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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May 07. 2024

광산뮤직온페스티벌

국카스텐이 보내준 여행

나는 국카스텐 덕후다. 나이 쉰에 갑작스러운 덕통사고를 겪고 <요즘 덕후의 덕질로 철학하기[브런치북] 교양 수업으로 보는 덕질 고찰 (brunch.co.kr)>라는 에세이를 내기도 했다. 덕질을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남편과 여행을 다닐 기회가 생긴다는 점이다. 갱년기로 수면장애가 시작되어 각방을 쓰게 되면서 부부가 친밀감을 나눌만한 일이 거의 없다. 아이들이 독립하면서 가족이 함께 외식할 일조차 별로 없으니까 더욱 그렇다. 남편은 캠핑도 하고 등산도 다니는데 같이 갔으면 하는 바람을 은근히 전한다. 남편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집순이는 나가는 게 싫다. 집에서 남편 없는 시간을 즐기게 해 주면 좋겠다.  

하지만 집순이도 덕질을 위해서라면 지방 오지도 마다하지 않고 길을 나선다. 그동안 국카스텐을 보러 다닐 때면 주로 덕친과 함께 하는 걸 선호했지만, 당분간은 남편과 다니며 여행기를 써볼까 한다. 이름하여 ‘국카스텐이 보내주는 부부여행’. (단독공연은 빼고. 덕친과의 여행도 중요하니까)     

 

남편과 함께 하면 좋은 점이 많다. 일단 운전 걱정이 없다. 남편의 운전은 거칠기는 하지만 초행길 운전이 겁나서 남편에게 기대는 때가 많다. 나이 들면서 어둔해지니 밤길은 더욱 무섭다. 행여 남편이 술을 한 잔 하게 되어 내가 운전을 하게 되더라도 혼자가 아니니 든든하다. 식성을  맞추는 등 타인에 대한 감정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 나는 먹는 것도 잠자리도 까다로운 편이다.  

제일 좋은 것은 모든 경비를 덕질비용으로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남편과 다니게 될 공연은 주로 행사공연이고, 무료인 경우가 많아서 비용이 따로 들지 않지만 숙박과 식사비용을 생각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가끔 현타가 오는 지점이다. 근데 그걸 남편과 함께 하는 여행으로 퉁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덕질인생 9년 차. 그동안에도 남편이 함께 가주는 일이 많았지만 말 그대로 ‘가준’ 거다. 이제는 정식으로 남편과 ‘함께 하는’ 여행이다. 오로지 공연만을 목적으로 하던 때와 달리 나도 이제 지역도 살피고 남편의 욕구도 살펴야지.  

    

그렇게 마음먹은 게 올해 초인데 5월에야 첫 공연이 잡혔다. 전라도 광주. 드디어 첫 부부여행을 나설 기회가 왔다. 여행계획을 잡아야 하는데, 집순이가 과한 여행계획을 잡을 리가 있나.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나, 남편이 하고 싶은 거 하나, 딱 두 가지만 하기로 했다. 남편은 518 광주묘역에 가자고 한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해서 매년 5월이 올 때마다 마음에 걸렸는데 이번 기회에 해소하고 싶다는 거다. 오, 좋은 생각. 나도 이 기회에 마음의 짐을 덜어야지. 나는 ‘518 사적지 택시투어’를 꼽았다. 영화 ‘택시운전사’를 모티브로 한 이벤트인데, 택시를 타고 전남도청과 전일빌딩 등 사적지를 돌아보며 기사님께 역사적 의미를 들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역 음식으로는 맛있는 백반으로 정했다. 먹는 것에 진심인 남편이 광주에 가면 무조건 백반을 먹어야 한다니 두말할 것 없다. 여기저기 방송에도 소개된 예향식당에 가기로 했다.  

이제 숙박을 정해야 하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공연은 밤 8시에나 시작하는 거라서 낮 시간이 통으로 주어지는데 굳이 1박을 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어린이날을 낀 연휴라 엄청 밀릴 것이 예상되니 당일치기로 가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섰다.   

