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속 또 다른 나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으로 보는 덕후 생활 고찰

by 천둥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위해서는 자아상을 만들었다가 다시 버리고 고치는 일을 계속해나가야 한다는 뜻입니다...(중략)... 한번 만들어진 모습에 집착하지 않고 새롭게 자신을 점검하고 평가하는 쉼 없는 작업을 허용하며, 그 과정 중에 생길 수 있는 불안함을 받아들이고, 숙명적인 것은 없다는 의식을 항상 염두에 둡니다. 이를 통해 그는 그야말로 진정한 주체로 거듭나게 됩니다.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 34p


내 SNS 계정은 총 7개다.

SNS를 처음 시작할 때 많은 이들이 절대 조심하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잘못하면 '신상 털린다'며 무서운 곳이라고 어찌나 겁을 주는지, 1년도 넘게 구독러(쓰지는 않고 피드를 읽기만 하는 사람)로 살았다. 하지만 SNS도 사람이 사는 곳이어서 무섭기보다 따뜻한 이들이 훨씬 많았다. 이렇게 능숙해지기까지 많이 불안했지만 결과적으로 아주 만족스럽다. 이제는 젊은 아이들과 이야기해도 전혀 이야기 흐름을 놓치지 않을 만큼 SNS 용어와 덕질 용어, 그리고 요즘 인싸들의 줄임말들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그게 무슨 자랑거리라도 되냐고 하겠지만, 그동안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인터넷 쇼핑조차 못했던 불편함이 해소되었으니, 이것은 내게 결코 적지 않은 발전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만날 일이 없었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SNS는 확증편향을 강화시키는 부작용이 있다. 특히 정치적인 부분이 그러하다. 알고리즘에 따라 취향이 같은 사람들끼리만 연결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적다. 어느 순간 온 세상이 나와 같다고 생각하게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덕질을 하다 보면 평소 내가 만나던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아니,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 싶은 일들이 비일비재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내가 그동안 보려고 애쓰지 않아서 몰랐을 뿐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다름에 대한 내 인식의 틀을 넓혀주어서 너무 고맙다. 게다가 이미 우리는 덕친이라는 깊은 유대감이 있다. 그 유대감이 상대를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었다. 펄쩍 뛸 만큼 다른 사회 정치적 의견을 존중하게 된다는 것은 엄청나게 훌륭한 민주시민의 자세 중 하나다. 그 어려운 걸 해낸다. 우리는 덕친이니까.


교양이란 사람이 자신에게 행하는, 그리고 자신을 위해 행하는 어떤 것을 말합니다. 교양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교육은 타인이 나에게 해줄 수 있지만 교양은 오직 혼자 힘으로 쌓을 수밖에 없습니다. 9p


처음에는 티켓팅조차 제대로 못했다. 자식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그렇게 애걸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자식들이 도와준다고 해도 포도알이 순삭(티켓이 순식간에 매진되는 것)되면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나는 끝낼 수 없었다. 어떻게든 티켓을 구하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 세상에 내편은 없다는 외로움에 빠졌다가도, 절박한 것은 나였기 때문에 취켓팅(취소된 티켓을 다시 티켓팅 하는 것)에 도전하고, 예매대기까지 기어이 해냈다. 어플을 깔고 회원가입을 하고 카드를 등록해놓고 카카오페이도 가입하고 티켓팅 시간에 맞춰 피시방에 가고 더 빠른 랜선을 알아보고... 그렇게 스마트한(?) 세상에 진입했다.


