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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학부모회>를 만들기 위하여

들어가며

by 천둥

꿈에, 이미 두 아이를 다 졸업시킨 내가 학부모로 한 해 더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못해본 일을 제대로 해볼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아서 기꺼이 하기로 했다.

제일 먼저 무엇을 할까 단계별로 하나하나 고민해보았다. 자면서도 일어나면 이걸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학부모회에 대한 안내문을 가지고 교무실을 돌아다니며 선생님들을 만나는 일부터 하겠다. 안내문에는 학부모회는 의견수렴기구입니다, 라는 내용을 가장 중점적으로 쓸 것이다. 의견수렴기구로서 학급 학부모회, 학년 학부모회가 정착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겠다. 그동안 학급 학부모회가 해왔던 교사를 돕거나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논의하는 일이 아니라 교육의 본질을 위해 서로를 지지하고 신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할 것이다.

선생님들은 학부모가 모임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것 또한 편견임을, 모니터링이라는 이름으로 감시하려는 게 아니라 학교의 교육활동을 정확히 알고 서로 이해하는 것이 학부모회 활동의 기본 취지임을, 그러니 교사들에게 도움이 될 것임을 잘 전달할 것이다.

꿈속에서지만 그래도 내가 학부모회장이 다시 되고자 하는 것은, 관례적으로 해오던 대표 자격으로 자리에 나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체 학부모들이 자신을 대신하는 대표가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을 말할 것이다. 그래서 학부모회가 전체 학부모를 아우르는 곳이며 학부모라면 누구라도 무슨 일이 생겼을 때 학교에 전화하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회를 찾고 학부모회가 자기 조직이라고 느끼게 하고 싶다는 마음을 전할 것이다. 그러면 오히려 학교 민원도 줄어들 것이다.

특히 학부모회 담당 선생님과 교장, 교감선생님을 자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그건 나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그럴수록 자주 만나 '새로운 학부모회'가 사실 새로울 것 같이 당연한 것을 하는 학부모회였구나 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싶다.


두 번째로, 나와 함께 학부모회를 이끌어갈 분들을 모으기 위해 밴드나 홈피, 오픈 채팅방, 알리미, 가정통신문 등등으로 소문을 내는 일을 할 것이다.

가급적이면 학교에 학부모회실을 열어두고 언제든지 누구라도 오실 수 있도록 하고, 학교 홈피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새로운 학부모회>에 대한 설명을 공지할 것이다.

여기저기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일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마치 선거에 나선 사람처럼 주변 사람들을 통해 다양한 학부모들을 만나야 한다. 안내문을 명함처럼 들고 다니며 학부모들이 자주 가는 카페나 식당, 마켓 등을 돌아다닐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면, 처음이라서 그렇다. 그동안 새로운 학부모회가 잘 되어왔다면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이미 체계가 잡혀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학년초에 나오는 총회 안내문에 학부모회장 후보 등록을 하라고 해서 한두 명이 등록하고 그 외에는 총회날 오신 분들이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억지로 하나씩 맡는다. 그러니 이름만 달아놓거나 잘하겠다는 의지가 생기기가 어렵다. 그렇지 않으면 작년에 했던 이들이 '끼리끼리' 한다. 이게 결국 패거리 문화를 만들어 학부모회=그들의 모임, 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진다.

학부모회는 전체 학부모를 회원으로 한다,라고 말하면 그걸 누가 모르냐고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들만의 리그, 그들끼리의 모임이라고 인식되고 있다.


세 번째, 함께 학부모회를 이끌어갈 사람들끼리 지속적인 만남을 갖는다. 우리가 이루려는 '새로운 학부모회'가 무엇인지, 우리 학교의 교육목표는 무엇이고 우리들이 원하는 교육적 지향은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함께 할 사람들에게 선명한 공동의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 좋다. 그러려면 충분히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목표는, 새로운 학부모회가 정착되는 것, 누구나 학부모회 회원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 무조건 의견을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은 묻고 다 같이 공감해가는 것 등이다.)


네 번째, 우리는 학부모들이 원하는 활동, 예를 들어, 수업 참여, 동아리, 독서 지원, 녹색 어머니회 등을 '지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학부모들이 하려는 활동에서 주의할 사항, 그러니까 지침을 만들어 공공의 목적을 잃지 않도록 돕는다. (예를 들면, 학부모 활동으로 만나는 교사와는 아이 이름이 아니라 학부모 자신의 이름으로 만나며, 자기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등을 적는다.)


다섯 번째, 각종 소위원회에서 활동할 이들을 모아 소위원 교육과 활동을 논의한다.

