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아상에 대해 고민하고 비판적 민감성을 줄곧 견지하며 자신을 고정시키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다양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며,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정체성과 자신이 하나의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짓말을 꾸짖는 불안정한 내적 다면성의 차이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아상이 가지는 미완성과 부실함을 여유 있는 자세로 받아들일 줄 알며 그것을 자유로움의 한 모습으로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 31p
덕질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젊은 친구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덕친은 미혼의 30대였다. 방송국에서 하는 공연의 방청권을 못 구해서 속상했는데 마침 커뮤니티에서 같이 갈 사람을 구하는 글이 올라왔다. 얼른 신청했다. 보통 방청권은 두장씩 나오기 때문에 당첨이 되면 못 구한 덕친들과 나누곤 하는데 내게도 그런 기회가 생긴 것이다.
조심스럽게 내 나이부터 알렸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날 공연은 멀리 떨어져 앉아 봐야 했지만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끈끈하게 이어졌다, 긴 카톡질을 통해. 우리에게 카톡이 없었다면 어떻게 덕질을 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다음 공연은 내가 티켓을 구했고 그녀와 함께 갔다. 음, 어색했다. 카톡에선 십년지기, 실제론 아직 초면 같은 사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덕주 이야기를 봇물 터지듯 쏟아내면서 우리는 곧 붕우유신, 혈의 맹세라도 한 듯 친해졌다.
첫 덕친은 또 다른 덕친을 만나게 해 주었다. 이번에는 40대. 세 사람이 딱 10년씩 차이가 나는 셈이다. 그중 내가 가장 철이 없었는데, 뒤에도 말하겠지만, 덕친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철없는 덕질을 하는 건 불문율이 아닌가 싶다. 꺄~~ 하고 뒤로 넘어가는 역할을 담당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나이가 많다는 게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다. 여전히 주책이라는 생각이 앞섰던 것 같다. 하지만 두 사람이 전혀 불편함 없이 대해주니까 나도 모르던 내가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평소 가까운 지인들과도 팔짱을 낀다거나 스킨십을 하지 않는 내가 그들을 만나면 돌고래 소리를 내면서 뛰어가 얼싸안고 뛰었다. 그들은 내가 원했던 귀여운 할머니 역에 적절히 자리매김시켜주었다.
문득문득 그들에게 감사하며, 감사란 말을 이렇게 쉽게, 자주 하게 된다는 것에 또 감사했다. 그리고 신기했다. 덕친이 아니라면 이렇게 얼굴 맞댈 일이 없을 세대차를 가뿐히 넘을 수 있다는 것이. 온라인으로 만나 오프라인으로 관계가 발전된다는 것도. 우리는 같이 원주, 천안, 대전 등지를 다니며 공연을 즐긴다. 인생에 절친은 없어도 덕친은 꼭 있어야 한다는 절대 진리를 깨달으면서!
어느 날, 이사를 하게 되었다. 경기도 근교에서 대전으로 가는 것이라 생활기반이 완전히 바뀌는 것이었다. 당연히 덕질이 가장 걱정되었다. 공연은 주로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니 지방러(지방에 사는 사람)가 된다는 것은 덕질이 그만큼 고달파진다는 것이다. 그때 지방 덕친들을 만나게 되었다. 전국에 퍼져있는 덕친들의 단체 톡방에 초대되었다. 거기에는 대전 덕친도 있어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대전에 덕친이 제일 먼저 생긴 것이다.
지방 덕친은 40대부터 60대 중반까지 있다. 제일 큰 언니가 65세, 제일 어린 친구가 42세이다. 그중 65세 언니가 가장 철없는 덕후다. 덕후라면 덕주를 물고 빠는 건 당연한 거지만 큰언니는 심하게 물고 빤다. 이뻐서 어쩔 줄 모른다. 제일 많이 보고 싶어 한다. 제일 무대책으로 달려온다. 가족들과 주변인들에게는 아직 비밀인데 그 언니는 완벽하게 일코(일반인 코스프레, 덕후인 줄 모르게 행동하는 것)를 해내면서 우리들 앞에서는 그렇게 또 다른 자아를 드러내는 것이다.
둘째 언니는 60세인데, 내 글의 첫 독자이자 내 그림의 첫 관객이다. 나를 내보이면서 자기 검열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페터 비에리가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으로 쓴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이런 말이 나온다. '저는 누군가가 저를 완전히 이해하는 걸 원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의 눈이 멀어야 저는 안전하고 자유로우니까요.' 언니는 한쪽 눈을 감고 내게서 세 발짝 떨어져 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불안정한 내적 다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유롭게 삶 속에서 녹여내고 있다. 지나치게 들여다보고 갈등하지 않고, 그것이 주는 에너지를 적절히 활용한다. 덕주에 대한 애정이 지극하지만 관심을 덕주 한 사람으로만 고정시키지 않는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여전히 나 스스로 정체성을 안다는 거짓에 속아 넘어가는 나와는 너무도 달라서, 그들을 쫓아가려는 발걸음으로 바쁘고, 그런 그들의 덕친이어서 기쁘다.