그다음으로 한 것은 팬 커뮤니티에도 가입한 것이다. 내가 잘 모르는 과거의 덕주를 짜르르하게 알려주는 사람들, 내가 못 보고 놓친 부분을 더 자세히, 더 확대해서, 더 천천히 보여주는 사람들이 거기에는 있었다. 덕주의 일정과 사진, 다양한 공지를 전해주니까 편하기도 했고, 누구보다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팬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안도감으로 친밀감이 더 깊어졌다. 덕분에 내가 덕주를 덕질하는지 커뮤니티를 덕질하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커뮤니티에 빠져서 살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나도 덕주 소식을 직접 실시간으로 듣고 만나고 싶어졌다. 팬덤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 덕주는 팬클럽이 따로 없고, SNS를 통해 일정을 공지하고 팬들과 소통한다. 결국 나도 SNS를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긴 구독러의 생활 끝에 줄임말과 덕질 용어를 완벽 흡수했다.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는 삐그덕거린다. 덕주가 인스타 라이브를 처음 하던 날, 하필 그때 화장실에 앉아있었는데, 이걸 켜도 되는지, 상대방이 나를 보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되어 안절부절못했었다. 우리 덕주도 SNS에 익숙지 않은 사람인데 인스타 라이브까지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내가 버벅거린 게 뭐 대수랴 하는 마음이다. 그렇게 SNS 3년 차, 이제는 그까짓 것, 어려울 것도, 걱정할 것도 없게 되었다.


덕질로만 쓰던 SNS를 이제는 내 생활로 가져오게 되었다. 무엇을 해도 SNS 홍보가 우선하는 시대이니, SNS 능력이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무엇보다, SNS를 통해 많은 응원과 지지를 받고 있다. 뒤에도 이야기하겠지만, 덕질뿐 아니라 요즘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을 아낌없이 응원해주고 있는 이들은 랜선 너머의 사람들이다. 그들의 소리 없는 좋아요, 가 게으른 나를 일으켜 세우고 하루하루 계획한 것을 이어가게 한다. 좋아요, 와 팔로수에 연연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내가 한 약속을 지켜가도록 도와준다. 정말 좋은 것은, 칭찬보다 비판에 익숙한 내가 좋아요, 밖에 없는 SNS 덕분에 나도 좋아요,를 남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 가 아니라, 좋으니까 좋은 거라며.


문학적 이야기가 가진 정신은 의구심의 정신이며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정신입니다. 모름에 대한 인정은 이야기의 화자조차도 인물의 깊이를 완전히 알지 못한다는 느낌을 나타낼 정도로 등장인물이 가진 깊이에 대한 존중을 동반합니다. 이런 존중심을 가지고 등장인물들을 전개시키는 사람은 독자가 자신의 상상력을 등장인물들 안에 쏟아부을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을 열어놓습니다. 73p


사실 내 계정은 이중 계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중 계정을 쓰는데, 특정한 주제만 올라오는 피드에 주제를 벗어난 다른 글을 올리기에 적절치 않아서인 경우가 많다. 덕후인 직장인들은 일코(일반인 코스프레, 주위 시선 때문에 덕질하는 것을 숨기는 것)를 위해 이중 계정을 쓰기도 한다.

나는 철저히 나를 숨기고 싶어서 이중 계정을 썼다. 내려놓자고 하면서도 여전히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내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중 계정도 자아상을 만들었다가 버리고 다시 고치는 일, 집착하지 않고 새롭게 만들어가면서 진정한 주체가 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나를 조금씩 분할하는 것, 그래서 분할된 자아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버리고 다시 일체화하는 것이다. 분할된 또 다른 내 모습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고 조금씩 안도감을 갖게 되는 것, 이것은 내게 '존중감'으로 받아들여진다. 나 스스로 단단해져야 하는 것이 옳지만 내가 가진 에너지가 적을 때는 이렇게 다른 이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되기도 하는 거니까. 사실 나의 깊이를 내가 알 수 없을 때가 많으니까, 그저 나를 열어놓는 것만이라도 계속하기로 한다.

내면의 갈등과 모순, 충동과 불안 이런 것들보다 외부의 존중과 배려, 예의와 다양성 같은 영역의 세계가 확장되어가는 느낌이다. SNS, 세상은 생각보다 살만하다고, 안심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주었다. 영화 ET 속 손가락처럼.

서서히 이중 계정을 해체하고 분할된 자아를 통일시켜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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