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본연의 그녀

그 모든 것

by 천둥

그녀는 친구다. 친구라는 본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친구. 친구마다 조금씩 그 역할이 다르지 않은가. 언니 같은 친구도 있고 동생 같은 친구도 있고, 고민을 잘 들어주는 친구, 만나면 마냥 즐거운 친구, 맛있는 걸 같이 먹고 싶은 친구도 있다. 그녀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친구다. 뭐든지 말할 수 있고 아무 때나 연락해도 불편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면, 이라는 수식어를 굳이 쓰지 않고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스무 살 때다. 나는 그녀가 지적이어서 좋았다. 그녀의 언어에는 신뢰가 묻어났다. 정확한 용어라든지 이름, 출처 등을 밝힌 탓인지, 또랑또랑한 목소리 탓인지는 모르지만 그녀가 하는 말은 일단 그렇지, 수긍하고 보았다. 전문가의 포스도 뿜어져 나왔는데, 허튼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진중한 태도랄지,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랄지, 아무튼 듣는 이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지금도 그 포스로 먹고산다(고 그녀 스스로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무엇보다 개그 본능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다. 그녀의 입을 거치면 같은 얘기도 초특급 유머가 되어버린다. 약간의 허풍과 치고 빠지는 드립과 적절한 타이밍 조절까지, 완벽하게 조작(?)해버리는 능력이 있다.

지금이야 가장 노릇을 하느라 반듯한 직장인으로 살지만, 드립력이 어디 가겠는가. 사적인 자리에서는 여전한 드립력으로 눈깜짝할 사이에 우리 배꼽을 들고 튀어버린다. 그녀는 개구리 볼처럼 약간 올록볼록한 볼때기를 가졌는데 그녀가 볼을 오므리는 순간 우리는 웃을 준비를 한다. 그 안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잔뜩 궁금증을 안고. 그녀는 한 번도 그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다.


"우리 집에서 자고 가."

그녀가 이 말을 하면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된 거다. 혼자이신 엄마가 심심할 거라는 게 이유였다.

“우리 엄마 혼자 있어서 심심해. 같이 놀자.”

엄마랑 놀자니, 어른이 심심하다니, 의아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귀찮아 할 텐데, 그녀가 이상했다. 우리집은 그랬다. 어른과 아이가 같이 놀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른과 아이는 위아래, 상하, 수직적 개념이어서, 절대 같이 놀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감히 어른들과 논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더구나 어른에게 아이는 귀찮은 존재였으므로 아이에 속했던(스물이 넘은 그때도 우리 집에서 나는 아이에 속했다) 나는 알아서 어른과의 자리를 피했다. 어쩌다 어른들과 함께 있게 되면 괜히 잔소리나 꾸중을 듣기 전에 최대한 빨리 그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지금도 나는 어른들과 같이 있는 게 불편하고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아이들과 같이 있는 상황이 되면 얼른 자리를 피해주려는 경향이 있다.


그녀는 엄마랑 있는 게 아주 자연스러웠다. 어려서부터 혼자되신 엄마를 그녀의 언니와 함께 서로 돌보며 살아왔다. 세 모녀는 서로가 서로를 '진짜 가족같이' 돌보는 관계였고, 그러면서도 동등했다. 그녀의 엄마도 자식에게 받는 관심과 돌봄에 익숙해있었다. 여기서 돌봄은 손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서로 아끼는 행위에 속한다. 왜냐면 셋 다 어른이었기 때문에 딱히 돌볼만한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어른이어서라고 했지만, 사실은 어려서부터 그렇게 살았다고 했다. 역할 분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한 가사노동을 각자 알아서 했고 같이 하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때가 되면 같이 밥을 해먹고 눈에 보이는 대로 집을 치우고 빨래를 했다. 공동의 집이고 공동의 생활이었다. 우리 집은 부모님 집이었다. 자식들은 부모 밑에 얹혀 사는 거고 당연히 부모가 주는 밥을 먹고 시키는 일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엄마는 내가 자유롭게 밥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 같다. 엄마의 역할을 내가 하는 것은 일종의 월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밥을 앉혀라, 하면 밥을 앉히고 된장을 끓여라, 하면 끓일 수는 있어도, 오늘 뭐 해먹을지를 내가 정하고 내 마음대로 냉장고를 털어서 쓰는 것은, 그 당시 우리집 분위기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엄마와 서열을 느낄 수 없는 관계가 가능하다니, 귀찮지 않은 돌봄이 가능하다니.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서로돌봄’이 가능하다는 것을 현실에서 눈으로 생생하게 보다니. 지금 생각하면 그때 이상적 가족형태를 미리 경험했던 것인데, 까맣게 잊고 산 것이 안타깝다.


