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주, 나의 바다

by 청연

나의 첫 번째 바다를 기억한다. 그곳은 태국 푸껫의 피피섬이었다. 눈부신 금발머리와 파란 바다와도 같이 아름다운 눈을 가진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비치'라는 영화를 보고 난 이후였다. 그곳은 나의 이십 대 첫 해외 여행지였다. 나는 그곳에서 바다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푸껫에서 스피드보트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에 구명조끼를 입고 떨구어진 채, 처음으로 바닷속에서 눈을 떴을 때의 그 충격과 황홀함이란...... 그곳에는 수족관에서만 보던 형형색색의 열대어 무리들이 유유히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바다 아래는 감히 상상도 못 할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세계가 우리의 발아래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바닷속은 우주보다도 더 밝혀진 것이 없다고 하는데, 5미터 남짓한 그곳 바다조차 나에겐 새로운 발견이었다.


함께 보트를 탔던 유럽에서 온 중년의 여행객들이 구명조끼도 없이 여유롭게 물 위에 떠서 웃으며 서로 대화를 나누던 모습을 부럽게 바라보며, 나는 그날부로 언젠가는 구명조끼 없이 자유롭게 바다를 누빌 수 있는 날을 꿈꾸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나는 일 년에 한두 번 꼴로 '황홀경'을 맛보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은 다름 아닌, 에메랄드의 초록빛 바다 위에 나 홀로 편안하게 유영을 하며 떠 있는 꿈이었다. 나는 한없이 자유롭고 여유롭게 바다의 잔잔한 파도에 조용히 몸을 맡기고 떠 있는 데, 입 속으로 들어오는 바닷물은 조금도 짜지 않으며, 그렇게 떠 있는 나는 한없이 행복하게 웃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꿈에서 깨어나게 되면, 나는 마치 프로포폴에서 깨어난 듯이 야릇한 기분에 한동안 몸을 일으켜 나오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수면에서 겨우 스노클링만 즐길 수 있었던 나는 이십 년이 지나서야, 프리다이버가 되어 물속 깊이 들어가 바다 생명체들을 더욱 가까이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바다 표면에서 내려다보았던 때와는 달리, 가까운 곳에서 만난 그들은 몇 배는 더 신기하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애정이 갔다. 필리핀 보홀의 세계적인 다이빙 성지 '발리카삭'의 바다 및 모래 바닥에서 만난 물풀을 뜯던 거북이는 내가 다가가자 귀찮다는 듯 물풀을 뜯던 것을 멈추고 서서히 짧은 다리를 움직여 헤엄쳐 떠났고, 일본 오키나와의 섬 미야코지마에서는 해변에서 조금만 헤엄쳐 들어가도 아름다운 산호초와 열대어 무리, 그리고 문어를 만날 수 있었다. 문어는 내가 다가가자, 갑자기 마술이라도 부리듯 펑! 하며, 몸의 색깔을 바꾸며 돌 틈 사이로 숨어버렸다. 제주도의 가을 바다는 생각 외로 따뜻했다. 얼굴을 쏘아 대는 물벼룩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아픈 줄도 모르고 바다를 관통하는 햇빛에 반짝이는 은빛의 멸치 떼를 쫓아다닐 때는 나 또한 이 멸치 떼의 일부가 된 듯 무아지경이 되어버렸다. 조개를 돌로 퉁퉁 두드려 깨고 있으면, 어느새 물고기들이 모여들었고 깨진 조개와 소라를 내려놓자마자 저만치 떨어져 지켜보던 물고기들이 득달같이 다가와 조개를 쪼아 먹는 모습은 마치 간식을 얻어먹기 위해 우리 집 앞마당에 몰려드는 길냥이들 마냥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물벼룩에 쏘여 감각이 없어진 퉁퉁 부은 입술로 저녁 7시의 첫 끼와 함께 마시는 맥주 한 잔은 세상에 더 이상 부러운 사람이 없게 만들었다.


이번 여름 인도네시아 발리의 누사페니다에서는 내가 그토록 조우하길 염원했던 만타가오리를 만났다. 만타가 나타나자 재빠르게 고프로를 누르고 숨을 조급하게 들이마신 뒤에 만타를 쫓아가 그의 하얀 배와 커다란 입을 눈앞에서 지켜보았다. 만타는 마치 이 작고 하찮은 인간들에게 선심이라도 쓰듯이 같은 자리를 몇 번이나 빙빙 돌며 자신의 자태를 뽐내주었다. 이때 함께 보트를 타고 간 러시아, 프랑스, 호주의 수많은 유럽인들이 1-2미터의 표면에서 오리발을 신고 바둥대는 모습을 7미터 아래의 바닷속에서 올려다보며, 여유롭게 홀로 만타와 헤엄칠 때의 짜릿함이란! 비록, 만타를 만나러 가는 길은 멀고 험난했고, 만타와의 만남은 그에 비해 너무도 짧았으며, 열심히 고프로로 근접 촬영을 했다 생각한 영상은 안타깝게도 버튼이 안 눌려 녹화되지 못했지만. 그러나 이 깊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또 다른 다음을 기약하게 만드는 것이리라.


요즘은 더 이상 포카리스웨이트 빛의 바다 위에 홀로 여유롭게 떠서 포카리스웨이트 맛과 같은 바닷물을 들이마시는 꿈을 꾸지 않는다. 간절히 바라던 그 꿈을 이뤄버렸기 때문일까. 그 황홀경을 현실에서 맛보았기 때문일까. 이제는 꾸고 싶어도 꿀 수 없는 꿈이 되어버린 그 꿈이 나는 가끔 그리워진다. 첫 바다에서의 충격과 황홀함의 감정이 바다에 나가면 나갈수록 점점 예전만 못하게 퇴색되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꿈을 현실과 바꾼 거래의 대가일까. 가끔은 두렵다. 내가 그토록 애정하는 바닷속에서 아무런 감흥이 없게 되는 날이 오게 되진 않을까 하고. 그래서 다이버들은 또다시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나게 되나보다. 향유고래가 있는 모리셔스로, 물개가 있는 멜버른으로, 널스샤크가 있는 몰디브로…. 모래바닥과 산과 동굴이 있는 바다는 발 밑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세계이자, 우주와도 같다. 바다로 다이빙을 다녀올 때 마다 나는 나만의 우주를 경험하고 돌아온다. 이 다음에는 또 어떤 멋진 나만의 우주가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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