   

여행 당일, 아침을 먹고 우리는 다시 늘어졌다. 정체가 예상되는 오전을 피해서 아예 천천히 정오쯤 출발하기로 한 것이다. 각자 핸드폰을 들고 뒹굴뒹굴 한껏 게으름을 피웠다. 늦은 밤에 하는 공연을 즐기려면 체력을 아껴야 한다.  

11시가 넘어서 그제야 가져갈 짐을 꾸렸다. 돗자리, 등받이 의자, 무릎담요, 물, 과일 한 통, 끝. 당일치기 여행이니까 짐도 최대한 가볍게. 이 정도면 완벽한 P 아닌가(MBTI). 그런데 남편이나 나나 J로 나온다. 몸은 늦게 움직여도 머릿속은 바쁜가 보다. 그러니 몸이 고생이지, 쯧쯧...    

12시 출발. 운전하는 남편을 위해 레트로 가요를 틀었다. 남편은 오로지 80년대 음악만 좋아한다. 따라 부를 수 있어야 졸리지 않다고 한다.

늦게 출발했는데도 아직 정체가 풀리지 않아 초반에는 조금 밀렸지만 지방에서 지방으로 가는 길이라 그런지 금세 길이 뚫렸다. 대전에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은 어딜 가나 사통팔달 길이 좋다는 것. 그리고 전라도 방향으로 가면 무주를 지나면서 어마어마한 풍광을 볼 수 있다는 것. 무주는 언제 봐도 입이 떡 벌어진다. 그런데 지나다니기만 했지 한 번도 가본 적은 없다. 조만간 국카스텐이 무주에서 공연할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핑계 삼아 제대로 여행해 보게. 무주 공무원님들, 뭐 하십니까. 국카스텐을 불러주세요~~   

  

산과 들이 이어지다가 서광주 IC를 빠져나오면서 풍광이 달라졌다. 한 아파트 단지가 앞을 가로막았는데 타워형이라서 그런지 유난히 빽빽하고 덩어리 져 보였다. 도시적인 걸 유독 싫어하는 내 취향이 문제 이긴 하지만, 한 도시의 첫인상을 굳이 이렇게 첨단건축물로 해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얼마 전 읽은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가 떠올랐다. 서울에 있는 것들을 벤치마킹하는 지역의 문제를 꼬집었는데 “내가 출발한 곳에 대한 부끄러움은 결국 그것에 대한 혐오로 이어진다”는 표현에서 특히 마음이 아팠다. 지역은 지역만의 특성을 살렸으면 좋겠다. 내 여행기가 어떤 의미가 될지 아직 정한 바가 없는데. 어쩌면 지역의 현실을 보는 것에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역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봐야지. 외지인의 눈으로 그 지역의 아름다움을 찾아내야지. 당일치기나 1박으로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마음에 새겨두려 한다. 이제 첫걸음이니까 아직 구체적이진 않지만.     


시내에 들어서서 신호에 멈춰 설 때마다 우리는 간판을 읽었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그곳에만 있는 개별적인 이름들. 지역의 특성 운운하지 않아도 주로 그렇게 되지 않나. 낯선 곳에 가면 그곳의 간판을 읽으면서 뭔가 정보를 찾게 되는 거. 하다못해 지역명이라도 알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읽게 되는 것 같다. 그 순간 우리는 낯선 곳으로 여행 왔구나 하는 설렘을 느끼는 것 같다.

아파트 건축을 위해 가림막이 길게 늘어선 곳이 있었다. 반대편은 구도시 그대로였는데, 다음에 오면 이쪽도 다 헐려서 알아볼 수 없는 신도시가 되어있겠지, 하는 아쉬움에 개발지상주의에 대한 한탄을 하려는 찰나, 특이한 구조의 건물을 발견했다. 성처럼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 앞쪽에 또 다른 건물이 덧대어졌는데 일층은 개별 건물 같지만 2, 3층은 이어져 있고 창문도 첫눈에는 일정하지 않은 것 같지만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1층은 빨간색 벽돌로 인테리어를 새로 했고 2층은 하늘색인데 중간중간 벽돌색을 포인트로 그려 넣었다. 정성 들여 디자인한 티가 나면서 동시에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담긴 건물이었다. 와, 저런 거 너무 좋지 않아? 오래된 성을 보존한 느낌이 들잖아, 감탄을 내뱉는데, 남편이 또 다른 건물을 가리켰다. 저기 봐.      

