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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들아, 연성하자. 광장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히프노시스 마이크 덕후, 서리꽃

by 천둥

“제 인터뷰이가 되어주시겠어요?”

광장에 나온 덕후들을 섭외하러 다니면서 수없이 했던 질문이 내게 돌아왔다. 서리꽃(만 26세, 여, 기록학연구자, 서울 서초구)은 인터뷰하는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했다. 소셜 네트워크나 유튜브 등이 발달하면서 개인 차원의 일상 기록을 넘어서 용산참사나 세월호 등 사회적 문제에 대해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이 대폭 늘어났다. 특히 이번 12.3 내란사태를 겪으면서 수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각자의 입장을 기록하고, 관련 사건을 중심으로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시민들까지 등장했다.

서리꽃은 시민들이 왜 이토록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기록에 나서는지 그 동기와 의미를 기록학적 관점에서 탐구해보고 싶 했다. 나는 연구자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와 마주 앉았다. 마침 그는 내 인터뷰 주제인 ‘광장과 덕후’에도 해당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인터뷰하는 상호인터뷰를 시도하게 되었다.


그는 ‘히프노시스 마이크’라는 일본 성우랩 프로젝트를 덕질하고 있었다. 원래는 드라마 CD 및 음반으로 시작되었는데, 지금은 출판만화, 뮤지컬, 게임, 애니메이션으로까지 확장되었다. 그는 특히 요코하마 팀을 좋아해서 요코하마로 덕질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의 덕친들은 우리나라도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려면 디비전 랩 배틀(지역별로 열리는 배틀 대회)을 열면 된다고 농담할 정도로 지역탐방을 하는 팬들이 늘었다고 한다.

그는 덕질 자체도 즐겁지만 창작을 통해 나만의 목소리를 내는 즐거움이 크다. 얼마 전에는 트친 따라 2차 창작집을 냈다. 표지도 직접 그렸다.

“어릴 때부터 글 쓰고 그림 그리고 노래 부르고 춤추는 걸 아주 좋아했어요. 피아노 치고 작곡도 했어요. 내 목소리를 내고 표현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시위도 결국 내 목소리를 내는 거잖아요.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부터가 민주주의인 것 같아요.



그의 최애는 경찰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불나방처럼 뛰어든다. 그는 최애에게 가족을 잃은 동질감이 느껴져 마음이 쓰였다.

그는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경제적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는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 화가 났다. 그만큼 삶이 고단하다는 뜻이라는 걸 지금은 잘 알지만, 그때는 목숨이 그렇게 가벼운 게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그는 어머니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다. 지하방을 전전했지만 피아노를 배울 정도로 마음의 여유는 잃지 않았다. 가수를 꿈꾸며 고등학생 때부터 알바를 하면서 오디션을 보는 등 실용음악과 입시를 준비하기도 했다. 취업을 했다가 다시 학업을 이어가는 지금은, 여전히 작지만 햇빛이 들어오는 2층으로 이사했다. 바쁜 와중에도 밴드 동아리를 하며 여전히 음악을 즐기고 있다.



그렇게 소중히 삶을 일궈 가는데 계엄이 터졌다. 계엄이라니! 역사책에서 배운 계엄은 거리에 탱크와 군경이 돌아다니고 아무 죄 없는 사람들도 감시하고 잡아가기도 하는 건데, 2025년에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긴단 말인가. 당장은 총부리가 국회로 향하지만, 계엄이 시작되면 아무에게나 향할 수 있는데! 죽고 사는 문제에 민감한 그는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죽음의 무게를 모르는 이들에 대한 분노가 동시에 일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게 절대 가벼운 게 아니잖아요. <소년이 온다>를 보면 내 가족이 죽었고 내 친구가 죽었고, 그런 걸 눈앞에서 보신 분들이 있고, 저는 그게 무슨 마음인지 조금은 알잖아요. 근데 계엄이 별 거 아닌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을 보면 너무 화가 나요. 국가폭력은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않잖아요. 윤석열에게 호의적인 사람이라고 피해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는 죽을 수 없었다. 죽지 않으려면 목소리를 내야 했다. 당장 광장으로 나갔다.



광장에서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계엄은 안 된다는 절박함은 같겠지만 품은 생각은 분명 달랐다. 그는 광장에 나온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얘기를 하는지 궁금해졌다. 그가 공부하는 기록학은 다만 기록이 아니고 우리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아래로부터의 역사이기 때문에 특히 주류가 아닌 소외된 사람들, 그동안 목소리를 들을 수 없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소중했다.

한강진 때는 마침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증을 준비하던 중이어서 책과 패드를 끼고 광장에 앉았다. 매서운 추위 속에서 사람들은 끝도 없이 자유발언을 이어갔다.

“교사라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싶어 나온 분도 있었고, 나는 퀴어 페미니스트입니다 라고 말을 시작하는 분도 있었고, 농민의 딸이라고 말하는 분도 있었고, 소위 말하는 이대남입니다 라고 말하는 분도 있었어요. 스타워즈를 좋아하는데, 그 가치관이 집회에 나오게 했다는 분도 있었죠. 조금 추워져서 근처 건물에 들어가 쉬기도 했는데, 거기서 50대 여성분을 만났어요. 나도 한 번쯤 가보자 라는 마음으로 처음 집회에 나오셨다고 해요. 그분 아들 이야기 하면서 수다를 떨었어요. 그런 사소한 장면들까지 모두 기억에 남아 미래의 나에게 도움을 줄 거라고 믿어요.”



