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성향이 참 다르다.
나는 겁이 많고 경계심이 강한 편이다.
쉽게 사람을 믿지 못한다.
어디 가서 크게 사기를 당한 적도 없는데 이런 성향은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 모르겠다.
보면, 나뿐 아니라 우리 언니 오빠들도 좀 그런 성향이 있다.
남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처럼 경계심이 있는 것 같은데, 또 한 번 사람을 믿기 시작하면 한 순간에 벽을 다 허물어버린다.
그의 마음은 처음엔 얻기 힘들지만, 한 번 마음을 훔치면 간이고 쓸개고 다 주는 성격이다.
난? 오래 걸린다.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도 않고, 마음을 주더라도 천천히 준다.
처음 시부모님과의 갈등은 어쩌면 나의 이런 성격 때문에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난 나의 속도대로 가고 있는데 그분들은 나에게 한 번에 벽을 허물고 마치 친딸인양 행동하기를 바랬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애교 많은 동서는 결혼하자마자 어머님 아버님께 “엄마! 아빠!”로 호칭하고 시부모님을 만나자마자 허그하는 친딸 모드로 임했더니 그것 때문에 대차게 혼이 났다.
딸이 아닌데 딸인양 행동하며 버릇이 없다는 이유였다….
도무지 어른들의 온도는… 맞추기가 쉽지가 않다.
오랜만에 남편과 큰 싸움을 했다.
고성이 오갔다.
나는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을 좋아한다.
남편은 직원이고 고객이고 말하다 보면 쓸데없는 소리를 많이 한다.
남편의 입을 열게 하는 방법은 아주 쉽다.
과도한 칭찬을 해서 기분을 붕붕 띄워주거나, 반대로 열등감을 자극하면 된다.
난 우리의 개인적인 얘기들을 그들에게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특히나 사업에 관련된 얘기는 조금 더 신중한 편인데, 남편은 그런 부분에 대한 경계가 별로 없다.
내가 하지 않은 우리의 개인적인 얘기가 타인에 의해 들려올 때 난 불쾌하다.
남편은 유도신문을 잘 당한다.
거짓말을 절대 못한다.
모르긴 몰라도 나에게 거짓말한 것은 100이면 100 다 걸린 것 같다.
언제부턴가 아예 거짓말을 시도하지도 않는 것 같다.
오늘 남편이 외근 중에 나름 친하게 지내는 고객 L이 와서 나에게 우리의 사업에 관한 질문을 했다.
L은 워낙에 남편이랑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서 L이랑 남편이 대화할 때면 나는 항상 아슬아슬하다.
역시나 내가 없을 때 L은 남편에게 어느 정도의 정보를 얻어냈고, 나에게 추가 답변을 얻기를 원했다.
L은 굉장히 명석하고 유들유들한 성격이다.
남편과의 대화 중에 자기가 원하는 정보를 다각도로 틀어가며 질문했을 것이고 남편은 자기 정보가 털리는 줄도 모르고 친절하게 답변을 해줬을 것이다.
남편이 외근에서 오자마자 왜 그런 중요한 정보를 L에게 줬냐고 다그쳤다.
자기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단다.
남편은 엄청 불쾌해했다.
자기를 믿지 못하는 나에게 기분이 나빴나 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남편을 믿지 못한다.
더 정확히는 남편의 입을 믿지 못한다.
하고자 하는 말을 뇌에서 잘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 같다.
최근에 남편이 나의 측근인 A에 대해 물었다.
“A는 뭐 하고 살아?”
“응 어디서 알바하고 있대.”
“A도 참.. 생각이 있어야 할 텐데…”
“….. …? 그럼 A가 생각이 없다는 말이야? 왜 말을 그렇게 해?”
“아니…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 단지 A도 나름 계획이 있을꺼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 “
이 두 개의 문장이 어떻게 같을 수 있다는 말인가??
최근 챗 GPT에게 궁합을 본 대목이 떠오른다.
가끔 우리 부부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