언뜻 보면 모텔 같았다. 엘레강스한 창문과 창틀, 하얀색 외벽 등이 한때 유행했던 모텔과 비슷한데, 더 오래되고 더 섬세하게 관리한 티가 역력했다. 일례로 건물 외벽에 붙은 간판이  건물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게 건물이름과 비슷한 색과 크기로 디자인되어 있다. 자세히 보니 1층은 모두 옷가게인 듯하다. 뭔가 오래된 역사가 있을 듯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혹시나 해서 검색해 보니 헉! 역시나,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제목은 “특집, 광주 양복점 양장점의 역사” 그러니까 이 건물은 문광자라는 유명패션디자이너의 드맹의상실이 있는 드맹아트촌. 서양복식에 무명으로 한국적인 분위기를 덧입힌 작품을 만드는 분인데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에도 협찬했단다. 대기업들이 기성복시장에 뛰어들어 브랜드화되면서 패션계가 많이 위축되었지만 드맹은 최근 50주년 패션쇼를 할 정도로 건재하다고 한다. 생각지도 못한 패션계 소식을 한 조각 알게 되는 순간이다. 역시 여행은 의외의 것을 발견하게 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금강산도 식후경. 일단 먹고 보자. 예상대로 한상차림의 백반이 나왔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반찬 말고 특이한 것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풀치볶음. 딱 봐도 갈치새끼다. 멸치처럼 볶은 건데, 멸치보다 고소하다. 또 하나는 게다리가 들어있는 미역국. 뜨거울 때 먹으면 전혀 비리지 않고, 내가 전라도에 왔구나 하는 만족감을 준다.  

남편이 소주를 시켰는데, 영화 <택시운전사> 라벨이 붙어있다. 보해에서 나온 잎새주를 5월 한정판으로 만든 거란다. 우리가 아무리 5.18을 기억한다고 해도 지역분들이 갖는 정서를 어떻게 따라가겠는가. 괜히 병을 만지작대니 남편이 기념으로 가져가겠냐고 묻는다.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라고 말했지만 가져올 걸 그랬다. 역시 여행은 기념품이 있어야...

맛있게 싹 비우고 나와 보니 식당 앞에 간이의자가 켜켜이 쌓여있다. 우리가 늦은 점심때 와서 한갓지게 먹을 수 있었던 거지 원래는 오래 대기해야 하나 보다. 바로 옆에는 모과나무가 아주 큰 화분(이 아니라 빨간 고무통)에 심겨 있었다. 모과나무가 땅이 아니라 화분에 심어진 것은 처음 봤다. 손톱만 한 모과열매를 보다가 식당이 잘되는 데는 이유가 있구나, 생각했다. 보통 모과는 땅의 기운을 많이 필요로 하는 나무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사람이 받아야 할 기운도 다 뺏어간다고 가능한 집 마당에는 심지 말라고 한다. 그런 모과를 화분에 심어 키우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기운이 대단하겠는가. 기운이라고 표현했지만 정성일 텐데 내가 먹은 한 끼에 대한 포만감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분은 좋은 사람일 거야, 하고 근거 없는 신뢰감을 보냈다. 나는 쉽게 그런 것에 넘어가는 사람이다.    

