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하기 딱 좋은 나이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으로 보는 덕후 생활 고찰

by 천둥


본 브런치북은 <요즘 덕후의 덕질로 철학하기>(초록비책공방)로 정식출간되었답니다. 브런치북보다 더 다양하고 재미난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으니 많은 애독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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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이 권장되는 시대다. 덕후들의 자기 고백도 넘쳐난다. 이미 많은 덕후들의 개인적 경험과 이야기를 들었을 테니, 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한 권의 철학서를 중심으로 덕질이 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것이다. 스위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페터 비에리의 교양수업은 인간의 보편적 의지와 그 방법에 대한 강의를 엮은 책이다. 인간으로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하는 것이 바로 교양인데, 삶의 방향성, 깨어있음, 자아 인식, 상상력, 자기 결정, 내적 자유, 도덕적 감수성, 예술, 행복, 이 모두를 갖춘 사람을 교양인이라고 부른다. 교양은 교육과 달리 자신을 위해 혼자 힘으로 쌓는 것*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런 점에서 덕후와 결을 같이 한다고 보았다.

덕후의 입장에서 쓰는 덕질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니만큼 긍정적인 면을 집중적으로 부각하여 쓸 예정이다.


페터 비에리의 교양수업




교양은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내 안에 있는 호기심을 죽인다는 것은 교양을 쌓을 기회를 강탈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호기심은 이 세계에 과연 어떤 수많은 것들이 존재하는지를 알고자 하는 끊임없는 갈망입니다. <페터 비에리의 교양수업> 10p


나는 50대 덕후다.

이 말이 너무 하고 싶었다. 덕통 사고를 당한 것은 49살이었는데 빨리 한 살 더 먹어 50대 덕후가 되고 싶었다. 왜냐면, 50대는 되어야 덕질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나는 덕질에 대해 몹시 사회적 편견이 심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입덕 부정기가 아주 길었다. 내가 덕질이라니, 이 나이에... 그때는 덕질이라는 표현도 몰랐다. 덕질 영상에 코를 박고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그만두기에는 너무 짜릿한 즐거움이 거기에는 있었다.

50대라면 아이들도 다 키워놓고 좀 여유 있는, 주어진 사회적 책무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으니 덕질을 좀 해도 세상의 눈이 관대할 것 같았나 보다.(길게 말했지만 그냥 내 편견이다.)


마침 큰 아이는 대학을 가고 작은 아이는 공부에 뜻이 없어 전문계 고등학교에 가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으니 두 아이 다 독립을 한 셈이다. 남편은 지방에서 근무를 한 지 3년 차, 우리는 주말부부였다. 주말부부라고 하면 전생에 나라를 구했네, 3대가 덕을 쌓아야 하네, 어쩌네 하지만 남편은 원래 내 생활에 별로 간섭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덕질을 하는 와이프에 대해서 어떤 마음일지 잘 모르겠어서 조금 신경 쓰이기는 했다.


20대의 젊음이 내게는 좀 벅찬 에너지였다. 30대가 되면서 조금씩 생활의 안정을 찾았고 40대에는 심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내 자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50대가 되어가면서 세상만사가 시들해졌다. 이미 인생의 여정을 다 겪고 삶의 비밀까지 다 알아버린 노인처럼 모든 것에 흥미를 잃었다. 이제 세상 구경은 끝났고 경험한 그것들을 다시 반복해야 하는 게 인생이라고 섣불리 판단했다. 꽤 만족도 높은 삶이라고 자부하고 있었음에도, 남은 삶이 거추장스러웠다. 그때 덕통 사고를 당한 것이다. 덕주가 내 뒤통수를 치면서 내가 네 덕주니라, 라고 말한 거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공감 백배다!!


