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와 아들의 반란
겁도 없이 둘째 산후조리를 시어머님께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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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를 낳고 첫 일주일 산후조리는 만족했다.
따뜻한 미역국과 한국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식재료들로 다양하고 맵지 않은 반찬을 만들어서 쟁반에 담아 방으로 넣어 주셨다.
어머님이 음식을 깔끔하고 정갈하게 하시는 편이라 입맛에도 잘 맞았다.
1주일이 지나자 어머님이 슬슬 안 하시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제 밥을 방에서 먹지 말고 식탁에서 같이 식사하자는 제안도 하셨다.
만약 식사만 딱 하고 일어서는 분위기가 되면 나가서 같이 먹었겠지만 그 당시 아버님은 꼭 식사 중에 반주를 드시고 반주를 드시면 말씀이 길어지셨다.
기본 한 시간에 길어지면 두 시간도 혼자 말씀하셨다.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한국사부터 시작해서 종교 얘기까지..
워낙 책을 많이 읽으신 분이라 누가 브레이크를 걸어주지 않으면 밤새서도 얘기하실 수 있는 분인데 그 당시 어머님도 아들도 어느 누구도 감히 아버님께 그만 하시란 말을 못 했다.
그 자리에서 박차고 나올 용기도 없기에 산후조리를 시작할 때부터 최대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려는 계획이었다.
그때부터 어머님 밥상을 받기가 눈치 보였지만 굳세게 버텼다
얼마 후에 남편 생일이었다.
어머님이 부르셨다.
나보고 남편 생일상 차리는 걸 도우시랜다.
그것도 거절하고 싶었지만, 잽싸게 돕고 방으로 들어왔다.
언니들이 말했다.
둘째까지만 낳을 거면 둘째 산후조리 진짜 잘해야 한다고.
산후조리 잘 못하면 평생 간다고 계속 말했었다.
그즈음 남편은 중국에 진출하고 싶어 했다.
그때 당시 우리는 한국에서 물건을 수입해서 팔고 있었는데 단가가 너무 안 맞았다.
발 빠른 사람들은 이미 중국으로 물건을 하러 다니기 시작했고 우리도 이 타이밍에 가야 할 것 같았다.
초행이라 남편 혼자 가기는 좀 부담스러워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친하게 지내는 지인이 이번 중국 출장에 동행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지인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중국에서 물건을 하고 있었다.
아는 가이드도 소개해주고 숙식을 해결할 곳도 그분이 가는 곳으로 가면 되는 거라서 혼자 가는 것보다 훨씬 조건이 좋았다.
우리는 시부모님께 그 얘기를 하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출장 일정을 최대한 빨리 잡아서 약 2주 만에 다녀올 테니 아버님이 가게 문을 열고 닫고 해주셔달라고 요청했다.
그 당시 남편은 셔터맨이었다.
가게에 거의 머물지 않고 영업시간에 맞춰 문만 열어주고 퇴근했다가 문 닫을 시간에 가서 그날 번 돈을 회수하고 문 닫고 오면 되는 거였다.
별로 어려울 일이 아니니 아버님이 흔쾌히 도와주실 것이라고 예상하며 말씀드렸는데 돌아온 대답은 NO였다.
이유 인즉은
“외국에서 운전하기 부담스럽다. “
( 그럼 택시 타고 다니셔도 될 텐데..) 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차마 말라지 못했다.
아버님은 호기심이 많으신 편이라 그 당시에 본인이 외출하시고 싶을 때 택시 타고 이동하시기도 하셨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니 조금 서운했다.
뭔가 도움을 주시려는 의지 자체가 없어 보였다.
낙담하고 있을 때 바로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나가서 가게 문 열어~
너 지금 산후조리 2주나 했잖아~
난 산후조리 1주일 만에 끝냈어~. “
사실 확인이 안 되는 말씀이라 뭐 진위 여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그 말씀이 얼마나 야속하게 들리는지..
산후조리 해주러 오신 분이
애 낳기 하루 전까지 만삭인 며느리한테 꼬박꼬박 삼시세끼 다 해내라 하셔서 산후조리는 얼마나 잘해주시나 보자 했더니 1주일만 해주시고 그만하시고 싶으셨던 거다.
그런데 내가 계속 버티니까 2주 지나고 나서는 기어코 산후조리를 끝내고 싶으신 거였다.
결국 남편의 중국 출장은 무산되었다.
그리고 그 일 이후로 어머님은 식사 준비에서 완벽하게 손을 떼시고 남편이 식사 담당이 됐다.
어찌 보면 어머님과 나의 기싸움에서 새우등 터진 남편이 돼버린 건데, 난 사실 아직까지 후회는 없다.
항상 ‘네네’만 하던 만만한 며느리의 첫 번째 반란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나를 지키고 싶었다.
시부모님 눈치 보느라 산후조리 확실히 못해서 늙어서 골병들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그때 남편은 내 편이 돼 주었다.
자기가 준비하면 되니까 나보고 끝까지 하지 말라고 해주었다.
관식이가 몸을 돌려 애순이와 금명이 밥상으로 옮겨 함께 밥을 먹는 순간처럼 부모님께 반항 한 번 한 적 없던 남편도 첫 반란을 한 순간이었다.
잊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남편에게도 큰 용기가 필요했던 시점이었다.
지금 곁에서 자고 있는 남편
내일 아침 눈뜨면
“그때 참 고마웠어.”
라고 마음을 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