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세상 속으로…
MBTI로 하면 대문자 I인 나는 어렸을 적 매우 내성적인 성격에 낯도 많이 가렸다. 나는 낯을 가리는 내 성격이 창피해서 낯을 가리지 않는 척까지 하곤 했다. 나의 내성적임은 어느 정도였나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그 한 문장을 내뱉기 위해서 필터 5개 정도는 거치고 나와야 했다. 내가 이렇게 말을 한다면,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겠지? 그리고 이렇게 대답을 하겠지? 그러면 나는 이렇게 또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을 테고, 그러면 그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겠구나. 아, 그러면 말을 안하는 게 나은거 아닌가? 그렇게 머릿 속에 생각을 하다보면, 나의 말할 타이밍은 이미 끝이난 지 한참이다. 그래도 말할 걸 그랬어. 나는 다시 하고싶은 말을 하지 못한 찝찝함에 한참을 다시 상황을 대뇌인다. 정말 피곤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나의 성격이 그나마 달라지기 시작한 건, 아줌마가 되고 나서부터 였던 것 같다. 아이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해주고 싶은 마음에 놀이터나, 어린이집에서 만난 아이 친구 엄마들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갔고, 먼저 집으로 초대하고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보내고 함께 커피를 마시며 친목을 이어갔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고, 육아 휴직에 들어가면서 이들과의 관계는 곧 나의 사회 생활의 전부가 되었다.
프리다이빙 체험 수업 이후 첫 번째 수업에서 나는 한 명의 여자 다이버와 두 명의 남자 다이버들과 함께 수업을 했다. 나는 물에 떠 있는 구명 부이를 잡고 있다가, 내 차례가 되어 물 속으로 잠수를 하고 수면으로 올라왔다. 프리다이빙은 버디 시스템 속에서 이루어진다. 상대방이 다이빙을 할 때, 함께 물 속에 들어가 눈을 마주보며, 서로의 안전을 지켜주고 다이빙 이후, 물 밖에서 회복호흡을 할 때면, 혹시라도 다이버가 정신을 잃을 때를 대비해 상대방이 오케이를 외치기 전까지 상대의 팔목을 꼭 잡아 주어야 한다. 그러면 다이버는 자신의 정신이 온전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 손으로 오케이 싸인을 하며 '아임, 오케이'라고 말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산소 부족으로 근육 제어가 어려워지는 상태인 lmc(loss of motor control)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프리다이빙은 정신력 스포츠라고 하는데, 자신에 대한 믿음과 집중력이 깨어지는 순간 정신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프리다이빙의 위험성이기도 하며,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내가 올라오자 나머지 다이버들은 나의 팔목을 꼭 잡고 눈을 바라 보았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배운대로 '아임, 오케이'를 외치며, 맞은 편에 있는 남자 다이버의 마스크 안쪽의 크고 까만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와 눈이 마주치자 릴렉스 되어야 하는 나의 심장이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그 순간 사실 나는 전혀 오케이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그 날, 내 첫 수업은 릴렉스는 커녕 떨리는 심장 때문에 숨만 차다가 끝이 났다.
결혼과 동시에 일을 그만뒀었던 나의 친구는 최근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초보였던 친구는 발차기를 배우기 위해 킥판을 잡고 발차기를 열심히 하기 위해 고개를 들어 앞에 있는 남자 강사의 눈을 쳐다보는 순간, 가슴이 너무나 쿵쾅 대는 바람에 수영 반까지 바꾸어 버리고 자책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이해했다.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그녀와 내가 너무 오랜 시간동안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되기위해, '가정'이라는 좁은 울타리에만 갖혀 지내 왔었다는 것을. 동굴에서 백일동안 마늘만 먹다가 이제 막 사람이 되어 동굴에서 빠져나온 것과 같은 형국이랄까. 게다가 부정할 수 없는 그녀와 나의 내성적 성격으로 인한 어색함과 민망함이 어우러져 즉각적인 신체적 반응이 있어난 것이다. 남편과 아들 둘 포함, 세 남자와 매일 함께 살고 있지만, 마흔이 넘은 내가 다른 외간 남자의 눈을 가까이서 똑바로 바라볼 일이 있었던가.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 하는 것이 일상이고 눈빛을 피하면 뭔가 숨기는 것이 있는 걸로 오해하는 서양인들과 달리, 한국 사람들은 근거리에서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 그리 익숙하지 않다. 심지어 화가 날때를 제외하면 남편과 아들들과도 그렇게 똑바로 눈을 마주친 적은 별로 없었지 않은가. 그러므로 그녀와 나는 무죄. 변명이 너무 길었다.
장기 휴직을 한 이후로, 나는 일하는 남편과 공부하는 아이들을 위해 집에 있는 내가 내 시간을 할애하여 그들을 돕는 것이 당연한 나의 역할과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아침마다 아이들을 학교까지 라이드 하고, 학교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가 간식을 먹이고 다시 학원에 데려다 줬다. 큰 아이를 데려다 주고, 작은 아이를 다른 학원에 데려다줬으며, 또 각각 다른 시간에 데리고 왔다. 학교와 학원에 아이들이 있는 시간 동안은 음식을 준비 하고 집 안을 정리하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의 책상 위에 있는 숙제를 점검했다. 하루 중 유일한 낙은 오전에 혼자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는 시간이었다.
'워싱턴포스트'의 여성 기자가 쓴 <타임푸어>라는 책에서 워킹맘으로 살던 작가는 그녀의 삶과 시간을 되찾기 위해 수 많은 전문가들과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연구에 몰두했다. 그녀는 이 책에서 여러 해결책 중 하나로 여성들이 '좋은 엄마 컴플렉스'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혼자만의 시간' 즉, '여가'와 '놀이'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간을 할애하여 '여가와 놀이'를 즐길 때 역설적으로 우리는 '타임푸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그런 어색함과 낯섦은 어느덧 서서히 익숙해졌다. 그리고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을 꺼리던 내가 어느새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운동할 때의 기분 좋은 낯섦을 즐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낯섦에 익숙해 진다는 것, 그것은 이제 나에게 또 다른 활력이 되었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