만일 내가 20대에 덕통 사고를 당했다면 지금의 삶과는 많이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덕업 일치(덕질을 하던 분야를 자기 직업으로 삼는 것)를 하고야 말았을 테니까. 만일 30대나 40대에 덕통 사고를 당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애들이고 가정이고 내팽개치고 덕질을 했을 것이다. 덕후라는 말을 알게 된 후, 입덕은 부정했음에도, 내 정체성이 덕후라는 것을 빠르게 받아들인 편이다.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내 성정이 그러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까. 어릴 때 엄마가 늘 걱정하던 것이 있었는데, 하나에 꽂히면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친구도 한 명만 사귀고 사랑도 뭐.... 그랬다.

덕후의 기질이 다분한 내가 그동안 덕질을 하지 않았던 것은 연예인에 대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좋은 드라마를 보고 나면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고 빠져들고 가끔은 감상평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이랬으면 더 좋았을 텐데, 라든가 사회적 의미가 어땠다든가 하는 비평을 하는 편이었다. 배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개인적 관심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드라마나 책, 음악 이런 것들을 끊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살았다. 이웃 아줌마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우리의 불만이 대체로 드라마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현실에 발을 딛지 않고 사는 것, 내 삶의 기반을 흔들어놓는 모든 것들을 외면했다. 철벽을 치고 산 셈이다.


음악은, 시끄러웠다.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보대끼는데 뭐하러 음악까지 찾아 듣나 싶었다. 조용한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것은 나를 유약하게 만들었다. 그런 유해한 것들을 차단하고 단단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이 제정신이 아닌 세상에서 버틸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니 가수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다른 일을 하면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러웠다. 나는 그것이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걸으면서 음악을 듣는다고? 내 안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에 왜 굳이? 집안일하면서 음악? 설거지할 때는 물소리가, 청소할 때는 청소기 소리가 시끄러운데 거기에 음악까지 보태다니. 그나마 운전할 때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급박한 순간에는 음악부터 꺼버렸다.


지금도 나는 음악이 듣고 싶으면 음악만 듣는다. 그래야 음악이 내게 걸어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자박자박 발자국 소리를 내다가 따닥따그닥 탭댄스를 추다가 추르르 비 오는 빗길을 걷다가 아이처럼 달려와 내 목을 끌어안는, 모든 순간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이제는 록음악이 주는 통쾌한 맛을 안다. 아니, 음악이 시끄럽다던 내가 가장 시끄러운 부류의 록음악을 가장 즐겨 듣는다. 오장육부를 다 꺼내 시원하게 한바탕 청소해주는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을 유약하게 한다고 꺼리던 내가 가장 감정을 고조시키는 음악을 듣게 된 것이다. 정말 인생에는 총량의 법칙이 있나 보다.


무엇보다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호기심만으로도 벅찼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교육과 학교, 지역사회에 대해 알아야 하고 알아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나름 열심히 활동하며 사느라 바빴고 그런 일들이 나름 만족스러웠었다.


덕통 사고는 내 삶의 궤도를 완전히 벗어나게 해 주었다. 여전히 좁은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자만의 끈을 부여잡고 있지만, 삶은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며 내가 경험한 것이 결코 전부가 아님을 체험하게 해주었다. 덕질의 세계는, 예상치 못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곳이었다.


덕질. 덕후라는 말만큼이나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던 말이다. '-질'이라는 어미가 '장난질'처럼 기묘한 재주나 눈속임을 뜻하는 단어에 자주 쓰였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질'은 본질, 품질이라는 낱말에서 알 수 있듯이 본바탕, 자질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못질' '자맥질'처럼 기술이나 기능을 표현할때 쓰이기도 한다. 내 본바탕에는 기술이나 기능이 자리 잡을 만한 구석이라고는 없는데, 한 가지를 파는 일이라는 의미로 덕질이라는 말이 쓰이면서 내게도 드디어 '-질'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자기 삶의 방식을 가볍게 여기라거나 확신을 가지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남들의 방식보다 우월하다고 여기거나, 특정한 한 존재 방식이 다른 모든 이들보다 올바르다고 여기는 단순하고 거만한 사고를 차단하자는 것입니다. 19p