   


주차장으로 가면서 택시투어를 검색해 봤다(미리 알아보거나 예약을 하는 정성이라곤 없는 게으른 여행자다). 이제 보니 이건 작년 5월 한정판으로 하는 체험이었단다. 생각보다 참여자가 적었다 보다. 참여자가 많았다면 올해도 했을 텐데. 이로써 내 계획은 실패. 우리는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고 징징거리지 않는다. 오히려 인생이란 원래 생각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하며 즐기는 편(제대로 계획하지도 않았으니 당연하다).

그냥 금남로를 한 바퀴 돌아보고 민주광장으로 가려고 나섰다. 그런데 하필 오늘 연등행사가 있어 몹시 어수선했다. 게다가 내비게이션은 자꾸만 너른 도로가 아닌 인도처럼 생긴 곳으로 안내를 하고 사거리는 마치 오거리처럼 생겨서 헷갈려서 우왕좌왕했다. 남편이 시내 분위기는 맛봤으니 이만 518 묘지로 가자고 해서 다시 목적지를 바꾸었다.      

가는 길 내내 518 묘지안내표지가 있었다. 외곽도로를 타고 나와 얼마가지 않아 꽃집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했다. 이 지역에서 518이 가진 의미가 얼마나 크고 일상과 직접적인지 가슴 뻐근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이들에게 아직도 큰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늦은 오후라 그런지 국립 518 묘지는 한적했다. 현충원을 상상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서 놀랐다. 들어가는 입구에 추념문도 있고 거대한 추모탑도 있었지만 518이 갖는 역사적 의미에 비해 구색이 덜 갖춰진 느낌이었다. 물론 체험관이 있어 사진전도 열리고 있었지만, 시민들을 위한 시설이 부족해 보였다. 분명 체험학습을 하러 오는 학생들도 많을 텐데 보고 배울 거리가 다양해야 오고 또 오지 않겠는가. 마침 봄사진 이벤트를 열고 있어서 참여를 해볼까 했는데, 묘역에 일괄적으로 꽂힌 꽃 말고는 찍을 꽃도 없었다. 요즘처럼 꽃들이 한꺼번에 많이 피는 계절에 꽃이 안 보인다는 게 말이 되나. 주차장 너머 산에 핀 이팝나무가 전부였다. 아무리 경건한 묘역이라지만 참배객이나 체험객들을 위해 크고 작은 아름다운 공간이 마련되면 좋겠다.      

묘역 안내는 잘 되어있는 듯했다. 우리야 딱히 찾을 묘역이 없어서 그냥 둘러보았는데, 그 당시 돌아가신 분들과 이후에 고충을 겪다가 가신 분들로 나눠져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름 없는 무명열사의 묘도 꽤 눈에 띄어서 마음이 울컥했다. 묘비 뒤쪽에 새겨진 글귀를 몇 개 읽어보았다.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로 시작되는 윤동주 시인의 시가 씌어있었다. 마지막 문장, ‘나를 부르지 마오’가 가슴을 후빈다. 한쪽 끝, 10 구역에는 시신을 찾지 못한 분들의 빈 봉분이 있다는 설명을 보고 차마 가까이 가지 못하고 돌아 나왔다.  


꽤 나이를 먹을 때까지 순국선열들에 대한 감사를 크게 실감하지 못하고 살았다. 스무 살 때 610 민주화항쟁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련하게 내가 경험한 것과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연결하지 못했다. 뒤늦게야 ‘그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고, 내가 누리는 일상의 평화도 없다’는 말의 무게를 깨달았다. 인간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미덕은 성찰임에 틀림없다.      

주차장 주변에는 방문객들이 추모글귀를 쓴 리본과 민주화 시가 적힌 현수막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바람에 펄럭이는 그것들을 보며 올해도 여전히 가슴 아픈 그날을 떠올릴 이들을 떠올려봤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공연을 하는 행사장으로 향했다. 남편은 미뤄왔던 인생의 과제를 하나 끝낸 것 같다고 했다. 나도 남편 덕분에 마음의 무게를 덜었으면서 괜히 큰소리쳤다.

이게 다 국카스텐 덕분이야. 국카스텐이 인생의 과제까지 하게 해 주니 얼마나 고마워, 그치?

