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안의 질문을 나누던 그녀

환대

by 천둥


사랑했던 그녀로부터 연락이 왔다. 브런치에서 우연히 내 글을 봤다고 한다. ‘사랑했던’이라고 과거형을 쓴 것은 우리의 만남이 오래전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느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녀를 떠올리면, 그 감정은 여전히 사랑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감정이 내내 기억하지 않고도 사랑이라고 말해도 되는가 하는, 사랑에 대한 순정함 때문에 과거형을 쓰는 것뿐이다. 원래 사랑은 유효기간이 있다지만, 그래도 사랑한다는 말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에게 써야 할 것만 같다.

그녀를 떠올리면 맨 먼저 라일락 꽃 향기가 코끝을 맴돈다. 6월 어느 밤, 그녀와 실컷 수다를 떨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라일락 꽃잎이 온몸을 흔들며 소리 내는 걸 봤다. 마치 고흐의 <아몬드 꽃> 그림과 같은 풍광이었다. 늦은 밤이었는데 달빛이 밝아서 그랬는지, 기억의 왜곡인지 하늘은 밝은 옥빛을 띠고 있었다. 그날 그녀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밤의 달빛과 라일락 향, 서늘하면서도 포실포실한 밤공기의 느낌이 되살아나고 그녀와의 만남이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를 대신 말해준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말’이란 실상 별 것 없다. 연애할 때 나눈 ‘말’들을 나열해놓고 보면 아마 거기서 거기일 것이다. 다만 그날의 분위기, 말의 온도와 순도가 다르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있던 순간의 밀도를 사랑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것이 자신의 취향이 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따스한 밤바람을 맞을 때마다 그녀가 떠오르는 건 그녀라기보다 나의 만족감일 수도 있다. 이토록 서름하게 말해도 그녀는 온전히 이해하고 고개 끄덕일 것이다. 우리에게 그 정도의 믿음은 있다.

그녀는 항상 유쾌한 농담을 던지며 즐거운 에너지를 뿜어냈다. 그녀 곁에는 오랜 절친이 있었는데 개그 콤비처럼 쿵짝이 맞아서 주변 사람들은 언제나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나는 그들의 유머에 빵 터지곤 하는 관객 중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결혼 전에 연극을 했다고 한다. 할머니 역할로 조연상을 받은 적이 있다며 그녀의 남편이 자랑한 적이 있다. 그녀라면 정말 잘했을 텐데 왜 그만뒀을까 뒤늦게 안타깝기까지 했다. 연극을 본 적은 별로 없지만, 그녀가 노래 부르는 걸 본 적이 있다. 여럿이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으니까 아마 그녀도 가볍게 불렀으리라. 그런데 그녀의 노래는 잘한다 못한다의 기준으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이가 있었다. 노래라는 게 울림이 다르구나, 처음 실감했다. 어쩌면 그때 그녀에게 반했는지도 모르겠다. 노래를 못하는 내가 뒤로 빼자 다른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를 바꿔놓았고, 나중에 내게 노래 대신 시를 읊어보라고 권했다. 약간 떨리는 내 목소리를 너무 좋아한다고 해서 정말 그래볼까 생각한 적도 있다.


우리가 살던 마을에는 당시만 해도 마땅히 갈만한 카페가 없었다. 항상 누군가의 집에서 모이곤 했는데, 집이 주는 답답함에 살짝 질려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집을 카페처럼 꾸몄다. 가구배치며 인테리어까지 바꾸어서 모두에게 개방했다. 그래도 집이니 선뜻 가기 어려워 하는 우리에게 그녀는 종종 브런치를 대접하곤 했다. 하루는 자신의 옷장을 열더니, 잘 입지 않는 옷들과 가방 등을 꺼내 나누었다. 그 뒤 우리는 이집 저집 다니면서 먼지를 뒤집어쓴 장롱 속 보물을 캐는 재미를 즐겼다. 그날 그녀에게서 얻는 감색 원피스와 베이지색 가죽재킷은 한동안 교복처럼 잘 입었고, 후배에게 물려주기까지 했다.

주말이면 남편과 아이들까지 우르르 그녀의 집으로 몰려가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나나 남편도 그녀 못지않게 사람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해서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봤는데 그녀의 집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만족감이 흘렀다.

촛불을 켜고 담소를 나누던 밤도 있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밤에 모여든 우리는 사춘기 소녀들처럼 머리를 맞대고 까르르 웃다가 눈물을 찍어내어 서로를 당황시켰다. 이상하게 어둠은 끝도 없이 질문을 만들어냈고 일렁이는 초 앞에서 우리는 속절없이 깊어졌다.

