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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싸움 한판

by 창가의 토토

참 오랜만에 고성을 지르며 싸웠다.

뭐 항상 그렇듯 시간이 좀 지나고 화가 걷히고 나면 별거 아닌 일이었다.


나는 어릴 때 칭찬을 많이 받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가 지금도 누가 나에게 칭찬해 주면 그 어색함을 견디지 못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남편도 극 T인 부모 밑에서 자라서 극 TT이다.

표현하지 않는 남녀 둘이 사니 대화가 참 건조했다.

그런데 남편이 어느 순간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본디 표현을 잘하는 성격도 아니고 말도 예쁘게 못 하는 사람이 어느 순간 참 많이 노력을 하는 게 보였다.

나에게 예쁘다는 말도 많이 해주고 사랑한다는 표현도 적극적으로 해주었다.

예쁘다는 말을 들으니 내가 정말 예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니 내가 사랑받을만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식물에게 그렇게 사랑을 주며 키워줬다면 예쁜 꽃이나 탐스러운 열매로 보답을 했을 텐데

동물에게 그렇게 대했다면 애교라도 부렸을 텐데

남편은 뿌리는 썩고 없는 , 줄기만 아슬아슬하게 화분에 꽂혀있는 몹쓸 나무에게 정성을 쏟았나 보다.

나는 그런 말들을 들으며 좋은 열매를 맺지 못했다.

나라는 인간은 참..

왜 남편이 이렇게 만만한지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에 투정과 잔소리와 지적질로 화답했다.

난 남편에게 자꾸만 칭얼대고 싶고 기대고만 싶다.

어린이로 머물러 있는 이기적인 아이야 , 너 정말 언제까지 이럴 거니..



싸우다가 남편에게 ‘넌 정말 못된 인간’이라고 말을 하니 남편이 나에게 묻는다.

“넌 좋은 사람 같애?”

“아니, 나도 못된 인간인데 너처럼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살진 않아.

난 최소한 나 자신을 똑바로 인지하고 살아 “

“넌 못된 사람 중에 제일 못된 사람이야!!!”

오~ 신박하게 기분이 나쁘네??ㅎㅎ

욕지꺼리를 들은 것보다 더욱 기분이 나쁘다.



원래 오늘 외식하기로 했는데 기분이 너무 나빠져서 퇴근하자마자 침대로 와서 누워버렸다.

남편은 괜찮은데 애들 때문에 마음이 너무 걸렸다.

미안한 마음에 신경이 쓰여 뭐 하고 있나 홈캠을 열어봤다.

나 빼고 셋이 짜파게티를 끓여 먹었다.

“후르르 쩝쩝, 후르르 쩝쩝”

분명 무음모드로 보고 있는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맛있게들 먹는다.

왜 셋이 같이 먹었는데 남편만 꼴뵈기가 싫은 거지?

남편은 맥주까지 한 병 곁들이고 있어서 그런가?ㅎㅎ



후회되지만, 좀 후련하기도 하다.

요즘 남편이 좀 미웠는데 잘 뭉쳐서 쎄게 한방 날려버린 기분이다.

남편도 짜파게티를 맛있게 먹는 거 보니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은가 보다 ㅋ

남편은 진짜 화가 나면 금식을 하니까 말이다.

나는 어떤 소심한 복수를 해야 할까.

안방문을 잠궈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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