남편은 그래그래, 국카스텐 덕분이다, 하고 웃었다.   

  

 

우리가 간 곳은 광산뮤직온페스티벌. 행사장은 천변의 공원이었다. 인근 초등학교에서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개방해 주어 어렵지 않게 주차를 했다. 공원은 생각보다 넓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다. 플리마켓이나 푸드트럭도 여기저기 구역별로 있고 체험존도 있었는데 어찌나 사람이 많고 넓은지 본무대를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 이미 전국 각지의 행사장을 다녀봤다는 알량한 경험으로 광역시를 우습게 본 게 아닌가. 그래봤자 지방의 행사장인데 뭘, 하는 마음이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섣불리 단정 짓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넓고 숨은 명소는 많다.

겨우 본무대를 찾아 돗자리존에 자리를 잡았다. 방금 블랙이글스의 에어쇼가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 아쉬웠다. 쉽게 보기 어려운 광경을 하나 놓쳤구나. 아쉬운 마음은 의외의 곳에서 채워졌다. 스탠딩 티켓을 주겠다는 천사를 만났다. 공연할 때 무대 앞 스탠딩 구역에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을 아침부터 선착순으로 나눠주었다. 그런데 이렇게 늦게 왔으니 내 티켓이 있을 리 만무하지 않겠는가. 사실 그걸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늦게 온 거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커뮤니티에 티켓을 구하는 글을 올렸더니 바로 손을 내미는 분이 있었다. 와우~ 감사합니다. 덥석 받아 들었다. 나 같은 덕후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한 장 더 구해서 갖고 있었던 것. 그 마음 잘 안다. 나라도 그랬을 거다. 지역 행사에는 당연히 지역민이 우선이지만, 그래도 덕후들이 있어줘야 공연이 산다. 노래 포인트마다 떼창과 손짓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걸 보는 것도 지역민들에게는 좋은 구경거리가 아닌가. 인기가 너무 많을 때는 덕후들도 조금 자제를 하지만 지금처럼 비수기 때에는 우리가 좀 나서줄 필요도 있는 법. (너무 덕후 시점에서 유리한 해석이 아니냐고? 좀 그런 면이 있겠지. 하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지 않나.)     


이제 여유롭게 맛있는 것을 좀 먹을까 둘러봤는데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다. 남편과 나는 계획도 잘 못 세우지만 줄 서는 것은 더 못한다. 나는 먹는 걸 포기하고 남편은 밖으로 나가 편의점에 갔다 오는 쪽을 택했다.

잠시 돗자리에 누웠다. 이거지, 하늘을 이불 삼아 잔디밭에 눕는 봄날의 피크닉 같은 이 순간을 위해 페스티벌에 가는 거지. 천천히 어둠이 내려앉고 행사장 주변은 불빛으로 반짝이고 음악이 들려오고... 국카스텐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유희의 시간이다. 뽀드득뽀드득 마음이 살찌는 소리. 군중 속의 안락. 만족스러운 깊은숨.     

남편이 돌아와 자리를 잡은 뒤, 곧이어 행사가 시작되었다. 귀빈소개 같은 지루한 사전진행이 있을 거라 생각해 그대로 누워있었는데 의외로 짧은 영상으로 대신했다. 귀빈들이 오늘의 행사를 잘 즐기는 깨알 팁을 알려주는 식이었다. 사실 이 순간은 외지인의 입장에서 그 지역이 얼마나 시민친화적인가를 엿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내 점수는요~ 훗!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좌석 1열에 어린이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흔히 가장 좋은 자리는 귀빈석인데 그렇지 않아서 감동했다는 후기를 보았다. 게다가 광산뮤직 ON페티스벌의 시작을 알리는 ON 버튼식(커팅식이 아니라)을 어린이들과 함께 했다. 귀빈 한 명에 어린이 한 명씩 미리 짝을 지어 나왔고, 즉석에서 함께 하고 싶은 어린이들을 무대로 불러올렸다. 다 같이 ON을 누르면 불꽃놀이가 시작되는 방식이었다. 훈훈해진 마음으로 폭죽이 터지는 것을 바라봤다. 사실 폭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얼마 전 폭죽가격이 신문기사에 공개되면서 나처럼 한번 터질 때마다 마음 졸이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지만 한 발에 3천만 원이 넘는 폭죽을 어떻게 맘 편히 즐길 수 있겠는가. 다 세금인데.      

