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전원주택에 달력을 걸어? 탁상달력 있잖아.
전원주택은 달력 걸면 안 돼? 잘 안보이잖아.
응, 안돼. 전원주택은 달력 거는 거 아니야. 숫자 큰 달력은 농가주택에 어울리는 거지.
그럼 우리 그냥 농가주택하자.
평생 처음으로 집을 가졌다. 이사를 수십 번 다니면서 돈이 없어서 집을 못 샀다. 발로 툭 차고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는 법정스님의 말씀대로 자유롭게 살겠다는 의지로 사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땅을 발견했다. 언덕 위의 작은 땅, 옆에는 계곡이 흐르고 뒤로는 산이고 앞으로는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땅. 그 순간 두 번 고민하지 않고 그 땅을 사서 집을 지었다. 처음 가져보는 내 집!
근데 남편이 자꾸 숫자만 커다란 달력을 벽에 걸자는 것이다. 남들은 집 지으면서 몇 번이나 이혼 위기를 겪는다는데 우리는 그런 다툼 한번 없이 무사히 집을 지었다. 그래놓고 달력 하나 가지고 투닥거렸다. 그 집에서 우리는 만족스러웠다. 여름이면 바로 옆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고 가을이면 밤 떨어지는 소리에 신나서 뛰어나가고 겨울이면 벽난로를 피워 오순도순 모여 앉았다.
땅을 발견할 때 같이 있던 친구는 아파트를 샀다. 경기도에 전세 살면서 서울에 있는 넓은 평수 아파트를 전세 끼고 샀다. 지금은 조금 힘들지만 나중에는 넓은 평수에 살 수 있지 않겠느냐며 자린고비 생활을 했다(진짜 자린고비였다. 친구와 아들, 나와 아들, 네 명이 있었는데 굴비를 한 마리 구울 정도로). 그 친구 서울 아파트는 무진장 올랐을 거다. 지금은 연락하지 않고 살아서 그 아파트에 들어가 살고 있는지 어쩐지는 모른다.
어느 날 남편에게 말했다.
이사 가자, 서울로.
서울을 떠난 지 20년이 넘었다. 첫 번째 집을 판 지는 10년쯤 되었다. 그리고 2년 전 서울 근교를 떠나 지방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갑자기 이사를 주장했다. 달력 위치는 우겨도 집의 위치는 상관하지 않는 남편이 뜨악해했다. 왜 서울? 갑자기 왜 서울이야? 그러면서도 남편은 순순히 같이 집을 보러 다녔다. 주말마다 서울을 오가면서 부동산과 부동산 앱을 뒤졌다.
내가 원하는 집의 조건은 집안, 그러니까 인테리어나 평수가 아니다. 8학군 같은 소위 뜨는 지역도 아니고, 카페나 배달이 되는 편의시설이나 0세권으로 대변되는 핫플레이스가 있어야 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조금 번잡스럽지 않은 곳을 선호한다. 가까이 산이 보여야 하고 산책할 안전한 길이 있어야 한다. 걸어서 다닐 수 있는 도서관이 있어야 하고 병원은 없어도 한의원은 있어야 한다. 길가에 채소를 파는 할머니들이 눈에 띄면 더욱 좋다. 필수조건은 아니지만 평지보다 약간 오르막에 있는 집을 좋아한다. 까다롭지 않은 듯 까다로운 내 조건과 상관없이 집은 너무 비싼 데다가 비싸기만 해서 비싼 값을 못하고 종일 비싸, 비싸만 외치고 다녔다.
풀이 죽어서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남편이 다시 물었다. 왜 서울로 가려고 하느냐고. 거기서 뭘 하고 싶으냐고.
서울에 가는데 왜가 어딨어, 서울에 가는 건데 꼭 뭘 하고 싶어야 해? 서울은 서울이라서 가고 싶은 건데.
철없이 이렇게 대답할 수는 없어서 아이들 핑계를 댔다. 애들한테 주거를 해결해줄 수도 없으니 서울에서 살아주는 거라도 해주려고 그러지.
그 말에 남편은 딱 잘라 말했다.
그런 거면 가지 마. 이제 애들 위해 이사하는 거 안 할 거야. 이제 내가 1순위야. 나를 위해 살 거야.
할 말이 없었다. 우리는 그동안 아이들을 위해 이사 다녔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스무 살이 넘으면 독립시키고 우리 부부를 위해 살겠다고 공언해왔다. 남편은 얼마전부터 캠핑을 시작했다. 몇년에 걸쳐 리스한 차를 큰 거로 바꾸고 당근을 통해 캠핑용품을 사모았다. 이제 겨우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질 생각에 마음이 들떠있었다. 남편은 당신이 원한다면 서울이든 어디든 가겠지만 아이들을 위해 이사하는 거라면 동의할 수 없다고 단호히 반대했다. 아니, 이게 아닌데. 딱히 아이들 때문만은 아닌데...
