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진군가

<페터 비에리의 교양수업>으로 보는 덕후 생활 고찰

by 천둥
자연과학의 언어와 일상 심리의 언어에서 존재하는 여러 가지 설명법들은 이해를 위한 다양한 필터이고 우리는 이 필터를 통해 여러 방식으로 세계를 관찰하며 다양한 관심을 기반으로 세계를 창조합니다.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 61p


국카스텐은 독일어로 '중국식 만화경'을 뜻한다. 만화경을 들여다보면, 알록달록한 색깔이 형형색색으로 빛난다. 만화경처럼 아날로그함 속에 숨어있는 사이키델릭 한 영상이 국카스텐이 추구하는 음악이다. 시각으로 보이는 듯이 이미지화하여 음악으로 표현한다.

그들의 음악은 다양한 색을 추구하지만 마구 섞어 탁해지지 않고 오히려 선명하게 각자의 특색을 드러내고 있다. '인간 행위에 담긴 의미와 합리성을 이해하'(61p)기 위해서 그에 맞는 다양한 필터를 갖추고 있다고나 할까.

한 가지를 깊이 이해하고 나면 우주의 이치를 이해한 것과 같다고 한다. 내게 국카스텐은 그 하나로 선택되었고, 다행히 그 필터는 내게 딱 맞았다. 물론 아직 이치를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나라는 존재는 내 정신적 활동 그 자체입니다. 34p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국카스텐 음악은 오로지 자기 탐색을 소재로 한다. 선과 악의 경계, 사회적 관습을 의심하고 탐구하고 자신만의 시각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음악으로 형상화한다.

1집 국카스텐은 모두 내면세계를 살피는 내용이다. '거울'은 에고, '림보'는 경계, '싱크홀'은 불안, '꼬리'는 혐오, '파우스트'는 선택, '비트리올'은 애틋함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모두 인간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것들이다. 마지막 트랙 '토들'은 그럼에도 타박타박 걸어가는 인간의 발걸음을 노래한다.

인간이 신에게 질문하는 듯한 1집과 달리 2집 프레임은 스스로 진리를 찾아 세상에 나선 듯하다. 운명을 대하는 인간의 의지를 말하는 '오이디푸스', 숙명에 대한 측은함이 묻어나는 '저글링', 인간의 자유의지를 맘껏 표출하는 '변신'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프레임', 그리고 그 모두를 해내겠다는 다짐의 '스크래치'와 '푸에고' 등이 그러하다.


음악대장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으면서 내놓은 곡이 '펄스'이다. 절대 고독과 그럼에도 세상에 대한 연결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낀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개인적인 해석이다. 음악이 세상 밖으로 나온 순간부터는 뮤지션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듣는 이의 몫이니까. 사실 국카스텐의 곡들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덕주가 말한 음악적 설명에 기대어 나름의 해석을 해본 것이다.

국카스텐의 곡들은 굉장히 색깔이 뚜렷하기 때문에 신곡을 낼 때마다 이전의 색을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란 참으로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전의 곡이 가진 색깔에 고정되지 않으면서 새로운 곡을 내놓고 있다. 데뷔 10년 차라는 시간에 비해 앨범은 적은 것은 그만큼 그들이 자기 탐색 속에서 고갱이만을 골라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반증한다.

어떤 분이 내게 아직도 자기를 들여다보는 일에 몰두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 말이 내게는 일종의 칭찬으로 들렸다. 자기 탐색을 놓지 않는 사람, 내 덕주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뜻이니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삶의 기원으로 삼을 것이다.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다만 끈기 있게, 비판적 민감성을 잃지 않으며 자유롭게 표현할 줄 아는 것, 그것이 중요하겠다.

교양인은 책을 읽은 후에 변화하는 사람입니다. 26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에서 가장 좋아하는 글귀다. 나의 변화를 위해 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읽기만 하면서 그것을 배움이라 착각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계속 쓸 것이다.

국카스텐은 최근에 사냥이라는 곡을 내놓았다. 신에게 묻고 세상에 묻던 그는 이제 진리를 찾는 주체로서 온전히 섰다. 더 단단해졌고 더 유연해졌다.