그는 박근혜 탄핵 때 광장에 나오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때는 아직 청소년이었지만 그래도 광장에 나가는 친구가 있었다. 왜 그 애는 갔는데 자신은 가지 못했나 후회하기도 하고, 그 애의 결단과 용기가 부럽기도 했다.

“세월호참사가 있었던 날, 수학여행 마지막 날이었어요. 집에 갈 무렵에 뉴스를 듣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갔던 기억이 생생해요. 내 또래 친구들이 왜 억울하게 죽어야 했나, 참담했어요. 근데도 박근혜 탄핵 때 집회에 참석하지 못했죠. 이태원참사도 마찬가지예요. 왜 경찰이 인원통제를 못했나, 진짜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는 못 갔지만 지금은 갈 수 있으니까 가자, 하는 마음으로 광장에 나갔어요.”

하지만 남태령에 못 가면서 다시 부끄러워졌다. 광화문에 갔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남태령 소식을 들었다. 밤새 후원물품이 쏟아지고 난방버스가 도착하는 걸 보면서 갔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물론 모든 집회에 갈 수는 없다는 걸 잘 알고, 다른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할 때 괜찮다고 위로하는 말을 건네곤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는데 왜 나는 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의 최애가 부르는 랩 가사 중에 “누군가가 무리라도 해도 리스크를 지는 것은 내 자유다. 경고는 듣지 않을 거고 하지 않는 녀석에게 설득력은 없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러쿵저러쿵 말을 얹는 사람들에게 그는 당당히 말하고 싶었다. 행동하는 사람의 무게는 다르다고, 원하는 것을 위해 움직일 거라고. 다음 날, 그는 트랙터를 따라 한강진으로 갔다.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를 때는 옆에 있는 이들이 소중하게 여겨지고 고마운 마음이 생겼어요. 그러다 ‘매일 웃고 싶어요’를 부르는데 마음이 복잡하더라고요. 왜 매일 웃고 싶은 사람들이 추운 날 이 고생을 해야 하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때는 옆에 부모 뻘의 어른들 모습이 인상적이었지요.”

또 다른 집회에서는 은박 담요를 두른 60대 노부부가 ‘우리도 키세스다’라며 웃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절대 말 한마디 섞을 일 없는 사람들인데 그들을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친근함을 느낀다는 게 놀라웠다.


서리꽃링1.jpg 응원봉이 아니라 반지 형태의 '링라이트.'


한편 그들의 현재는 서리꽃의 미래이기도 하기 때문에 친근한 게 당연하다. 그도 마이스터고 학생들을 보면 자신의 과거가 떠오른다. 청소년 노동자를 보면 자신이 보인다. 그래서 그가 가장 바라는 것은 마이스터고 학생들이 산재를 당하지 않는 세상이다. 민주정부가 들어서면 그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조명해 주었으면 좋겠다. 아니, 억울하게 죽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는 노동자들의 죽음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다닌 회사들도 대부분 5인 미만 사업장이어서 남의 일이 아니라고 느낀다.

“산재 뉴스를 보면 효율을 위해 안전 수칙을 어기는 것을 권장하고, 원래는 업무 범위가 아닌 일을 제대로 된 교육도, 안전장비도 없이 무리하게 시키다 사고로 이어잖아요. 제대로 일을 알려주지 않으면서 왜 못 하냐고 화를 내기도 하고요.

알려주지 않으면 제대로 못 하는 게 당연하고, 안전이 갖춰지지 않으면 사고가 나는 게 당연한 건데 왜 이 당연한 것을 모르는 척할까요?”



그는 우선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성과 매너, 태도를 가르치고, 동료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민주주의 시민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의 문제는 파시즘을 내면화하는 방식으로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 창 너머에 숨어 타인을 비웃고 사이버블링을 하더니 이제는 속으로만 해야 할 생각을 대놓고 입 밖으로 내뱉기까지 한다.

그는 자신이 겪은 것을 타인에게 비추어 볼 수 있는 마음, 역지사지를 말했다. 자신이 언제 소수자가 될지 모르는 불안한 마음이 장애인, 성소수자, 노동자, 여성 등을 배제하지 않는 마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제 책을 트친이 행사장에서 팔아줬어요. 저는 부스 신청을 안 했거든요. 먼저 나선 사람이 도와준 거예요. 연대가 거창한 게 아니라, 누군가 나설 때 따라붙는 거라고 생각해요. 서로 손을 내미는 게 필요해요. 결국 내 일이 될 수 있으니까요. 내 친구의 일이기도 하고요.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미래가 두려워서라도 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는 “광장은 인력”이라고 했다. 만유인력처럼 자신을 자연스럽게 이끌고 간다. 의미 있는 정동이 일어난다. 덕분에 그는 이전보다 좀 더 실천력이 생겼다. 광장에 나가 목소리를 내는 작은 실천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 효능감을 알기 때문에 이전에 못했던 것을 지금은 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움직인다. 광장에 나가지 못하더라도 서명을 하고 게시판에 의견을 덧붙인다. 자신의 입장을 정하고 스스로의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다.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덕질 글과 비밀 일기장 같은 걸 썼어요. 연성하는 게 좋아요. 표현하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어요. 그 과정에서 조금씩 능력이 생기고 점차 감각이 예리해지거든요. 쓰다 보니 논문도 크게 어렵지는 않아요.”

그는 스스로 생각하고 정제된 언어로 만드는 습관을 들이는 데 연성만큼 좋은 게 없다고 했다. 사소하고 서툴러도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걸로 충분하다. 그러니까 “덕후들아, 연성하자.” 우리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자.




서리꽃.jpg 2차 창작물<백과 흑>, 히프노시스 마이크 음원CD, 그리고 최애인형을 들고 있는 서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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