그런 그녀였기에 지극히 시댁 중심의 결혼 생활을 힘겨워한 것은 당연하다. 사실 그때 나는 그녀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다. 위로는 했지만, 결혼이라는 제도는 원래 그런 건 줄 몰랐냐고 생각했다. 여성운동에 남다른 목소리를 낸 적도 있지만 부당함을 느끼기에는 너무 익숙한 질서였다. 살아온 환경이라는 게 이토록 중요하다.

다행히 오랜 줄다리기 끝에 그녀는 결국 비정상적인 관계를 정상적으로(!) 바꿔놓았다. 그만큼 그녀는 삶에 있어 진취적이다.

그녀는 고등학교 친구, 대학 친구, 사회 친구들을 두서없이 불러 모으곤 했다. 크리스마스에 자기 친구들을 다 모이게 하는 식이다(물론 내가 데려가고 싶은 다른 친구가 있으면 얼마든지 오케이다). 안면식도 없는 친구들을 한자리에 모으면 서로 불편하지 않게 신경 쓸 것 같지만 그런 게 없었다. 그저 서로를 인사시키는 게 전부다. 그리고 원래 다 같이 친구였던 것처럼 대한다. 우리는 0.1초 멈칫하다가 너무 천연덕스러운 그녀의 분위기에 바로 동화되어버렸다. 그녀만의 마법이다. 나처럼 낯가림이 심한 사람도 그녀의 친구들 모임은 이상할 정도로 불편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들으면 그녀가 꽤나 털털한 성격일 거라고 예상될 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그녀는 자기만의 루틴이 있고 심한 정리벽이 있다. 모든 것에 각을 세워야 한다. 장롱 속 이불은 접힌 면이 바깥쪽으로 나오게 하고 모서리 각은 세워야 하고, 책은 키순서대로 들어가 있어야 하며 빨래는 발로 밟아 널고 크기순으로 쌓아올린다(제때 서랍에 넣지는 않는다). 덕분에 가족들은 그녀의 잔소리 폭격을 들어야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녀가 잔소리를 듣는단다(유전자의 무서운 힘이다). 그녀가 결혼한 이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녀의 집에 장기간 살았던 나로서는 적잖이 놀랐다. 전혀 눈치 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완전히 널브러진 상태로 사는 내게 그녀는 한 번도 눈치를 주거나 불평을 말한 적이 없다(아니면 내가 심하게 눈치가 없거나).


