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프리다이버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마스터 과정이 끝나기 전 내 자신을 일컬어 프리다이버라고 하는 것이 꺼려졌다. 왠지 프리다이버라고 하기에는 내 실력이 민망했기 띠문이다. 처음엔 그저 바닷속 물고기들을 더 가까이서 바라보고, 물공포증을 극복하고자 시작한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프리다이빙의 매력에 점점 더 빠져들고 있었다.
처음 프리다이빙을 시작했을 때, 오리처럼 머리부터 물 속으로 들어가는 '덕다이빙'이 쉽게 되지 않았다.
"팔을 내려가려는 방향으로 뻗고 머리를 숙이면서 암스트로크를 하는 동시에 다리를 위로 뻗어 올리고, 다리가 잠기면 피닝을 하세요."
머리로는 이해가 됐지만 이 모든 동작이 거의 2-3초 안에 이루어져야 하다보니, 생각할 틈도 없이 몸은 제멋대로 움직였다. 연습을 한답시고, 다리가 잠기지도 않은채 퍼덕대다가 옆사람에게 물세례를 맞게 하기도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나는 자유연습을 신청해 혼자 연습을 했다. 나는 한 강사님에게 프리다이빙을 배우고 자격증을 딴 것이 아니라, 다이빙센터에 다녔기 때문에 스케줄표에 따라 강사님이 바뀌는 시스템이었다. 이런 시스템은 강사마다 가르치는 방법이 다 달라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이런 저런 다양한 방식을 모두 배울 수 있어 오히려 더 득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처음 만난 새로운 강사님은 주눅이 들어있던 나에게 덕다이빙을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처음 듣는 칭찬이었다.
"강사님, 전 자꾸만 사선으로 내려가는대요?"
"부력이 큰 슈트를 입으셨잖아요. 슈트 입으면 저도 그래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나는 강사님의 이 한마디에 자신감을 얻었다. 자신감이 붙고 나자 몸의 긴장이 저절로 풀어진 탓인지 그 후로 덕다이빙은 더 부드럽게 잘 되기 시작했다. 그 후, 강사님은 나의 최애 강사님이 되었다. PADI 2레벨 10미터 수심테스트를 앞두고 나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5미터 풀장에서 5미터 내려가는 것도 힘든데, 테스트 당일에 바로 10미터를 내려갈 수 있을까요?"
"일산가는데, 김포 못가나? 그런거랑 똑같아요."
나는 허를 찔린 기분이 들었다. 당시 나는 반경 3키로미터 이내의 동네 안에서만 왔다갔다하며 아이들을 학교와 학원에서 픽업만 간신히 하는 초보운전이었다. 그러다가 프리다이빙이 배우고 싶어 용기를 내서 30분 거리의 일산까지 차를 운전해 왔다갔다 하며, 운전에 조금 자신감이 붙어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테스트 전 날에는 가평까지 혼자 운전을 해서 가야 한다는 생각에 운전 걱정과 테스트 걱정에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이 때문에 마치 강사님이 내 속을 훤히 들여다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다음날 한시간 반을 달려 눈이 소복이 쌓인 오솔길에서 눈에 미끄러지는 바퀴 소리를 들으며 가평 k26 앞에 도착했을 때의 안도감이란...... 그 날 나는 강사님 말대로 생각보다 수월하게 10미터를 바로 통과 했다. 그리고 깜박잊고 핀가방을 통째로 놓고 오는 바람에 그 다음날 다시 가평을 혼자 운전해 왔다갔다하며 초보운전 딱지를 떼버렸다.
