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않는다면......

처음 만난 프리다이빙의 세계

by 청연

프리다이빙은 우리가 발을 딪고 살아가는 육지 세상만을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던 나에게, 그 보다 더 아름다운 멋진 세상이 발 밑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내가 프리다이빙에 빠지게 된 매력이자 이유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물 속의 고요함이다. 숨을 참고 물 속에 들어가기 전, 몸을 릴렉스 하기 위해서 머리를 물 속에 넣자, 내 귓 가를 맴돌던 소음들이 갑자기 멈추는 것을 느꼈다. 이는 곧 진공 상태와도 같았다. 얼마가 지나자, 내 귓 가에는 오로지 출렁이는 물의 소리와 규칙적으로 뛰는 나의 심장 소리만이 들려왔다. 오롯이 내 몸의 소리와 반응에 집중 할 수 있는 그 시간은 마치 나 홀로 다른 세상에 들어와 잠시 머무르는 느낌과도 같았다. 차가운 물에 머리를 거꾸로 넣고 숨을 참고 하강을 할 때에는, 마치 나의 머릿 속을 가득 채웠던 걱정, 근심과 상념이 깊은 물 속으로 씻겨 내려가듯 했다. 깊은 물 속에 그것들을 녹여내어 버리고, 다시 위로 솟구쳐 오를 때 마다 내가 마치 치유 받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마음이 심난하고 우울할 때마다 다이빙 풀장으로 향했던 이유이다.


둘째는 헤드퍼스트 자세이다. 나는 40년이 넘는 시간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직립 보행의 자세로, 중력으로 인한 온 몸의 체중을 230미리의 작은 두 발에 지우며 살아왔다. 프리다이빙에 입문하고, 머리를 아래로 하고 줄을 잡고 내려가는 프리이멀전을 가장 먼저 배웠다. 나는 그때 이십대 때 요가를 배우면서, '살람바 시르사 아사나'라는 물구나무 서기 자세를 힘겹게 연습했던 이후로 세상이 거꾸로 뒤집어지는 그 오묘한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이 물구나무 서기 자세는 많은 요가인들이 선망하는 자세이기도 한데, 나 또한 티비에서 가수 이효리의 이 아름다운 자세를 본 이후로, 이 자세를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을 숱하게 혼자 바닥에 머리를 박고 중심을 잡으려 애써왔는지 모른다. 소설가 김영하는 그의 수필 '단 한번의 삶'에서 이 자세를 연마하다가, 정수리가 빨갛게 부어오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대체 이 자세가 뭐라고. 하지만 한번 이 자세에 성공하고 나면 거꾸로 바라다 보이는 세상과 성취감과 형용할 수 없는 묘한 느낌으로 인한 재미에 빠져들고 만다. 그러나 요가와는 달리 물 속에서의 물구나무 서기는 머리가 부어오르지도, 힘이 들지도 않았고 순식간에 온 세상이 빙그르르 거꾸로 뒤집어 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물 속에서 줄을 잡고 당겨 머리부터 아래로 떨어지는 그 재미는 '살람바 시르사 아사나'의 수십 배라고나 할까?


셋째는 속도감이다. 수영을 배웠을 때, 처음 오리발을 신었던 날 그 빠른 속도에 신이 났었던 생각이 난다. 프리다이빙의 롱핀은 길이가 거의 1미터 남짓이다. 롱핀을 신고 피닝을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허벅지 근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허벅지의 고통을 참고, 근력을 이용해 롱핀을 신고 물 속에서 피닝을 했을 때 그 속도감은 오리발을 신었을 때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빨랐다. 피닝을 할 때마다 내 몸은 마치 모터를 단 듯 빠르게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마치 내가 미사일이 된 기분이었다. 피닝을 해서 속력이 더욱 붙을 때마다, 나는 점점 더 신명이 난다.


