이동할 일이 생기면 서로 운전을 하기 싫어서, 또는 기름값이 부담스러워서(서로 나눠내기도 하지만 애매한 경우가 많고 그런 일이 쌓이면 말하기도 곤란하다) 서로 눈치 보는 일들이 있다. 소렌토가 생기면서부터는 그런 일이 없었다. 어디든 내가 자진해서 운전을 했다. 운전이 좋아서가 아니라 소렌토를 갖게 되면서부터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뭐든지 내가 한다, 내게는 소렌토가 있으니까, 뭐 그런 마음이었던 거 같다. 당연히 차가 없는 누군가를 데려다주는 일도 내가 도맡았다.
소렌토를 내어놓기 시작하면서 집도 내어놓았다. 우리 집 거실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모임을 하게 되면 당연히 우리 집이었고, 웬만한 거리면 우리 집에 가서 밥을 먹자고 했다.
털털한 성격은 아니지만, 언제나 남들의 눈이 신경 쓰였지만, 그래도 내어놓을 수 있었던 건 나의 자유를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서 내 공간 내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교류하는 것이 자유라고 느껴졌다.
그것이 home과 house의 차이라고 여겨졌다. 나만의 공간에서 지극히 사적이고 편안함을 누리는 것도 좋지만, 내 영역이 확장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느껴지는 편안함이 더 안정감을 주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 주는 넉넉함, 언제나 받아들여질 것 같은 안전함은 소속감을 준다. home은 때로 내가 만들 수도 있다. 나의 왕국으로, 나의 마을로.
그 첫 번째 차, 소렌토를 폐차했다. 이사를 하면서. 오래 탔고 더는 유지하지 못할 만큼 낡아서 폐차를 한 거지만 하필 이사와 맞물리면서 내 첫 번째 차, 내 첫 번째 공간이 주었던 나의 왕국도 무너졌다. 왕국을 만들었던 경험은 내 몸에 익어 이제 언제든 만들어 갈 힘이 있다. 다만 그때의 기억은 추억으로만 남겨졌다. 소렌토를 폐차하던 날, 자주 내 차를 탔던 이가 나보다 더 아쉬워하며 말했다. 언제나 함께 했는데, 이 편안함이 그리울 거예요. 차를 보고 한 말이지만 나는 내 왕국에 대고 하는 말로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