나이 지긋한 팬이 되고 싶었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에 주책을 부리는 게 아니라, 귀여운 할머니 같은 이미지를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연장에 가보면 누가 봐도 할머니인 분들이 있었다. 그들은 주책이라고 느껴지지 않고 존재 자체가 존경스러웠다. 그런데 내 나이는 아무래도 주책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사실 귀여운 할머니가 되기에는 50대도 많이 젊다. 하지만 40대를 벗어나는 것만 해도 어디냐. 그렇게 한 살을 서둘러 맞이했고 남들이 보기에 봐줄 만할 거라고, 사실은 스스로 받아들인 거지만, 어쨌든 좀 덜 부끄러워졌다.

무엇보다 나이 지긋한 덕후가 된다는 것은 덕주에게 온전히 마음을 주는 유익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무릇 팬은 모두 유익하건만, 젊은 팬들은 뭔가를 시끄럽게 요구하고 말 많은 존재라고 함부로 재단했었다. 지나고 보니 팬이란, 나이와 상관없이 지극히 자기애적인 사랑을 하는 존재였다. (덕후라는 표현과 팬이라는 표현을 섞어서 쓸 예정이다. 뭐라고 딱히 짚어 말하기 어렵지만 뭔가 덕후 입장을 표현할 때는 덕후가 맞고 덕주 입장에서 표현할 때는 팬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나이를 핑계 삼아 내 안에 단단하게 박힌 덕질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는 시간을 벌고자 했다. 편견은 우월하다는 거만함에서 오는 것이다. 덕질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우월감은 생각보다 뿌리깊었고 그것을 걷어치우느라 애를 먹었다.

덕질하는 모든 이들이 나처럼 각자의 이유로 덕질하기 딱 좋은 나이로 살고 있을 것이다. 젊은 사람은 젊어서, 늙은 사람은 늙어서 좋다며 자신의 덕질을 그렇게 정당화했으면 좋겠다.


덕질을 하려니 남편의 월급에서 그동안 안 쓰던 내 문화비를 덜어내는 것이 눈치가 보였다. 내 수입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아쉬울 줄이야. 그동안 자원봉사만 하며 살았던 것이 조금 후회되기도 했다. 하지만 자기 수입이 있다고 해도 누구나 경제적으로 여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나이 든 우리가 우세한 것이 있다면 아이들 때문에 집에 묶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완경으로 생리 걱정 없이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시간을 충분히 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덕질은 시간과 건강이다. 덕주의 스케줄에 내 스케줄을 완벽하게 맞출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건강해야 한다. 사실은 벌써 무릎도 아프고 긴 시간 허리도 아프다. 귀찮다고 미루기만 하던 운동을 이제는 꼬박꼬박 챙긴다. 이러니 덕질이 얼마나 고맙고 은혜로운가.


진정한 교양인은 필요하다면 돈키호테 같은 행동도 주저하지 않으며 우스운 사람이라고 손가락질받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양은 모든 것을 아우르기 때문입니다. 42p


발도로프에서는 인간의 발달단계를 7년 주기로 본다. 7년이 7번 지난 49세가 되면 다시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제2의 인생을 준비하라고 한다. 내가 49세에 덕질을 하게 된 것은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자유로운 시선을 가지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살면서 느낀 열패감과 무력감을 잠시 내려놓고 마냥 웃어보라는 위로 말이다. 우리는 천진하게 웃는다. 덕주의 사진 한 장으로도, 트윗 한 줄에도, 짧은 기사 하나에도 눈을 반짝인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웃어봤던가.


그렇게 나는 50대, 덕질하기 딱 좋은 나이가 되었고 주저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덕질을 하기로 했다.





*인터넷 교보문고 <페터 비에리의 교양수업> 책 소개에서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