그녀의 가장 큰 특색은 자기만의 독특한 심미안이 있다는 거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sery’s choice라는 회사 이름이 떴을 때 나는 그녀가 했어야 할 직업이 바로 저거였구나, 생각했다. 그녀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녀의 초이스를 따라하고 싶어 했다. 그녀가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문구, 옷이나 신발, 집에 놓인 컵이나 그릇, 액자, 양말 등등 그녀가 고른 것은 뭐든지, 이거 어디서 샀어? 라고 묻지 않는 사람이 없다. 특별한 곳에서 구입하거나 비싼 것도 아니다. 집 앞 장터, 길거리 구루마, 이마트의 모던하우스 등이 우리들의 쇼핑장소였는데, 내가 고른 그릇과 그녀가 고른 그릇은 왜 그렇게 차이가 나는 건지. 그녀가 길에서 샀다는 5천원 짜리 티셔츠가 왜 그리 탐이 나는 건지. 물론 유난히 쇼핑력이 떨어지는 내 문제도 있지만 그녀의 선택은 항상 주변의 눈길을 받았다. 다행히 그녀의 아이가 우리 아이보다 1년 빨라서 10년 넘게 아이 옷을 물려주었는데, 그때 그녀의 옷도 함께 물려주었다. 덕분에 패션 테러리스트는 면했지만 그렇잖아도 없는 쇼핑력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녀의 심미안이 어느 정도냐면, 얼마 전 그녀가 집을 샀다.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집이란다. 알고 산 게 아니고 지나다니면서 그 집을 눈여겨보다가 샀는데, 사고 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인테리어 공사를 한다는 말에 그녀의 심미안을 아는 지인들은 모두 공사가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려 들이닥쳤다.

역시, 남달랐다. 공사를 내가 하나 업자가 하지, 라며 겸손을 떨지만 업자가 주인 시키는 대로 하지 제 맘대로 하나. 부러워서 침이 뚝뚝 떨어질 지경이었다. 콘솔 위를 가리키며 이건 다 당근에서 샀어, 라고 할 때는 왜 이 동네 당근에만 저런 걸 파냐고 투덜거렸지만, 뱁새는 그저 황새 구경으로 만족한다.


그녀의 안목이 아까워 본격적으로 수집을 시작해보라고 권했다. 지금처럼 당근에서 그림이나 찻잔 등을 수집하면서 조금씩 자신만의 분야를 찾아가도 좋을 것 같았다. 그녀는 질색을 했다. 그동안 벌어먹고 사느라 힘들었는데 노후에는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살 거라고 했다. 뭔가를 해야 한다면, 뜨개질이나 하려고. 툭 던지는 그녀의 말에 나는 아싸, 쾌재를 불렀다. 정세랑의 소설 <이만큼 가까이>의 송이가 되겠구나, 생각했다. 소설 속 송이는 어릴 때부터 항상 뜨개질을 했다. 그녀만이 소화할 수 있는 독특한 소품을 만들었는데 선생님들은 그런 그녀가 눈의 가시였다. 어른이 된 송이는 뉴욕에 갔다가 우연히 로컬 디자이너에게 스카우트되어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뽐내게 된다.

뜨개질‘이나’ 하겠다고 하지만 눈썰미가 어디 가겠나. 뜨개실을 골라도 색감이 남다를 것이며 무늬를 넣어도 독특할 것인데. 얼른 그녀의 뜨개질을 시작하면 좋겠다. 하지만 빨리 노후가 오기를 바랄 수는 없겠지. 천천히 늙어서 빨리 뜨개작품을 보고 싶다.


또 다른 그녀만의 특성은 사주, 명리학이다. 삶의 부침을 겪었을 때 그녀를 도운 것이 바로 명리학이었다. 상담 일을 하는 그녀는 심리학과 명리학이 한 끗 차이임을 깨우치고 많은 것들을 명리학으로 해석하고 바라본다. 잘 보는 집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그녀 스스로 공부를 한다.

여기서도 그녀는 전문가 포스를 제대로 발휘한다. 스스로는 전문용어 몇 개를 아는 게 다라고 하지만 어찌나 적재적소에 잘 풀어쓰는지, 그녀의 지인들은 도사를 만나고 나서 그녀를 찾아 풀이를 다시 듣는다. 도사보다 나은 풀이력이란!


그러고 보니 새달이 되었다. 그녀와 당장 통화를 해야겠다. 그녀는 지난 운세에 대한 총평을 할 것이다. 그리고 조심할 것과 나아갈 것들을 살피겠지. 물론 운세는 얻겠다는 의지가 있을 때 얻을 수 있으며, 얻는 만큼 잃는 것도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우리는 또 한 시간 동안 전화통을 붙잡고 있을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