국카스텐의 가사는 비유와 상징이 많아서 중의적으로 표현되지만 기본적으로 사유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짐짓 비장하지만 천진난만한 아이의 품성을 잃지 않는다. '살아난 그림으로 변신, 철없는 낙서들로 변신, 산 채로 잡은 시로 변신, 어디든 쓰고 지워 변신'('변신' 가사)을 하던 아이가 사냥꾼으로 자라 ' '진짜로 보이는 더 진짜 같은 가짜들을 찾았다'라고 한다. 그들은 변화하면서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안다.

책에서 어떤 감동을 받는지, 그 책이 마음에 드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주로 이러한 음악적 특성에 좌우됩니다...(중략)... 책을 고르는 사람들은 책의 음색과 리듬과 멜로디를 들어보는 것입니다. 문학적 글에서는 내용이나 줄거리의 많은 부분이 형태, 즉 단어의 선택과 작품, 속도를 통해 표현되기 때문에 독자들이 그런 기준을 두고 작품을 선택했다면 결코 틀리지 않은 것입니다. 85p


그들이 교양인으로서 끊임없는 자기 탐구와 사유 속에서 음악을 만들어낼 때, 한 마리 덕후는 레오 리오니의 <프레드릭>처럼 빛을 모으듯 시를 모으지 못하고 그것을 만든 자의 아우라와 그 깊이를 좋아하고만 있다. 하지만 그것이 옳은 방향이고 좋은 선택이었다는 것을 안다. 덕후의 행복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그들은 라이브 무대에서 발화(發火)한다. 인생에는 봄날의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사막에 홀로 남겨져 별빛이 쏟아져내리는 순간을 맞이할 필요도 있지 않은가. 격정적인 모험가가 되고 싶기도 하니까.


사노 요코는 <죽는 게 뭐라고>에서 덕질을 '허구의 화사함'이라고 표현했다. 덕주의 연애 소식이 기특해서 엉덩이를 두드려주고 싶은 엄마 마음과 땀에 젖은 셔츠의 섹시함을 남몰래 들여다보는 허구의 화사함을 마음껏 느껴보는 게 어때서. 어차피 통합된 인격체란 없지 않은가. 다중의 정체성이 나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평행우주 속에서 락커로 살아가고 있는 내가 미세먼지만 한 선한 영향력을 뿌리고 있을지 누가 아는가.

덕질에 관한 글과 책이 넘쳐나고, 덕후가 세상을 구하는 세상이라며 덕질을 부추기기까지 하는 시대에 나까지 덕질을 장려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는다. 다만 교양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철학 수업이 괜찮은 덕질을 통해 새로운 놀이로 변환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심미적 대상을 선택하고 '앓는'다는 것은 호오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이며 교양을 키워나가는 문제라는 것이다. 푸코가 말했다던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의 문제는 쾌락, 즉 놀이를 어떻게 창조, 발명할 것인가의 문제로 재파악된다고.


이 글을 쓰는 중에 <미스터 트롯>이라는 프로그램이 가요계와 덕질계에 새로운 문화적 지형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다. 트롯이라는 장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젊은 덕후들이 대거 합류하여, 2060의 대화합이 이루어질 판이라고 한다. 갑작스러운 사회적 열풍의 원인이 무엇인지, 과연 덕질은 더 나은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인지 내다볼 혜안이 내게는 없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환호가, 기실 그 발원지가 오로지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교양인으로서 품격에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어차피 주접과 용기는 한끝 차이니까. 내게는 이 글이 남아 나의 용기와 주접을 저울질해줄 것이다.




이로써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으로 보는 덕후 생활 고찰을 마칩니다. 국카스텐의 심오한 음악을 들으면서 언젠가는 꼭 국카스텐으로 철학하기, 라는 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얕은 재주로는 도저히 시도하지 못했던 것을 페터 비에리 님에 기대어 조금 흉내만 내어보았습니다. 작은 성공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 하현우 님이 SNS에 글을 올렸습니다.

턱 빠진 사람처럼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의 글귀들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앙스트블뤼떼. 창작의 에너지가 가득 담긴 시.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보면 때로는 맥이 빠집니다. 너무 큰 덕주를 모시면 가끔 내가 너무 하찮게 여겨지는 부작용에 시달리게 됩니다. 나의 현재를 부정하기 않기 위해 서둘러 발행합니다. 앞으로는 미래의 내가 잘 해내기를...






본 브런치북은 <요즘 덕후의 덕질로 철학하기>(초록비책공방)로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브런치북에 담긴 글보다 더 재미나고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으니 많은 애독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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