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더 조스(Trader Joe’s)가 적힌 천 가방이 일년 넘게 유행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오늘도 들고 나갔을 수도 있는 그 에코백이다. 갖고 있지 않아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본 적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브랜드의 유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직원, 특이한 상품들, 그리고 조용한 마니아층—이 모든 것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 답이 Acquired라는 팟캐스트의 최신 에피소드에 올라왔다. Trader Joe’s: The Complete History & Strategy라는 제목이다. 이 팟캐스트는 일류 기업의 역사를 심층 분석해 한 달에 한번 에피소드를 공개한다. WSJ에서 “세상 가장 스마트한 이들이 듣는 팟캐스트”라고 기사를 내기도 했다.
목소리 좋은 똘똘한 두 명의 진행자, 데이빗과 벤이 작은 동네 식료품점이 어떻게 미국 유통 산업의 전설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나 역시 미국에 살때 트레이더 조스 매장을 종종 방문하고는 했다. 갈 때마다 독특한 경험을 했다. 인상적인 수퍼마켓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곳이었다.
Acquired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돈벌이에 앞서 ‘발견/여행/호기심‘을 택한 한 기업가의 철학을 본다.그리고 새삼 우리가 지금 곰곰히 돌아봐야하는 가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아래에 정리해본다.
1. 또 하나의 편의점에서 시작된 반란
1960년대 초, 캘리포니아 패서디나.
Joe Coulombe(조 콜롬브)라는 젊은 사업가가 ‘Pronto Markets’라는 작은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모델은 당시 급성장하던 세븐 일레븐. 하지만 곧 본사인 세븐 일레븐이 캘리포니아 시장에 직접 뛰어들며, Pronto는 그대로는 버틸 수 없게 되었다.
Joe는 깨달았다.
“같은 게임을 하면 반드시 진다. 그렇다면 다른 게임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는 Harvard Business Review에서
“미래의 소비자는 지적이고 여행을 즐기며 호기심이 많을 것”이라는 글을 읽었다. 비록 고소득자는 아니지만 ‘좋은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 그때 그는 이 타깃에 맞는 전혀 다른 식료품점을 구상했다.
2. ‘Trader Joe’s’라는 이름의 탄생
1972년, 그가 지은 새로운 가게 이름은 Trader Joe’s.
"트레이더 조스"라는 이름은
'Trader(무역상, 항해자)와 'Joe(설립자의 이름)'를 합친 말이다. 즉, "세상을 두루 여행하여 이국의 상품을 가져오는 상인 조"인 것이다.
매장 직원은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벽에는 티키(tiki) 풍의 장식이 걸렸다. 티키 문화는 2차대전 후 남태평양에서 돌아온 미군들이 전한 문화로, 대나무 장식, 야자수 무늬, 하와이안 셔츠 등이 상징이었다. 그는 매장을 ‘식료품점’이 아니라 ‘여행지의 시장’처럼 꾸몄다. 고객은 상품을 사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기분을 느꼈다.
그 철학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우리는 많이 파는 가게가 아니라, 잘 파는 가게다.”
대형 슈퍼마켓이 4만 가지 상품을 취급하던 시절, Trader Joe’s는 단 4천 가지만 남겼다. 이 ‘제한된 선택’은 오히려 고객에게 안도감을 줬다. “여기 있는 건 이미 좋은 것들이다.”
3. ‘발견의 즐거움’을 설계하다
월마트나 코스트코, 타겟과는 달리, 트레이더 조스에 들어서는 순간 나를 맞이하는 것은 물건들이 아니다. 꽃 매장이 늘 입구에 있다. 나는 이게 찾아오는 손님을 기분 좋게 만들면서도 다른 대형 매장과 차별화되는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직원이 웃으며 “이건 이번 주에 들어온 신제품이에요.” 하고 말한다. 진열대 위에는 누가 적었는지 모를 농담 섞인 상품 설명. 그 모든 것이 고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Joe는 단순히 ‘싼 가격’이 아니라 ‘똑똑한 소비의 기쁨’을 팔았다. 상품의 기원, 문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함께 건넸다. 그 결과 고객은 Trader Joe’s에서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의 취향을 탐험하게 되었다.
4. 브랜드보다 브랜드 없는 브랜드
Joe는 곧 또 하나의 결단을 내린다.
‘유명 브랜드’ 상품을 팔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 대신 자체 상표(Private Label) 를 만들었다.
공급업체와 직접 품질을 관리하고, ‘Trader Joe’s’ 로고를 붙였다. 그는 ‘유통업자’가 아니라 ‘큐레이터’가 되었다.