이어진 무대는 비주얼 아트 영상. 광주 광산구를 홍보하는 영상과 춤꾼들이 어우러져 비주얼 아트를 이루는 독특한 무대였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신문물이었다. 방금 뭐라고 소개했더라? 궁금해서 리플릿을 찾아봤는데 이 부분에 대한 안내가 없다. 집에 돌아와서도 정보를 찾아보려 애썼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었다. 라인업은 무려 밴드 소란, 유다빈 밴드, 김기태, 그리고 국카스텐!

다른 뮤지션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내 가수에 대해 누군가 왈가왈부하는 게 싫은 만큼 나의 이야기도 누군가에게는 불편하리라. 덕후 마음은 덕후가 제일 잘 아니까.      

스탠딩을 위해 미리 줄을 섰다. 이게 얼마만이냐. 다음 앨범 준비로 공연휴지기가 길어져서 모두들 공연에 굶주려 있어 그런지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 깃발이 세 개나 휘날리고 있었다. 비가 오락가락하고 있었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할 우리가 아니다. 사실 유다빈 밴드부터 비가 흩날리기 시작해서 머리에 쓰고 있던 수건이 푹 젖을 정도로 빗줄기가 굵어졌다. 우리 팬들은 그럼 그렇지 하며 비옷을 꺼내 입었다. 기우제 밴드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멀쩡하던 날에도 자주 비가 왔던 터라 우리는 항시 비옷을 준비한다. 내일 비가 올 거란 예보까지 있었으니 우리 팀이 공연할 무렵이면 비가 올 수 있겠다고 충분히 예상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지역민들이 많이 자리를 떴다는 점이다. 우리는 비 맞으며 공연을 보는 데 익숙하지만, 지역민들은 그렇지 않았을 터. 그래도 우리 밴드의 끝내주는 음악을 들을 기회를 놓치게 되다니, 날씨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드디어 국카스텐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주변에 키 큰 남자들이 좀 있지만 꽤 널널해서 시야도 나쁘지 않다. 첫 곡은 푸에고. 시작부터 뛰어! 소리에 나도 모르게 펄쩍거린다. 무릎이 상하지 않게 발끝만 들어야 하는데 자제하기가 힘들다. 중심을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뛰다가 어느 순간 몸이 붕 떴고, 으아~~소리 질렀고, 현란하게 헤드뱅잉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돌아오는 고속도로 위. 순식간이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사실 고민이 많이 되었다. 과연 공연에 대해 쓸 수 있을까. 눈 깜짝 사이에 40분이 지나가버리는 것을. 음악이 내 몸을 때리고 귀가 활짝 열리고 눈으로 소리가 보이는 것을. 뻔히 눈으로 보고 있는 저 사람이 홀로그램처럼 느껴지는 것을. 웃을 때마다 눈가의 그어질 잔주름까지도 생생하게 그려지고 손짓과 발짓마다 내 몸과 마음이 동일시되는 것을. 징 박힌 워커 속에 감춰진 촉촉한 발목이 보이는 신비함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것인가.  게다가 오늘은 너무 오랜만이라 팬과 가수가 서로 너무 반가워 어쩔 줄 모르고 동동거리는데. 그런 걸 표현할 수 있다면 나는 이미 거장으로 거듭났을 터인데.

그러니 일단은 이렇게 넘어가자.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고 어찌어찌 표현이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조금은 전달이 되겠지.      


