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철없이 살기 위한 나만의 기준
2024년 3월 30일 토요일. 안녕! 오랜만이야 일기장아.
부지런히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는데 한 달이 다 지나서야 돌아왔어.
변호사에게 3월은 '과로'의 달
나는 일에 파묻힌 3월을 보냈어. 3년 차 변호사가 본격적으로 힘든 시기라고 하던데, 지난 1월도 바빴지만 3월 한 달 정말 정말 정말 말도 안 되는 업무량을 소화해 냈어. 밤도 여러 번 새우고, 주말에 출근을 해서 내내 일을 해도, 해도 해도 줄지 않는 업무량에 치이는 하루들이었지.
특히 나는 '송무' 변호사라서 3월이 특히 더 힘들었어. 법원은 인사이동을 2월에 하는데 재판부들은 그전에 진행 중인 사건들의 판결을 선고해. 나는 2월에 내가 수행하는 굵직굵직한 사건들 선고가 이루어졌고, 3월에 여러 상고, 항소이유서와 답변서를 작성했어. 형사 사건 서면은 100쪽을 넘겼는데, 다시 생각해도 숨이 좀 막혀.
변호사의 업무는 크게 송무와 자문으로 나뉘는데, 쉽게 말하면 송무는 법원에서 의뢰인을 대리해서 소송을 수행하는 것이고 자문은 계약, 사업 진행 등에 법적인 문제가 없는지 사전에 법적인 검토를 하는 것을 말한다.
판결 선고결과에 따라 의뢰인이나 그 상대방이 상급 법원에 불복을 하고(2심 법원에 불복하는 것을 항소, 3심인 대법원에 불복하는 것은 상고라고 한다), 3월에는 해당 사건들의 상소심에서 '상고이유서', '항소이유서', '상고이유 답변서', '항소이유 답변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상급 법원이 처음으로 읽게 되는 서면인 만큼 사건의 인상이나 심증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다른 서면들보다도 많은 공을 들여서 작성한다.
3월에는 신입변호사들이 입사했어. 신입 변호사 교육 과정에 멘토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멘티분들과 대화할 때면 어느새 내가 법인생활에 아주 익숙해졌구나 싶더라. 연차가 올라간 만큼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나의 책임이 커졌다는 것이 실감 나는 중이야. 1년 차였다면 눈물 한 번 흘렸겠다!! 싶은 날들도 있었어.
하 3월! 그래도 나름 잘 마무리했고, 이렇게 다시 일기를 쓸 여유가 생겼구나. 이 날이 오네!!!
나이와 책임, 계산
어느새 내가 3년 차가 되었다는 것과, 어느새 내가 30대가 되었다는 것은 비슷한 기분을 느끼게 해. 나의 일에 대해서도, 내 인생에 대해서도 그만큼 책임이 커졌음을 느껴. 나는 무책임한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아! 나의 선택들에 대해서 남 탓을 하고 싶지도 않고(그렇다고 나를 너무 탓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런데 이 생각이 나를 소극적이고 계산적인 어른으로 만드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쉬워. 무슨 말이냐 하면, 이제 내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도 유한하다는 것을, 그래서 그것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거든. 그래서 무언가를 "계산 없이 좋아한다는 것"이 좀처럼 쉽지가 않아. 계산 없이 좋아해서 했더니(그게 일이든 사람이든 취미든) 그것이 무용지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거든.
그래서 '나 이제 달라질래!'라고 마음속으로 수십 번을 외쳐도 '난 이제 그렇게 어리지 않은데'라는 또 다른 마음이 훅 튀어나와서 딱 가로막는 것 같아. 이제 내 나이는 결혼도 아이도 이제 더 이상 먼 일이 아니라서,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가 계획을 그르치지는 않을지 지레 겁먹고는 해.
계산하지 않으면서 살고 싶다.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 선에서!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지난 3월 초 회사 선배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날이었는데 5년 차 선배 변호사님께서 여성 마라톤을 뛰러 무려 나고야로 휴가를 다녀온다고 했어. 난 여기서 두 번 놀랐어. (1) 처음으로 풀마라톤을 뛴다는 것 (2) '휴가'를 '마라톤'을 도전하는 데에 쓴다는 것. 자고로 휴가는 휴양지에서 몸 녹이거나 관광지를 하나라도 더 둘러보기 위해 쓰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마라톤을 위해 나고야로 휴가를 간다니!