교육과정위원회의 역할이 가장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 교육과정위원 교사들을 만나 학교의 교육 방향을 배우고 교육과정 재구성을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 그래야 학부모들의 질문과 제안 등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

교육과정위원회의 결과물이 나오면 바로 모든 학부모회 임원들과 공유하고 이를 우리 학부모회 목표로 어떻게 녹여낼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여러 의견들 중에서 가능한 활동을 몇가지로 추리는 숙의 토론을 하고 활동지침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단계별(5년 정도의) 실천계획을 세워보는 것도 좋겠다. 교육과정위원은 내 아이의 학령기뿐 아니라, 교육자체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높은 사람이 하는 게 좋다. 내가 교육과정위원이 되어서 학생들도 교육과정 위원회에 참여하도록 설득하겠다. 학생들 스스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심도 있게 고민할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다.


여섯 번째, 학급 학부모회, 학년 학부모회, 각 동아리 등에서 논의할 주제와 신뢰와 지지를 위한 진행방법을 서로 익힌다. 새로운 학부모회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선 활동보다 서로 신뢰를 쌓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회의라고 하면 뭔가를 논의하고 결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목적인 회의가 어색할 수 있다. 하지만 삶의 맥락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한다는 것은 신뢰의 첫 단추를 채우는 일이다. 만일 누군가가 급식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때, 급식 문제가 그 사람에게 왜 중요한 일인지를 서로 알고 있을 때 문제 해결이 더 쉬워진다.

학교는 그동안 개별적인 것을 이해하기보다 평균적인 것에 무조건 맞춰져 왔다. 학부모회는 이 개별적 문제를 드러내고 공공의 힘으로 개별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힘을 보태는 조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서로를 알아야 하고 공동의 목표를 만들어야 하며 학부모들은 공공의 힘을 경험해야 한다.

학교는 생각보다 작은 조직이어서 작은 성공의 경험이 큰 효과를 가져온다. 작은 성공의 경험이 쌓여갈수돌 학부모회라는 대표성이 굳건해진다.


길게 썼지만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무엇보다 첫 번째 선생님들을 만나는 일과 함께 할 사람들을 구하는 일에 집중하는 게 좋다. 학교가 변화하길 바라는 학부모라면 자신으로부터 그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음을 믿었으면 좋겠다. 3월에 총회가 열리지만 가능하면 2월부터 준비하자. (글 쓴 시기는 2월이었는데, 발행 시기에는 이미 3월이 되었고 더구나 지금은 대면으로 총회가 열리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가급적 투표 없이 진행하기 위해 학교에서 힘쓸 것 같다.)





학부모 총회를 열기 전에 총회를 준비하는 준비위원(일반적으로 학교에서 준비하지만, 새로운 학부모회를 준비하기 위하여 모인 이들이 있다면, 아직 공식적인 직함을 갖지 못했을지라도 그들을 준비위원이라고 부르겠다)들은 학부모들에게 학부모회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 그 역할을 설명할 기회를 마련하면 좋겠다. 아래는 예시로 안내문을 소개한다.


<학부모회 안내문>(예시)


학부모회란?

학부모회가 육성회, 자모회 등을 거치면서 소수의 학부모들이 학교 행사를 도와주고 협찬하는 역할을 주로 하면서 학부모회에 대해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았습니다.

학부모회는 전체 학부모를 회원으로 하는 학부모 대표기구로, 학부모들이 교육공동체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학부모 의견수렴기구’입니다.


◎ 학부모회 운영내용

▷ 학부모회는 우리 학교의 비전을 전체 학부모들과 공유하고 이에 따른 학부모 활동이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 학부모회는 ‘소수’가 참여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전체 학부모들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학급, 학년 학부모회를 활성화하고자 합니다.

▷ 각 학급, 학년 학부모회, 그리고 학부모 동아리 등을 통해 학부모가 원하는 활동을 제안하실 수 있습니다. 단순한 학교 행사 지원이 아닌, 학교의 한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습니다.

▷ 그동안 일과시간에 진행되어 오던 학부모 회의를 가급적 저녁시간에 하여 모든 학부모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나누려 합니다.

▷ 학부모 의견을 학교운영위원회와 학교에 전달하여 전체 학부모를 대변하겠습니다.

▷ 학부모 상주실에 회의록을 비치하고, 학교 홈페이지나 SNS, 가정통신문 등을 적극 활용하여 학부모회가 하는 모든 일에 누구나 참여하고 알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합니다.

▷ 학교에 대한 의견이 있을 시 언제든지 학부모회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 학부모회 활동방향

▷ 학부모 소통 (자치문화 활성화)

- 학급 학부모회 활성화

- 학부모 동아리 활성화 지원 및 네트워크

▷ 학부모 교육

- 학교교육목표 공유를 위한 학부모 연수

- 자녀교육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과 정보 제공

- 신입생 학부모 및 각 학부모 대표를 위한 교육

- 학부모의 자발적 교육주체력 향상

▷ 학부모 나눔 문화

- 학생-학부모, 학부모-학부모 마음 나눔

- 공동체성 구축을 위한 활동

- 지역과의 연계 및 협조


◎ 올해 우리 학교 학부모회의 다짐

- 우리 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정보를 학부모들에게 전달하고, 학부모 교육 주체화를 통한 학교 자치력 향상과 전체 학부모들이 참여할 수 있는 학부모회 문화가 정착되도록 힘써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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