이제 서울에 공연을 갈 때면 지방 덕친들과 함께 1박을 한다. 그동안의 덕질과는 차원이 달라진 것이다. 이사가 오히려 덕질을 풍요롭게 만들어주었다. 전국 어디를 가든 덕친이 있다. 덕질을 위한 만남이 아니라 만남이 우선되는 덕질이 되었다.
다행히 대전은 교통의 중심지라서 지방 공연에 쉽게 갈 수 있다. 사실 교통비나 시간을 생각하면 서울 공연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왠지 덕주가 내가 사는 가까이 내려와 준다는 생각에 안 갈 수가 없다. 그렇게 달려가면 지방 덕친 중 몇 명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끌어안고 팔짝팔짝 뛰며 공연을 즐긴다.
또 한 명의 소중한 덕친이 있다. 대전으로 이사 오기 전에 같은 동네 살던 친구다. 원래 알고 지내던 사이인데 같은 덕주를 모시게 되었다는 사실을 카톡 프로필을 보고 알게 되었다. 우리 동네에 같은 티켓을 산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을 티켓 배송업자에게서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게 바로 내 친구였다니. 우리 두 사람의 남편은 조금 닮았다. 젊었을 때 사진을 보면 더욱 그렇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게다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덕주와도 닮았다... 다른 덕후들이 들으면 돌팔매를 맞을 일이니, 함구하자.
친구는 공연을 가기 위해 산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로지 스탠딩을 하기 위한 발버둥이다. 아나키스트의 자유에 대한 의지와 같은 것이다.
공연 가는 날, 우리 집보다 조금 더 안쪽에 살고 있는 그 친구가 우리 집 앞으로 온다. 문이 열리는 순간 목소리가 두 옥타브쯤 올라가고 우리는 뻔히 다 아는 덕주 소식에 열을 올린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은 찬양의 시간이다. 공연장에서 집이 멀다는 게 이럴 때는 좋다. 이사를 하면서 그런 시간은 다시없게 되었지만, 덕친이니까 또 다른 방식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겠지.
교양을 갖추어나가는 과정은 자신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확장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자기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평가하는 것, 그중 일부분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나머지와 거리를 두는 것도 역시 중요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특별한 내면적 중력을 가진 정신적 정체성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32p
솔플(공연을 혼자 즐기는 것)로도 행복했던 내가 굳이 덕친을 만나고 싶었던 것은 과연 그들도 나와 같은지 궁금해서였다. 내가 느낀 지점을 그들도 느낄지,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그들도 좋아하는지, 그들도 자신의 덕질을 기꺼이 받아들이는지 모든 것이 알고 싶었다. 막상 만나보니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아도 느껴졌다. 덕친은 각자 자신의 고독 속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덕질의 교집합을 찾아 서로를 감싸안는 사이였다. '뮤지션은 길을 걷는 사람이고 팬은 그 길에서 등불을 밝히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덕주가 해준 말이다. 누군가의 등불을 함께 밝히는 것, 우리는 같은 일을 하는 동지다.
우리는 의지와 생각과 감정으로 이루어진 자신의 세계에 언제나 만족할 수는 없는데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내적으로 무언가가 서로 삐거덕거리기 때문일 수도 있고, 바깥세상에서 매번 상처만 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의 세계에서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으로 느껴지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32-33p
한 덕친이 시부상을 당했는데 우리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 적이 있다. 아무리 덕질로 만나는 친구지만 어쩌면 가장 내밀한 행복을 나누는 사이인데, 연락을 하지 않다니. 서운해하는 내게 오히려 그는 가장 내밀하기 때문에 가장 사회적인 일로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우리의 내밀함은 사회적으로 쉽게 인정받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덕친은 아니지만 팔로하고 있는 어떤 분이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다. 원래 지병이 있었고, 그 와중에도 가열찬 덕질을 해서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었는데, 온라인 상으로 소식을 들은 것이다. 내가 그에게서 받은 사진과 짤들은 그가 삶에 대한 희망을 그러모아 빚은 것이다. 신이 너의 삶은 어떠했는가 물을 때, 그는 그 짤들을 떠올리며 반짝반짝 빛났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곳에서도 빛나기를...
서로 모르면서도 긴밀히 연결된 우리가 나중에 어쩌다 탈덕(덕질을 그만두는 것)을 하게 되더라도, 그래서 만나지 않는 사이가 되더라도, 이 지구 상에 이방인으로 남지 않고, 가장 나다운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한 명쯤 있는 게 좋은 것이다, 나는. 오롯이 덕주를 향한 나의 열망, 어쩌면 그것은 자신을 향한 환호성일진대 그것을 기억해줄 누군가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는.
나를 나 자신으로 느끼지 못하게 하는 영향력과, 나를 나 자신과 더욱 가깝게 이끌어 더 큰 자유를 주는 영향력의 차이를 구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33P
그들의 영향력으로, 그들을 거울 삼아, 차갑고도 명료하게, 나를 나 자신에게 더욱 가깝게 이끌어 더 큰 자유를 주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믿는다.
덕후, 한자로 덕德이 두텁다, 덕德을 두텁게 하다, 라는 뜻이다. 내게 덕친은 덕이 두터운 분들이고, 그들 덕에 나의 덕이 두터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