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설명하는 방법: 단지 그리기
화면 한가운데 웃옷을 입지 않은 붉은 머리카락의 여성이 바닥에 앉아 있다. 차림새, 자세로 보아 꽤 사적인 공간인 듯하다. 마룻바닥엔 검정 카펫이 깔렸고 그 위로 여성이 깔고 앉은 하얀 천이 있다. 그림의 위 양쪽 모퉁이엔 서로 다른 모양의 의자가 그려졌다. 등받이는 화면에서 잘렸다. 네 발 달린 의자 위에도 하얀 천이 있다. 의자 사이엔 양철 양동이가 있다. 각각의 재현된 형태들은 색면으로 채워졌다기보다는 많은 선들이 지나며 생겨났다. 성긴 붓질은 어딘가 불안정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유화로 그려졌다는 것이 재미있다. 부드러운 그라데이션 효과로 광이 나는 물건이나 비단과 같은 천을 감쪽같이 그려내는 그 유화 말이다. 로트렉은 에드가 드가의 작품을 매우 좋아해서 드가가 즐겨 사용하던 파스텔을 유화에 적용해 그림을 그렸다.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은 18세가 되던 1882년 파리로 이주하여 아카데미 화가 아래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1884년에는 보헤미아니즘, 아방가르드 예술의 중심지인 몽마르트 언덕으로 작업실을 옮겨 주변의 동료 화가들과 어울렸다.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고흐, 고갱, 세잔, 드가 등이 활동했던 이 시기에는 다양한 서양미술의 사조가 탄생했으며 그중에서도 인상주의가 활약했다. 로트렉은 특정 유파에 속하지 않은 상태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1889년 몽마르트에 물랭 루즈가 생긴다. 오픈하자마자 이곳은 파리의 명소가 된다. 로트렉은 물랭 루즈에 지정석을 두고 거의 매일 그곳을 드나들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렸다. 물랭 루즈 홍보 포스터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가 활동했던 시대는 프랑스의 벨 에포크(Belle Époque 아름다운 시절)라 불리던 때이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파리코뮌 이후부터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를 일컬으며 평화롭고 풍요로운 시기로 기억된다.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도시 산업화가 이루어졌고 문화 예술이 번창했다. 오늘날 ‘파리’하면 떠오르는 에펠탑, 오르세 철도역과 같은 건축물이 만국박람회에 맞춰 세워졌다. 만국박람회를 통해 전기, 전화, 자동차, 사진, 영화, 항공 등이 대중에게 소개되었다. 파리는 ‘빛의 도시’가 되었고 전 세계의 지성인과 문화예술인은 빛을 찾아 파리로 모였다. 로트렉이 파리에 왔을 즈음 파리는 벨 에포크의 찬란함과 세기말적 어둠이 공존하는 분위기에 잠겨 있었다.
로트렉은 뒷골목의 자유로운 보헤미안 예술가의 삶을 택했다. 19년 동안 작업을 이어가며 733점의 캔버스 회화, 275점의 수채, 353점의 판화와 포스터, 5084점의 드로잉, 일부 도자기와 스테인드 글라스 그림을 그렸다.(출처: 구글 아트앤컬처) 그중 상당수가 여성의 초상이며, 로트렉 주변에 있던 무용수, 가수, 광대, 배우, 창녀였다. 무대 뒤나 대기실에서 쉬는 모습, 퇴근하는 모습, 단장하는 모습, 속옷 차림으로 검진받는 모습 등 삶의 일터에 있는 여성들의 모습을 담았다. 여기에 너무나 쉽게 들이대지는 편견의 잣대는 보이지 않는다.