나고야에서는 매년 3월 세계 최대의 여성 마라톤이 열린다.
너무 낭만적인 거 있지! 그냥 마라톤을 하러 일본까지 간다는 건 수지타산에는 맞지 않잖아? 그래도 가는 이유는 '내가 좋아서'니까. "선배님, 저도 그거 따라 해 볼래요!"라고 하고는 선배님이 추천해 주신 4월에 열리는 '빵빵런' 10km 코스를 무작정 신청해 봤어. 이어서 11월에도 연극 친구들과 마라톤 신청을 하나 더 했어!
빵빵런은 기념품으로 유명한 빵집 빵이 제공된다.
생각해 보면, 좋아하는 것은 결과와 상관없이 '나'를 채워주는 것 같아.
내가 가장 충만했던 시절 중의 하나는 학부시절에 친구들이랑 자그마한 창업을 했을 때였어. 창업 동아리를 들어간 것도 그냥 "세상을 바꾼다"라는 슬로건에 반했던 거였고, 당장 들어가서 뭘 이루고야 말겠다는 거창한 포부는 없었지만, 그냥 궁금한 마음에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들어갔어. 그랬다가 푹 빠져서는 동기들과 밤새워 일했었지. 어디서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때 창업한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진득하게 도서관에 앉아 있지를 못해서 학점에 그다지 좋은 영향은 없었어. 하지만 내 불안한 20대 초반에 하얀 도화지 같은 '나'를 알록달록하게 해 준 소중한 일이었어.
상황과 '나'를 구분할 필요
내가 느꼈던 불안은 지난 글과 비슷한 것 같아. 내 상황(나이)에 맞춰서 살다 보면 결국 '나'를 잃어버린다는 것. 이미 '상황'에 맞춰서 살아가는 게 익숙한 나여서, 내가 철 없어지는 게 조금 불안했나 봐. '상황'과 '나'를 잘 구분하는 게 나에게 아직은 조금 어려운 것 같아. '상황'을 쫓는 내가 다양한 방법으로 '나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에 물음표를 던지거든.
'상황'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건 알아. 그래도 상황의 필요에 맞춘 결정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잘 알고, '나'를 기준으로 결정해야지.
그러려면 나 스스로 나의 시간, 열정, 에너지를 어떻게 쓸지 나만의 기준을 잘 세워야겠어. 그래서 내가 생각해 본 대강의 기준은 이거야.
내가 세운 대원칙, 판례는 아직 쌓여가는 중
내가 좋아하는 것에 계산 없이, 내가 필요한 것에 알뜰히!
지금은 그냥 대원칙 정도지만, 나다움을 잘 찾아가면서 판례?들이 생겨나겠지! 여러 리딩케이스들이 쌓이면 이제 나는 '나다움'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지금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직 잘 모른다는 큰 난관이 있어. 흠. 그렇다면 나의 큰 과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 찾아내는 것이겠다. 내 인생 길게 봤을 때 헛되이 내 시간을 쓰지 않으려면 지금은 철 없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나서야겠구나 싶어. 내가 좋아하는 것에 관한 리딩케이스를 만드리라!
내 나이와 문득 올라오는 현실감각이 나를 조바심이 나게 하는데, 나는 지금 맞는 방향을 가는 거라고 생각할래.
다시 또 불안해질 때면 이 일기를 보러 들어올게.
4월의 다짐
그래서 말이지. 4월에는 열심히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 무작정 출전! 할 예정이야. 나의 소중한 시간, 에너지, 열정이니까 내가 좋은 것에 써야겠어. 이미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이 쌓여있어.
4월 중순에는 10km 마라톤을 뛰어. 그전에 집 앞 러닝 꾸준히 해야지.
4월 말에는 친구들과 독서모임을 하기로 해서 아주 오랜만에 책을 샀어. 읽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눈 내용을 이곳에 공유해 줄게.
4월 말~5월 초에는 혼자서 운전을 해서 근교로 훌쩍 나가 볼 거야. 10년째 장롱면허 이제 다시 살려보려고 운전연수를 신청했고, 바로 내일 운전연수를 받으러 가. 운전에 대한 이야기도 다음 일기에서 쓸게!
P.S. 내 지난 3월 어느 주말 오후 3시 40분. 회사 내 방에서 주말 근무를 하는 나를 위로해 주던 푸바오.
푸바오야! 4월 3일 오전에 출국하는 걸로 아는데, 그곳에서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