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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Nov 13. 2019

존재의 증명


10대에는 빨리 20대가 되고 싶었다. 천진난만한 어린 시절 같은 건 없고 규율, 제약이 많아 목을 조르는 게 견디기 힘들었다. 아직도 시험 보는 꿈을 꾼다.

20대에는 빨리 30대가 되고 싶었다. 혼란스러운 게 많았다. 확실한 게 없다는 느낌, 내 것이라고는 없이 떠도는 느낌이었다. 빨리 독립하고 싶었다. 우리 때는 독립을 한다는 건 결혼뿐이었다. 연애를 방해하는 엄마를 핑계로 빨리 결혼을 해버렸다.

30대에는 내 집이 외로웠다. 내 집이 생겨서 안정을 느끼기는 했지만, 사회와 분리된 채 나 혼자 집에 갇힌 느낌이었다. 독박 육아여서 더 그랬을 것이다.


40대에야 드디어 만족스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나를 다룰 줄 알게 되었다고 하는 게 적당한 표현인 것 같다. 지나치게 외롭지 않기 위해 감정을 조절하게 되었고, 확실한 선택으로 내가 실현할 수 있는 범위를 좁혔다.

50대가 되면서 인간의 생물학적 능력을 다 소진한 것 같았다. 인간은 원래 50~60대에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육체가 증명하는 것 같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인류는 의학의 도움으로 다시 소생하여 2차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동안 인류가 살아온 방식에 따르면 지금은 살아온 날들을 톺아보며 삶이 가르쳐준 지혜를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일이 가장 적절하다. 실제로 체력적으로 글 쓰는 일 정도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물론 세상은 우리에게 요구한다. 제2의 인생이라고, 활력 있게 살라고, 인생은 60부터라고. 내가 아직 60을 경험하지 못해서 알 수는 없지만, 많은 언니들이 그렇다고 한다. 50과는 달리 60이면 다시 몸에 익숙해져서 살만해진다고, 다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말이다. 다만 경제적으로 또는 직업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언니들 이야기다. 그게 아니라면 아픈 몸을 달래 가며 막일을 하는 것이다. 최소한 손주를 돌보거나 식당일을 하거나. 팔다리, 허리에 인공관절을 갈아 끼우고, 그것이 마치 새로 건전지 갈아 끼운 것과 같은 것 마냥 돌리는 것이다.      


어쨌든 아직은 60이 아니어서 남은 여열로 50대를 살고 있다. 남은 여열이라 함은, 퇴직 직전의 남편이 가져오는 생활비에 기댈 수 있다는 말이다. 연금이며 은퇴설계며 하는 화려함 따위 상관없는 하루살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하루 벌어 하루를 산다는 게 어디냐.      

생물학적 능력은 다 잃었지만,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고 싶은 욕망은 깊고도 높다. 그래서 공자는 50에 지천명이라고 했는가 보다. 뭔가 조금 알 것 같기는 한데, 써봐야 알 것 같다. 팔도 션찮고 눈도 션찮지만 쓸 수는 있기에 쓴다. 자꾸 써보는데, 두 가지 난관에 봉착한다.

하나는 꼰대의 잔소리가 될 수 있다는 것, 또 하나는 아무런 지원이 없다는 것이다.

농경기에야 삶의 지혜라는 게 필요했겠지만 지금은 인터넷이 훨씬 스마트하게 가르쳐준다. 오히려 젊은이들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인공지능기술이 너무나 많다. 금융부터 냉장고 세탁기까지 복잡해졌으니까.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내가 살아온 날들에 대한 의미를 적어보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역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고 소규모 브랜딩이 대세라고 하니까. 나의 글이 하나의 콘텐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50대에게는 혜택이 없다. 청년도 아니고 노년도 아닌 우리는 혜택을 주지 않는다.

말로는 은퇴를 준비하라고 하고, 시니어를 지원한다고 하지만 아직 때가 닥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혹은 너무 늦은 나이 아니냐며 눈길을 주지 않는다. 예술가도 40까지만 해당된다. 나이 들어 예술하면 취미로 하라고 하고, 돈 벌 기회를 청년에게 양보하라고 한다.


나도 안다. 청년 노동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내 아이들도 청년이니까.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는 청년이나 50대나 누구에게나 큰 문제이며, 노동의 권리와 욕구가 있는 법이다. (너무 당연한 말을 굳이 써야 하다니.)      

예술가를 ‘꿈꾸는’ 일은 청년이 해야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예술가가 되려는 꿈을 위해서가 아니라, 글로 먹고살기 위한 노동의 측면이다. 만일 내가 쓰는 그것이 예술에 속한다면 예술가가 되기를 꿈꾸지 않았어도 예술가라고 불리게 될 것이다.

글을 쓰려고 애쓰는 사람으로서 내 글이 예술에 속하기를 바라지 않을 수는 없다. 청년의 것을 뺏으려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몹시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는 듯한 내가 우습기도 하다. 50은 조금씩 죽어가는 나이이기는 하지만 아직 한창 살아야 하는 나이이기도 해서, 나도 청년 속에 들어가 같이 피 터지게 생존경쟁을 해야 한다. 나도 이 사실을 인정하기가 두려웠다. 청년들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게 팩트다. 그러니, 나를 청년에 속하게 두라. 아니, 예술가에 속하게 두라. 아니, 혜택에서 제외하지 말라.      

늙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았으나 이제는 두렵다. 예전에는 늙는다는 것을 외형적인 것, 물리적인 것인 줄 알았던 것이다. 경제력을 잃는다는 것을 포함시켜 생각하지 않았었다. 이제는 늙는다는 것은 경제력을 잃는다는 말 그 자체다. 만일, 죽음이 예상되는 질병이 찾아온다면 이게 웬 기회냐, 넙죽 감사히 받아들이겠다. 삶이란 끝나는 그날까지 예상치 못한 놀라운 일들로 인생을 풍요롭게 해 주겠지만, 겪지 않아도 되는 일이란 없다고 하겠지만, 그럼에도 이른 마지막 또한 놀라운 일 중의 하나이므로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두려움 때문이다. 허수경 님의 산문집에서 늙은 학생에 대한 글을 읽고 두려움에 책뚜껑을 덮어버렸다. 배우고 또 배우는 것이 그의 삶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오늘도 배울 것이 있다는 것만을 지키고 살아온 늙은 학생. 예전에 나도 그런 사람을 봤다. 오로지 배우기만 하는데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 배움을 앞세워 그 뒤에 숨어 사는 비겁함을 보았다. '단 한 번도 자기 외에는 남을 책임져보지 않은 그'를 보며 끔찍하게 두려웠다. 내가 그러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여전히 쓰고 쓰고 그리고 그리면서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 싶어서.  


우아하게 나이 듦 같은 거, 나도 하고 싶지만, 아무것도 내 것이 없어서 좋은 것 하나는 우아할 틈이 없다는 것이다. 노동자로 살고 싶다. 글 쓰는 노동자. 그림 그리는 노동자. 생각하는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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