넷째는 무중력의 세계이다. 나는 태어날 때 부터 세 개의 '치'를 갖고 태어났다. 길치, 방향치, 몸치. 내가 어릴 적 엄마는 아빠가 새로운 길을 운전할 때 마다 조수석에 앉아 지도를 펼쳐서 길 안내를 해주었다. 그때 나는 일찌감치 운전을 포기했다. 그러나, 다행히 문명의 발달로 내가 컸을 때 쯤엔 '네비게이션'이 생겼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운전을 해서 아침에 갔던 길을 저녁에 지나가게 되면 내겐 다시 새로운 곳이 된다. 때로는 내가 좀 전에 갔던 길을 방향을 바꿔 반대로 돌아올 때 그 길은 내게 또 다시 새로운 길이 된다. 그래서 나는 운전을 좋아한다. 운전을 할 때마다 언제나 생경하고 새로운 길이 무한히 펼쳐지므로.


어렸을 적 운동 중에 내가 그나마 잘하는 것 하나는 '달리기'였다. 그 외에 공을 차거나, 받거나, 튕겨야 하는 것은 언제나 헛발질이나, 헛스윙으로 끝이 났다. 율동과 댄스를 할 때는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 젊을 적, 홍대 앞 클럽에 갔을 때 족히 185는 되어 보이는 키크고 잘 생긴 남자가 다가오자, 나는 그와 함께 엉덩이를 신나게 흔들며 심취해 열심히 춤을 추었다. 그런데, 갑자기 춤을 멈춘 남자가 "아니, 왜 엇박으로 춤을 춰요?" 하며 인상을 쓴 채 휙 자리를 떠나버렸고, 이후 나는 클럽을 끊었다. 그런 내가 물 속에서는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가고, 물구나무를 서고, 뱅그르르 돌고, 덩실덩실 춤도 출 수 있었다. 무중력의 공간은 내가 물 밖에서 할 수 없는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프리다이빙의 가장 큰 매력은 내가 하는 만큼 나아간다는 것이다. 처음 5미터 바닥을 다녀오는 것만해도 숨이 너무 차서 과연 내가 10미터를 다녀올 수 있을까 걱정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숨이 늘었고, 가느다란 허벅지의 근육이 어느새 단련되었으며, 35미터를 다녀오고도 숨이 차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처음 프리다이빙을 시작하고 나와 같은 걱정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경험을 들려주며, 자신감을 북돋아 주고는 한다. 동물은 물에 들어갔을 때 고래와 같이 '포유류 잠수 반사(mdf)' 와 같은 생리적 작용을 통해서 오랫동안 숨을 참을 수 있다고 한다. 지속적이고도 고된 훈련을 통해서 100미터에 가까운 수심을 다녀오는 선수들을 보며, 그리고 내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서, 신이 우리를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는 존재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


얼마전 프리다이빙을 하며 알게 된 50대 중반의 두 언니들이 1년 반만에 수심 20미터를 달성해 3레벨 자격증을 땄다. 한 분은 이퀄라이징이 잘 되지 않았고, 또 한 분은 3레벨 수심을 연습 하면서 물의 압력으로 인해 고막이 찢어지는 천공이 생겨 한 동안 프리다이빙을 쉬었다. 그러나, 귀가 다 나은 뒤에도 그 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10미터 이상 내려가면 다시 돌아 올라오곤 했다. 나 또한 항상 한번에 쉽게 수심을 달성한 적이 없었기에 두 분을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두 분의 수심 테스트에 따라가서 함께 연습을 하며, 내가 해봤던 이런 저런 방법들을 다 시도해 보도록 했고, 오늘은 그냥 돌아가지 말고 어느 정도 독한 마음을 먹어야 할수 있다고 일러주며 그들의 정신적 지주를 자처했다. 결국 그 날, 두 분 모두 1년 반만에 20미터를 달성했고, 두 분은 부둥켜 안고 울었다. 그러나 반대로 나와 함께 프리다이빙을 시작했던 한 분은 3레벨 수심을 결국 달성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프리다이빙을 완전히 그만둬 버렸다.


2016년 방영한 장기 미제 사건들을 다룬 범죄 스릴러 드라마 '시그널'의 마음을 울렸던 대사가 떠오른다.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은 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껏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던 것 또한 남들보다 타고나지 못한 나를 탓하며, 결국에는 한계와 시간을 정해 놓은채 모든 것을 너무 빨리 '포기'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장기 미제 사건들을 간절함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파헤치며 해결해 나가는 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우리에게도 우리 안에 존재하는 무한한 가능성과 능력이 언젠가 나타날 날이 올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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