그 시작은 수입 와인이었다. 유럽에서 돌아온 여행자들이 기억하는 그 맛, 그 가격대를 그대로 가져왔다. ‘Two Buck Chuck’이라는 저가 와인은 그 철학의 상징이 되었다. 내 기억으로도 몇달러에서 비싸봐야 20달러 정도 밖에 안하는 와인들이 한쪽에 잔뜩 있다. 저렴한 가격에 별 기대 없이 집어와도 맛은 늘 기대 이상이었다.
5. 세일 없음, 광고 없음, 온라인 없음
거의 모든 소매업체가 쿠폰, 세일, 배달로 고객을 잡던 시절, Trader Joe’s는 모든 것을 거부했다.
“우리 상품은 항상 공정한 가격이다. 할인할 이유가 없다.” 고객은 믿음을 얻었다. ’여기선 항상 이 가격이 진짜 가격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Trader Joe’s는 온라인 판매나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팟캐스트에도 나오지만 주차공간도 적어서 자동차 천국인 미국 소비자들은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불편해도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온라인은 사람 사이를 끊는다. 우린 직접 만나야 한다.”
모두가 디지털 전환을 이야기 할때, 트레이더 조스는 여전히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철학은 성공했다.
매장 평균 수익은 업계 평균의 네 배 이상.
‘거절의 용기’가 가치를 만들었다.
6. 하와이안 셔츠의 힘
Trader Joe’s의 직원들은 ‘Crew Member’, 매니저는 ‘Captain’, 부매니저는 ‘First Mate’. 이 용어들은 장식이 아니었다. 모두 ‘같은 배를 탄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직원 모두가 상품 교육을 받고 고객과 자연스럽게 대화했다. 급여도 높았다. Joe는 직원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봤다. 에너지가 넘치는 매장에서 고객은 즐거울 수 밖에 없다.
7. 외형적 성장이나 점포 수 늘리기 보다 깊이를 추구
Trader Joe’s는 미국 전역에 단 600여 개의 매장만 있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확장을 통제해 왔다.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인 월마트가 미국에 5천개 넘는 매장을 운영 중인 것을 생각하면 적은 숫자다. (코스트코가 600여개 인 것으로 안다. 코스트코와 트레이더 조의 승승장구에 분명 연관이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논리는 명확하다.
“빠르게 늘리면 철학이 흐려진다.”
이 집중이 브랜드의 일관성을 지켜 주었다.
매장 하나하나가 ‘Trader Joe’s 다움’을 유지한다.
8. 광고 없는 마케팅
Trader Joe’s는 TV 광고도 없고, SNS 캠페인도 없다.
대신 ‘Fearless Flyer’라는 신문형 전단지를 낸다. 온갖 상품목록에 할인 표시가 들어가 있는 동네 마트의 전단지와는 전혀 다름을 알 수 있다. 삽화와 유머가 가득한 그 종이 한 장은 브랜드의 얼굴이다. 추수 감사절을 앞두고 올라온 최신 전단지 링크를 올려본다.
고객들은 그걸 읽으며 웃고, 친구에게 “이거 봤어?” 하고 보낸다. 브랜드가 말하지 않아도 고객이 이야기를 퍼뜨린다.
9. Trader Joe’s가 가르쳐 준 것
Acquired는 이 이야기를 세 줄로 정리했다.
-Trade-off를 받아들여라.
모든 걸 하려 하지 마라. 하지 않을 것을 선택하라.
-사람과 문화가 전략이다.
하와이안 셔츠 하나가 전략 서류 100장을 이긴다
-일관성이 가장 큰 마케팅이다.
온라인을 안 하는 것조차 브랜드의 언어다.
마무리: 작게 시작해서 깊게 가는 법
트레이더 조스는 현대 유통업의 거의 모든 룰을 깨고 있다. 온라인 판매, 배달, 할인이나 쿠폰 모두 없다. 품목 수도 매우 적다. 그런데도 고객 충성도는 매우 높다. "우리가 하지 않을 것"을 명확히 한 뒤, "우리가 할 것"들을 깊이 있게 설계했다. 그것이 성공의 비밀이다. 트레이더 조스는 ‘작은 매장’이라는 물리적 제약을 ‘깊은 경험’이라는 철학으로 바꿨다.
어쩌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교훈이다. 무엇을 더할지보다, 무엇을 덜어낼지를 아는 용기, 그게 바로, 작게 시작해서 깊게 가는 법이다.
그 철학이 에코백에 새겨져 오늘도 누군가의 어깨 위에 걸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