얍 반 츠베덴 감독이 서울시향 지휘자로 부임한 지 일 년이 넘었다. 그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프로젝트가 말러 전곡 사이클 연주와 실황녹음이다. 말러 1번 "거인"은 애플뮤직에 독점음원이 공개되었고, 말러 2번 "부활"은 얼마 전 공연을 마쳤다. 하반기에는 출시되는 것으로 안다. 그리고 어제 말러 7번, 소위 "밤의 음악"을 직관했다. 롯데콘서트홀이었다.
공연은 특별했다. 말러 7번이라는 곡 자체가 독특한 색채와 구조를 갖춘 만큼, 연주의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 특히, 츠베덴의 해석과 서울시향의 연주는 기존의 어떤 녹음과도 다른 개성을 드러냈다. 연주자들의 몰입도와 무대 위의 긴장감이 극대화되었고, 관객으로서도 그 에너지를 온전히 체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 자리가 이날은 특별했다. 오케스트라의 실황 영상을 보면 카메라가 지휘자에 집중하기 때문에 가장 자주 잡히는 관객들은 맨 앞 줄이다. 지휘자 바로 뒤에 앉으면 연주가 어떻게 들릴까 늘 궁금하던 차였다. 말러 7번은 운 좋게 명당을 잡았다. 롯데콘서트홀 1층 C구역 1열 3번이다.
이 자리는 장단점이 분명하다. 앞자리에서 연주를 감상하는 것은 마치 무대 위로 걸어 들어간 듯한 몰입감을 준다. 지휘자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음악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츠베덴이 보는 총보와 이를 넘기는 모습이 생생히 보인다. 왼손바닥을 펼친 채 흔드는 특유의 모습, 점프하는 듯한 열정적인 제스처, 고개를 돌릴 때 보이는 표정까지 생생하다.
그러나 반대로, 일부 악기들이 가려져서 전체적인 앙상블을 시각적으로 온전히 즐기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금관과 타악기의 존재감이 말러 7번에서는 중요한데, 이들을 직접 볼 수 없다는 점은 다소 아쉬웠다. 그가 어려서부터 군악대의 행진을 보며 영향을 받은 탓에 이들의 비중이 다른 작곡자들에 비해 훨씬 높다. 예를 들면 말러 7번에서는 테너 호른이 첫 시작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테너 호른을 보는 것 자체가 귀한데, 앞자리에서는 소리만 들을 수 있다.
맨 앞에 앉아보니 탁월한 장점은 음향이다.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가장 소리가 잘 들려야 하는 자리는 어디일까? 지휘자 자리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니 지휘자로부터 가까운 순서대로 소리가 좋을 수밖에 없다. 물론 전체적인 사운드나 공명 차원에서는 앞에서 적당히 떨어진 중간이 좋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실제 들어본 소리는 확연히 앞자리가 좋았다.
집중의 정도도 다르다. 요즘 공연은 보통 8시다.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가기 일쑤인데, 문제는 졸음을 완전히 떨쳐내기 어렵다. 나는 당일 저녁을 안 먹는 편이고, 일부러 에스프레소도 마시고 들어가지만, 역시나 공연 중반을 넘어가면 집중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앞자리는 확실히 집중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날 내 옆에는 덕후가 한 명 앉았는데, 그는 공연 시간 80분 내내 등받이에 기댄 적이 없었다. 약간 비스듬히 앉아 초 단위로 집중하는 모습이었는데, 덩달아 나도 집중하게 되었다.
특히, 어제는 세 사람이 눈에 띄었다.
1. 객원 악장, 안톤 바락코프스키
웨인 린이라는 중국계 바이올리니스트가 서울시향의 악장이었다. 그런데, 린은 평소의 악장 자리가 아닌 옆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의아하던 차에 객원 악장이 등장한다. 안톤 바락코프스키다. 그는 1973년 생으로 독일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의 바이올린 수석이고 악장이다. 우리야 독일하면 "베를린 필"을 떠올리지만, 유수의 악단이 줄줄이 있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도 있고,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북독일 라디오방송교향악단, 뮌헨 필 등 보석 같은 곳들이 많은 것이다. 그는 미국 케네디 센터에서 첫 데뷔연주를 했으며, 불과 6살에 첫 무대에 섰던 천재다.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과 듀오로 음반을 내기도 했다.
불과 3미터 정도 거리에서 그의 연주를 보니 활이 춤춘다. 마치 바이올린 독주를 보는 듯 신들린 연주였다. 7번은 색채가 다양한 편성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기타와 만돌린도 나온다. 그만큼 지휘가 어렵다. KBS 교향악단을 이끌던 피에타리 잉키넨은 자신이 7번을 지휘하기 전에 언제 마지막으로 연주되었나 봤더니 26년 전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만큼 어려운 곡이어서(다른 곡에 비해 인기도 상대적으로 없다) 장시간 도전하지 않은 것이었다. 바락코프스키는 츠베덴을 도와 무대를 이끌어 가는 능력이 대단했다. 공연 전체가 착착 손발이 잘 맞아 피날레까지 흔들림 없이 깔끔한 연주를 이끌어낸 공에 그가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
2. 비올라의 강윤지
그녀는 서울시향의 비올라 수석이다. 말러 7번 음반을 듣더라도 비올라에 대하여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3악장은 말러 특유의 기괴하고 환영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악장이다. 그녀의 비올라는 때때로 날카로운 리듬을 연주하며, 불안하고 유령 같은 느낌을 기막히게 살렸다. 특히, 음색을 의도적으로 거칠게 사용하며 ‘불안정한 춤’을 표현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3. 제2 바이올린 부수석 김수영
1악장에서는 중간에 하프가 등장하면서 갑자기 공연장이 환해진다. 잠시나마 활기차고 따뜻한 선율이 공연장 전체에 흐르게 되는데, 이날 나는 보았다. 제2 바이올린 수석 임가진 옆에 앉은 김수영이 연주 중 감정적으로 북받쳐 오르는 모습을 말이다. 그만큼 어제는 전체 단원이 혼연일체가 되어 드라마를 완성했고 그렇기에 더욱 감동이었다.
츠베덴은 확실히 대편성 교향곡에서 그리고 스피디한 연출을 해야 하는 부분에서 노련미가 엿보인다. 그는 강한 추진력과 명확한 해석으로 작품을 이끌어가며, 특히 리듬을 강조하는 스타일이 돋보인다. 또한, 악장의 역할을 중요시하며 단원들과의 긴밀한 교감을 통해 전체적인 앙상블을 정교하게 조율하는 점이 다른 지휘자들과 차별화된다.
지난번 말러 2번에서 메조소프라노로 캐나다의 "태머라 멈포드"를 부른 것도, 이번에 "바락코프스키"를 부른 것도 청중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가수나 기존 서울시향의 단원들로 공연을 할 수도 있겠지만, 실황녹음이라는 자존심이 걸려있다 보니, 더 높은 수준의 연주가 필요했던 츠베덴의 선택이라고 보인다.
오늘은 말러 7번의 두 번째 연주가 열린다. 실황녹음이 예정되어 있다. 더욱 타이트하고 열정적인 연주가 기대된다.
*저는 다룰 수 있는 악기도 없는 아마추어 클래식 애호가입니다. 그저 용감하게 쓰는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