"프리다이빙을 시작했으면 3레벨까지는 하는게 좋아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2레벨까지만 하려고 했던 애초 생각과는 달리, 강사님의 이 한마디에 나는 뭣에 홀린듯이 나는 바로 3레벨을 등록해버렸다. (참 얄궂게도 강사님은 곧 센터를 그만두셨다.) 훈련을 거듭하며 어느새 숨을 참는 것이 괴롭지 않았고, 숨을 참으면 참을수록 재미까지 느껴졌다. 컨트렉션으로 어깨가 들썩일 때면 나는 그 순간 내가 크게 숨을 쉬었다고 생각하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어느덧 수면에서 움직이지 않고 숨참는 기록을 재는 '스테틱'에서 3분 36초를 기록해 이미 마스터 기준을 넘어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수심이었다. 용인에 딥스테이션이라는 36미터 깊이의 다이빙 풀장이 생기면서 이제는 테스트를 그곳에서 하게 되었지만, 5미터 풀장에서만 연습을 하다가 갑자기 테스트 당일 10미터도 아닌, 20미터를 단숨에 가기란 쉽지 않았다. 15미터에서 더 이상 이퀄라이징이 되지 않았고, 18미터에서 귀가 찢어질 듯이 아파 얼리턴을 해서 계속 올라왔다. 첫 번째 테스트에서 실패하고, 두 번째 테스트 날 '오늘은 고막이 찢어지더라도 기필코 20미터를 다녀오리라.' 하는 생각으로 비장하게 풀장으로 갔다. 그러나, 첫번째 시도에서 역시 실패를 했다. '1초에 1미터를 내려가니, 18미터에서 2초만 더 참자' 하고 두번째 시도를 했고, 역시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을 느끼며, 드디어 20미터를 달성했다. 많은 다이버들이 고막천공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았지만, 나의 고막은 나의 몸과 달리 유연한 것일까. 질긴 것일까. 다행히 나의 고막은 안전했다.
목표 수심에 도달하면 함께 하는 버디 다이버들이 물 세례를 다같이 퍼부어 준다. 그때 그 기쁨과 환희, 그리고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당일 운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드라이브 길은 그 어느때 보다 황홀하게 느껴졌다. 그대로 이불 속으로 들어 갈 수 있도록 깨끗하게 샤워한 몸에 바른 달달한 코코넛 바디 오일의 향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밤에 어울리는 발라드 음악과 부드러운 디제이의 음성, 창밖의 한강의 야경은 그 순간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3레벨 자격증을 따고 난 이후, 나는 매번 딥풀장에 갈 때면, 그날의 나의 목표를 정해 놓았는데, 예를 들면 같은 20미터지만 '귀 통증없이 20미터까지 편안하게 이퀄라이징을 하며 여유있게 다녀 오기' 같은 것들이었다. 이러한 작은 성취가 쌓일 때마다 프리다이빙은 점점 더 재미있어졌다. 한참 뒤, 더욱 힘겹게 얻은 마스터 과정을 통과 한 날은 어땠을까? 밤 운전을 하며 돌아가는 내내 하늘에서 펑! 펑! 폭죽이 터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기분이 일주일이 넘도록 지속되었다면 안 믿을까. 그 후 36미터 바닥을 여유있게 다녀오게 된 뒤 나는 이제 스스로를 프리다이버라고 불러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만난 수심 95미터까지 다녀온 프리다이빙 국가대표 선수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위험하게 깊이 가려고 하냐고. 그냥 즐기면서 하는 게 좋지 않냐고.
"결국은 도파민 때문이죠."
선수의 입에서 예기치 않게 솔직한 대답이 나왔다. 내가 애써 '성취감'이라고 포장해 부르는 도파민...... 누군가는 이 도파민을 얻기 위해 도박을 선택하듯이, 프리다이버들은 자신의 몸을 걸고 합법적 도박을 하고 있는 존재들 같다.
"바다에서 딱 40미터만 가보고 싶어요."
"40미터 가보세요. 또 45미터가 가고 싶어질거에요. 그 다음엔 50미터죠."
나는 정말 45미터가 가고 싶어질까...... 이 궁금증 때문에 조만간 40미터에 도전해 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