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누구의 손을 잡을 것인가
이런 걸 도파민 중독이라고 하던가?
언제부터인가 릴스나 숏츠 같은 마라맛 영상을 보고 있다.
라떼는 연속극이라 하면 최소 16부작부터 길게는 100편이 넘었다.
그런 드라마를 보면서도 지루한지 몰랐다.
그때는 지금처럼 검색해서 바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보통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월화드라마나 수목드라마 이런 식이 어서, 보통은 다음 회를 보기 위해선 거의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는데, 지금은 드라마 한 편 보는 것도 힘들다.
기승전결 없이 그저 클라이맥스만 편집되어 있는 것만 찾아보거나, 누군가 편집해 놓은 짧은 영상에 길들여지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인내심은 점점 소멸되고 점점 더 빠르고, 더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된다.
그러다가 알고리즘에 끌려 보게 된 것이 ‘이혼숙려캠프’인데, 처음에는 보면서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하고 욕하면서 보다가, 또 어떤 면에서는 그 안에 있는 나의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란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오히려 나보다 더 용기 있는 자 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찌질한 면을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 봐,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렵다.
사람들이 나의 모습을 다 알게 되면 나에 대해 실망할까 봐 겁이 난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함께 하다 보면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보고, 타인에게 맞추려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사람을 만나고 오면 기가 빨리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에너지 충전이라고 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렵고 부담스럽다.
그래서 나의 진짜 모습을 다 알고 있는 내 집이 가장 편하고 점점 사람들과의 관계의 폭이 좁아진다.
다시 이혼숙려캠프로 돌아가서..
어떻게 저런 여자랑 살까? 또 어떻게 저런 남자랑 살까? 하다가 혹시 내 남편과 딸들도 저들처럼 나 때문에 저렇게 힘든 마음이지 않을까 자기반성이 되었다.
남들보다 불안도가 높고 예민한 나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그런 영향을 받는 건 아닐까.. 그건 정말 내가 원한게 아니었는데..
그중 심리극으로 출연진들의 과거를 돌아보는 과정이 있는데, 보고 있으면 역시나 성장과정의 어떠한 트라우마가 성인이 되어서도 그 뿌리를 끊지 못하고 이어지는 것 같다.
나에게도 남들에게는 말 못 할 몇 개의 사건들이 있는데, 상황이 허락한다면 꼭 치료를 받고 싶다.
그중에 오늘 내 마음을 단단히 붙잡은 장면은 ‘착한 마음’과 ‘나쁜 마음’의 싸움이다.
항상 시청자의 입장으로 보기만 하다가, 요즘 딸과의 마찰도 있고 해서 그 출연자에 나를 대입해 보았다.
나도 매 순간 착한 마음과 나쁜 마음 사이에 있겠지.
그때마다 난 누구의 손을 잡았었나?
내 마음으로 되지 않는 딸이나 남편에게 화를 내고, 상처를 주었다.
너는 더 이상 희망이 없어라며 말로 그들을 묶었다.
어쩌면 나의 그러한 말들로 인해서 그들이 더 좋은 사람으로 갈 수 있는 걸 내가 막았을지 모르겠다.
이제 내가 결단해야 할 때이다.
나에게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지금 뿌리가 썩어버린 나무 같다.
그리하여 열매도 맺지 못하고, 이파리가 시들어 떨어지고, 급기야 자멸해 버리는 썩은 나무.
나에게 숨을 불어넣어 살기 해야 한다.
나뿐 아니라, 내 가족까지 살리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