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가 결혼을 했다.
외국에서 자란 아이답게(?) 외국인 아내를 맞았다.
처음에 언니는 외국인 며느리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물론 나도 예전엔 우리 애들이 무조건 한국인과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나랑 말이 통하는 사람이 나의 가족이 되길 바랐던 거다.
외국에 살면서 언어적인 제약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서 한국말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가족으로 맞이하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그 생각이 얼마나 틀에 박힌 생각인지 고민 끝에 깨달았다.
나는 막연히 한국인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 같다.
한국인이라면 무조건 나의 가족에 잘 융화되고 예의 바르고 싹싹할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 잡혀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당장 나부터 시부모님과 잘 맞지
않고 싹싹한 성격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나의 뇌에서 집중된 에너지를 쓰면서 남의 나라 말로 번역하는 과정 없이 한국말로 대화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대화다운 대화로 이어질 것인가는 다른 문제인 것이다.
나랑 남편의 경우도 그렇다.
우리는 지금 알고 지낸 기간이 30년이 넘는다.
하루에 말을 섞는 시간은 많지만 속이 꽉 찬 대화는 거의 없다.
오히려 안타깝게도 대화가 좀 깊어지면 서로 다른 가치관 때문에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가 더 많다.
오늘 아침에도 같이 라디오를 청취하다 의견이 좁아지지 않아 잡음이 생겼다.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나는 사연자가 안쓰럽다고 했고 , 반대로 남편은 사연자를 탓하며 시스템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시스템을 몰라서 하는 소리니 어쩌니 그런 소리를 했다.
남편의 공감 능력이 원래 제로인건 알았지만 요즘 같아선 제로를 넘어서 마이너스로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결국 우리는 둘 다 같은 한국어를 쓰지만 대화가 안 통한다.
항상 느끼지만 남편과의 대화는 3분을 넘기면 고비가 온다.
조카며느리는 나랑 같은 언어를 쓰지 않지만 그래도 대화가 됐다.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을 가지 않고 결혼식에 참석한 우리 가족들과 언니들 가족까지 펜션하나를 빌려 일주일간 함께 먹고 자고 했는데, 매일 아침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같이 음식을 나누며 정이 들었다.
오히려 언어의 장벽 때문에 단어를 골라가며 조심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말도 천천히 하면서 생각을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중요한 건 유창한 단어를 이어가며 길게 말하는
갓이 아니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을 열고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친근한 마음이 생겼다.
예전엔 결혼 후에 당연하게 합가를 했기에 외국인 며느리랑 같이 사는 것이 조금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결혼을 하면 원가족보다 당사자 둘이 이룬 새 가족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둘이 사랑하고 잘 통하면 그것만큼 더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이젠 우리 아이들이 외국인 사위를 데려오든 한국인 사위를 데려오든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그 보다 둘이 얼마나 잘 통하고 사랑하는지 그것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면 난 최대한 노터치 할 생각이다.
굳이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 조를 마음도 없다.
나는 자식에게 집착이 심한 편이었지만, 이제는 많이 자유로워졌다.
그렇게 해야 모두가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행복해야 내 곁에 있는 사람들도 행복하다.
나는 나를 더욱 깊이 들여다볼 작정이다.
내가 무엇을 해야 더 행복해질지 알아보고 나를 단단히 세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