시간은 예상시간을 훨씬 지나 11시가 넘어있었다. 주민들은 괜찮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답이라도 하듯이 한 주민이 와서 울부짖었다. 하긴 너무했지. 보통 페스티벌도 10시를 넘기지 않기 위해 뮤지션별로 정해진 시간을 반드시 지키게 하고 말이 길어지거나 앙코르가 길어지면 스텝들이 독촉을 하곤 하는데, 주택가 옆에서 하는 행사가 이토록 늦어졌으니. 이번엔 욕 좀 먹겠구나, 공무원들 걱정을 해본다.      

공연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은 절로 말이 없어진다. 꽉 찬 나의 감각을 깨뜨리고 싶지 않다. 버릇처럼 뭔가 정의 내리고 설명하고 이름 붙이는 짓은 하고 싶지 않다. 언어로 규정할 수 있는 감각이 아니다. 화르르 불타오른 것들이 재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다가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흩어지듯이, 하얀 재가 되도록, 흔적도 없이 땅으로 흡수되도록 가만히 두자.

몸은 운전하는 남편 옆에 있지만, 정신은 아직 그곳에 남아있어 혼미한 상태로 그 순간을 복기하고 복기한다. 복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보고 싶다. 방금 보고 왔는데 벌써 그립다. 인간의 욕심은 어디까지일까. 어디까지 허용해도 되는 걸까. 아니, 허용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욕망하고 탐하고 행하는 것이 인간사인 것을. 그리고 그게 덕질인 것을. 나는 합리화의 달인이다.

그런 내 옆에서 남편은 올 때 듣던 7080 노래를 틀어 놨다. 만일 남편과의 덕질여행을 그만둔다면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일 거다. 겨우 정화시킨 내 귀를 더럽히다니. 내 귀 살려, 내 정신 살려, 내 영혼 살려~ 그래도 어쩌랴. 늦은 밤 운전 하는 사람이 졸면 안 되니 참아야지.

이렇게 올해 첫 덕질여행, 아니 부부여행을 마친다. 굿잠~     


오늘의 음악:푸에고

푸에고는 불을 뜻하는 스페인어다. 2012년 런던올림픽 MBC 공식 응원가이다.

일반적인 응원가와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참가자, 또는 패자를 위해 썼다고 한다. 가사를 보면 그 비장함이 더 많이 느껴진다. 국카스텐은 당시 소속사를 떠나 새로운 둥지로 옮기게 되면서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때 하현우가 ‘멤버들에게 보내는 글’을 썼다. 이를 다듬어 가사가 만들어진 것이다. 곡 소개를 보면, ‘불은 길이 정해져 있지 않고 가는 곳마다 다 태워버린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라고 되어있다. 하현우 스스로 불이 되어 다 태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 쓴 곡인 것 같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무대를 다 태워버리고 싶을 때 첫 곡으로 많이 들고 나온다.

푸에고는 내가 두 번째로 알아들은 노래다. 국카스텐 음악은 귀에 익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한 편이다. 록음악을 많이 접한 이들도 대부분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독특하기는 한 것 같다. 화성학을 배운 사람 말에 의하면 뭔가 화성이 안 맞는데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한다. 하현우는 항상 익숙하지 않은 것, 약간의 불편함을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인식의 틀을 벗어나 새로움을 발견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한다.

굉장히 다르면서도 일맥상통하는 국카스텐만의 음악적 색깔이 있는데, 처음에는 푸에고도 그런 국카스텐만의 색깔로 뭉뚱그려져서 다가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어떤 형상이 눈앞에 그려졌다. 작은 불씨가 팍 하고 커지는 모습, 단단한 무언가가 되살아나는 순간, 북소리,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함성, 신나게 흔들리는 우리들... 그런 장면들이었다.

그 뒤부터 푸에고는 내 차애곡이 되었다. 당시 심하게 우울했던 나도 푸에고처럼 되살아나고 싶었다. 오로지 글에 매진하면서 ‘바람 위의 굴레를 꽉 잡고’ 타오르는 불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커뮤니티 아이디를 ‘푸에고’로 해두고 야멸차게 흐를 작정을 다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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