그게, 서울 집값 오르는 거 봐.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 우리 집도 아무런 호재 없이 올랐잖아. 움직여줘야 재테크가 되는 거야.
내 말에 남편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어?
이사는 집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였다. 왜 안 그렇겠는가?
처음 집을 샀을 때 우리 아이들은 막 뛰어다니기 좋아하는 나이였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게 마당 있는 집을 원했다. 40대에는 아이들이 주로 학교나 친구들과 지내니 조금 작은 평수에서 살아도 되고 50대에는 애들이 독립해서 나갈 테니 더 작아도 된다고 말했었다. 우리는 일반적인 기준으로 살기보다 우리들만의 기준으로 살아왔다. 반자본까지는 못하지만 비 자본을 꿈꾸며 대안을 찾아 시골로 향했다. 그렇게 우리는 전원주택에서 마당을 즐겼고 40대에 빌라로 옮겼다가 50대인 지금 조금 더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들이 물은 적이 있다.
엄마, 그때 주택 안 사고 아파트 샀어야 했다고 후회한 적 있어?
나는 오랫동안 곱씹어 생각했다. 그리고 답했다.
아니, 후회 안 해. 지금 형편을 생각하면 참 철없는 소리겠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그 집을 선택할 거 같아. 그 집에서 살았던 순간이 우리 인생에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안타까워. 너는?
나도. 내 유년시절에 그 집이 없었다고 생각하면 너무너무 아쉬울 거 같아.
다행이다. 아들도 그렇게 기억해줘서. 그 집을 팔고 나올 때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툭 차고 나오게 되어 다행이다 생각했다.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그런 단단한 집에 대한 나만의 철학이 있었다. 그런데 왜 어느 순간 집값이 뛰고 있는 미친 시절에 휩쓸려 나도 서울로 가겠다고 떠벌리게 되었을까?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여태 재테크니 뭐니 남들이 아무리 주식을 해도 관심 없이 살다가 갑자기 서울로 간다고 절로 재테크가 되겠는가.
지금 이곳에서 느끼는 아쉬움이 있다. 지방에서는 서울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적 혜택을 누리기 힘들다. 그것만 생각해도 부럽고 화가 나기도 한다. 예전에는 내가 사는 곳의 문화는 내가 만들어내면 그만이라는 진취적인 베짱이 있었지만 지금은 진취가 뭔가요, 먹는 건가요, 그러고 산다. 게다가 지방이 가진 지방색은 도저히 이방인이 흉내 낼 수 없는 무엇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애써봤자 이방인으로 살게 될 거라는 두려움이 있다. 이제 다시 좀 능동적으로 살아야 하는데 도약을 할 수 있는 문화적 발판을 찾기가 어렵다. 나이가 들면 10킬로씩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이제 시작하는 작가 지망생에게는 몹시 불리하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이사하겠다는 마음 따위 접고, 살던 곳에서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며 살겠다, 고 장담하지는 못하겠다. 아마 부평초같이 흔들릴 것이다. 다만 나의 첫 번째 집, 그 집이 주는 평화가 기준이 될 거라는 것,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최선의 현재를 유보하지 않겠다는 것, 이것만은 지키고 싶다.
그래서 일단 작은 실험을 하기로 했다. 이곳에 스며들기. 고3 때 꿈이 책방을 여는 것이었다. 공부도 하기 싫고 삶에 열정이 없다 보니 책으로 도망가고 싶어서 생각해낸 것이 책방이었다. 글 쓰는 일을 하게 되면서 다시 책과 책방에 마음이 끌렸다. 마침 월, 화 책방지기를 구하는 안내문을 보았다. 이거다 싶었다. 스며들기 첫번째 스텝으로 이만한 게 어디 있겠나. 온종일 매이는 일이라면 스며들기가 아니라 작정을 해야 하는 일이지만 주 이틀이니 부담 없다. 게다가 책방이라는 업종은 공간적으로는 어느 한 지역에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지역과 상관없이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는 양자 철학과 같은 것이라서 이방인이라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다.
다음 주면 이제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 결정이 되고 나서 보니, 와~ 주 이틀 일하는 꿈의 직장이다. 작은 모임도 하나 꾸려야지. 뭐가 좋을까? 함께하지는 못하더라도 해보고 싶었던 모임이 있으면 뭐라도 던져주세요, 여러분~~ 두시부터 여덟 시까지니까 저녁 도시락도 싸야 하는데 도시락 아이디어도 주심 더 좋아요. ㅋㅋㅋ 책 팔 궁리보다 놀고먹을 궁리부터 하는 월화 책방지기입니다!
참, 만약 어디로든 이사를 가게 되면 벽에 달력을 걸어줘야지. 남의 시선 신경 쓰지 않고(아직은 안된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