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나보다 8살이나 많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자식들이 환갑 선물로 가방을 줬다고 말할 때는 조금 놀랐다. 환갑이라니, 이 무슨 곰방대 물고 하품하는 소리냐 싶은 것이다. 나도 그날이 머지 않았다는 현실감각이 아직 없다. 언니라고 부르지만 마음은 친구 같아서 더 그럴 것이다. 마치 소꿉놀이하던 친구 같다. 소녀처럼 키득거린다. 할머니들이 마음만은 소녀라고 말할 때 속으로 피식 웃었던 것에 무한한 사죄의 마음을 보낸다. 그녀와 있으면 8살 소녀로 돌아간다. 우리가 덕친이어서 그럴 것이다.
국카스텐에게 심하게 덕통사고를 당해서 책(<요즘 덕후의 덕질로 철학하기>)까지 낸 나로서는 덕친이 누구보다 귀하다. 스무살 어린 덕친에게 의지를 하고 열 살 어린 덕친에게 덕주 영상을 구걸하고 열 살 많은 덕친을 귀여워한다. 어린 덕친과 키득거릴 때는 저 친구가 나를 얼마나 한심하게 볼까 가끔 현타가 오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와 키득거리다 보니 그런 쓸데없는 걱정일랑 얼른 내려놓았다. 그녀의 덕심은 전혀 한심하지 않다. 오히려 덕심 깊은 언니가 멋져 보인다.
더구나 언니는 점잖지 못하다거나 언니다운 풍모가 없지 않다. 넘치게 언니로서 리드하는 편이다. 오랜 종교생활을 해서 그런지 절제력 있으면서 따뜻하게 보듬을 줄 안다. 적당히 기대게 해 주고 적당히 배려 받는다. 오랜만에 관계 안에서 긴장하지 않고 편안하게 나를 드러내도 괜찮은 대상을 만난 기분이다.
내게는 친언니가 둘이나 있다. 그다지 서열에 눌리며 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유교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탓에 서열이 주는 따까리 문화와 응석받이의 잔재가 있었나 보다. 친언니든 선배 언니든 결코 편치만은 않았다. 요리조리 내 편할 대로 의지하기도 하지만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아직도 하늘같은 선배노릇을 하려는 이들을 만나면 몹시 거북했다. 물론 나도 동생들에게 그러겠지만. 엠마 언니에게서는 그런 서열의식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이 또한 덕친이어서 그럴 것이다.
언니와 나는 강원도 평창에서 만났다. 각자 사는 곳에서 꽤 먼 곳으로 덕주를 보러 달려온 터였다. 우연히 옆자리에 나란히 앉았는데 쉽게 사람을 사귀지 못하는 내가 먼저 연락처를 주었고 먼저 전화했다. 언니는 당연히 내가 사교성이 있는 줄 알았단다. 나도 그날 언니가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와서 몰랐는데, 내 앞에서와 달리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심하게 낯을 가리는 걸 보고 우리가 닮은꼴인 걸 알았다. 둘만의 공간으로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자유롭고 깨발랄해진다.
우리는 남들에게 쉽게 하기 힘든 남편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나눈다. 마치 대나무 숲처럼. 사는 곳도 다르고 인간관계 지형이 멀기 때문에 오히려 터놓고 얘기할 수 있다. 언니는 작은 소도시에 사는 불편함을 호소한다. 나도 좁은 관계 속에서 답답했던 적이 있어서 언니의 상황과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조금만 친해지면 남의 집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궁금해 하는 불필요한 호기심에 지칠 때가 많았다. 때로 왜곡된 소문들로 인류애를 잃게 만들고 익명 속의 자유를 갈구하게 했다. 그런 마음으로 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면 그 다음에는 내 봇물이 터진다. 전화를 했다 하면 한 시간씩 이야기가 이어진다. 지나친가 싶다가도 경계를 지킬 줄 아는 언니를 믿고 다시 달린다. 언니의 전화는 걸려오는 즉시 웃을 준비를 한다. 우리가 덕친이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특히 언니에게는 그런 마력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아무리 괴상하고 시시콜콜한 덕심을 표현해대도 언니는 고스란히 받아주며 쿵짝을 맞춘다.
맛있는 고기를 한 점 먹었다고 해보고요. 그걸로 만족이 돼요? 안되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입 더 먹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지. 오늘 고기를 먹어봤으니 다시는 안 먹어도 되나요? 아니죠. 아는 맛이 무섭다고 또 먹고 싶어지잖아요. 당연하죠? 오늘 멋진 콘서트를 봤다고, 왜 같은 공연을 또 보냐니, 그게 말이 돼요?
매일 이런 주접을 나눈다. 어제 한 이야기를 오늘 또 하고 내일 또 하고 모레 또 한다. 가장 많이 생각나고 가장 자주 통화하고 가장 많은 속내를 나눈다. 때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통화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조금 무안하다.
전화를 끊을 무렵이면 우리 만날까? 자주 묻는다. 차로 달려서 두 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지만, 실제로 행하기에는 너무 먼 거리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 되뇐다. 그만큼 간절하다. 전화로 해소되지 못하는 무언가를 항상 느낀다. 함께 공연을 보고 돌아올 때면 뜬금없이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거나 원죄 같은 넋두리를 떠들기도 한다. 내안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는지 나도 몰랐던,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마구 흘러나온다. 마치 글쓰기를 하는 것 같다. 내게 글쓰기는 막막한 고독의 시간 안에서 길어내는 내 안의 소리들인데, 그 소리가 하얀 백지가 아닌 누군가의 앞에서 이토록 편하고 또렷하게 흘러나오다니. 그래서 언니에게는 비밀이지만, 언니와의 대화를 자주 녹음한다. 다시 들으며 글로 쓰려고. 대부분 다시 듣지 않고도 글로 쓰게 되지만.
"언니, 어떻게 알았어? 나 언니랑 통화하고 싶었어."
친구들 만나러 서울에 갔다가 집으로 내려오는 기차에서 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호들갑스럽게 답한다. 아니, 호들갑이 아니라 진짜 그랬다.
"어디야? 밖이네."
"나 친구들 만나고 돌아오는 길. 근데 뭔가 답답하고 갑갑해서 빨리 언니랑 통화하고 싶었어."
"그랬어? 그랬구나. 좋은 시간 보냈겠네. 그런데도 통화하고 싶었구나. 그 마음 알지."
"알지? 언니. 속이 다 시원하네. 아직 아무런 말도 안 했는데 벌써 시원해."
충분히 괜찮은 시간을 보내고도 얼른 혼자가 되고 싶을 때가 있다. 친언니를 만나고 엄마를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음악을 귀에 때려 넣어야 비로소 마음이 안정되기도 한다. 덕주의 음악을 듣기도 하지만 가끔은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온전히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 그 가치가 빛나는 순간이다.
음... 글로 쓰고 보니 이 정도면 내가 문제가 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시절 인연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언제 언니와 멀어지고 또 다른 누군가와 현재를 나누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실컷 그녀와 현재를 나누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