그때 우리는 작은 마을을 경험한 듯하다. 마을의 원형과도 같은 그녀만의 환대가 녹아있었다. 그녀를 설명할 가장 적절한 단어는 ‘환대’였다.


작가 채사장은 자기 안의 질문을 쓰라고 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고 가족과 산책도 하고 맛있는 거 먹을 때 진짜 기뻐하고. 그런 건강한 사람들은 크게 질문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 안에 질문이 없는 건 더 좋은 거라고, 그 삶이 훨씬 나은 거 같다고. 그녀와 만날 때 나는 질문이 필요 없었다. 서로의 대화로 충분히 답을 얻었으니까. 그녀 덕분에 ‘건강한 사람’으로 살았던 것 같다.

글을 쓰게 된 지금은 글을 쓰는 충일감을 알게 되어 그녀가 곁에 있다 해도 글을 쓰겠지만, 그녀가 계속 있었다면 과연 글을 시작했을까 싶다. 서글서글한 눈으로 한순간도 웃기지 않으면 못살겠다는 듯이 던져대는 농담과 특유의 지성미에 내 영혼은 만족했을 것이다. 그녀의 농담은 지독하게 따듯해서 고독이 스밀 틈을 주지 않는다.

그녀와 내가 친해진 것은 그녀와 비밀을 공유하면서부터다. 우리는 급격히 가까워졌고 깊어졌다. 서로가 소중해지고 유일해졌다. 하지만 비밀은 개별적 존재가 가져야 할 적당한 거리를 놓치게 한다.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 비록 그것이 자의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존엄성에 타격을 입게 된다(페터 비에리의 <삶의 격>인용). 그래서 비밀을 나누는 사이는 깊어질 수는 있으나 좁아지기 십상이다. 다른 대화가 끼어들기 어렵다. 점점 좁은 대화가 우리를 불편하게 했고, 비밀은 우리를 그렇게 멀어지게 했다. 마침 그녀가 이사를 갔고, 자연스럽게 만나지 못했다.


꼭 한번 만나자고 했지만 기약없는 약속이었다. 그런 만남이 이루어지는 일은 거의 없으니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가 사는 지역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순간 그녀를 만나야겠다, 마음먹었다. 호기롭게 마음은 먹었으나 점점 망설여졌다. 그렇게 다시 만난 첫사랑, 옛 친구, 동창, 고향 친구 등등이 대부분 안 만나느니 못한 기억으로 끝나는 슬픈 이야기를 우리는 숱하게 아니까. 만난다, 안 만난다,를 매일 반복하다가 만난다 쪽이었던 어느 날, 톡을 보내버렸다. 모월 모일, 날을 비우시오,라고. 다른 어떤 설명도 없이. 오키, 답이 왔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이 인터뷰하러 갈 때보다 더 떨렸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그녀에게 달려가 와락 끌어안았다. 그녀는 호탕한 웃음으로 나를 마주 안았다. 그리고 그녀 특유의 환대가 시작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은근히 기대감을 전하고, 차와 쿠키를 세팅하면서 본격적으로 나 한 사람을 위한 시간이 되게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녀도 그녀의 남편도 소싯적에 문학소년소녀였으니 내가 어떻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게 된 건지 궁금해서 눈을 반짝이며 묻고 물었다. 맞다, 이랬지. 그녀는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열렸지. 오롯이 집중해주었지. 이야기를 가로채거나 쓸데없는 논평을 하거나 과한 호응 없이, 상대가 행여 주저할 때도 애정으로 북돋고 진심으로 궁금해하며 더 말할 수 있게 지지해주었지. 나는 신나게 떠들었다. 아무도 물어주지 않았던 것들을 물어봐주니 더 신이 났던 것 같다. 그래, 언니는 그런 사람이지, 그렇게 증명하는 사람이지, 긴 이야기 끝에 그녀는 내가 글을 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듯 호응했다. 가볍게 자신들의 현재를 덧붙여 혼자 떠들었다는 부끄러움이 남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그녀의 남편이 전시회 한번 하자고 추켜주는 말을 하자 남편은 부부사기단이라며 조심하라고 농담을 했다.


짧지만 충분한 상봉이었다. 가득찬 마음으로 다음을 또 기약했다. 우리는 가끔 만날 거다. 가끔이어야 더 분명해지는 사랑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